말 한마디가 약이 될 수 있을까?

10년 고통을 녹인 놀라운 처방전

어느 안과 의사의 따뜻한 친절

노구치 사토시 『50센티 더 가까워지는 선물보다 좋은 말』

▲ 기사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Pixabay]

 

똑같은 진단, 전혀 다른 마음

10년간 안구건조증으로 고생해왔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건조함, 하루 종일 따라다니는 이물감. 그 작은 불편함이 쌓여 일상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기존 병원에서는 늘 같은 대답만 돌아왔다. "안구건조증은 완치가 어려워요. 꾸준히 인공눈물을 넣으시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아간 다른 병원에서도 결론은 마찬가지였다. 똑같은 진단, 똑같은 처방.

 

그런데 그곳에서 나는 특별한 처방을 받았다. “어머나, 어쩜 이렇게 관리를 잘 하고 계세요? 정말 멋진 인생 선배의 모습이네요.” 의사가 건넨 한마디였다. 차트의 생년월일을 보고 건네는, 아마 많은 환자들에게 하는 인사일 수도 있는 말. 머리로는 '별거 아닌데 뭘 그렇게 좋아해?' 생각하면서도, 마음은 환해졌다.  마음에도 시력이 있다면 갑자기 밝은 세상을 보게 된 듯한 기분이었다.

 

병을 보는가, 사람을 보는가

첫 인사 후부터는 의사가 하는 모든 말이 진심으로 들렸다.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나아지실 거예요... 분명 좋아지실 거예요...” 결론은 똑같았다. 안구건조증 치료법도, 인공눈물 처방도 전혀 다를 게 없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다르게 들렸을까? 차이는 관점이었다. 기존 의사는 병을 중심으로 이야기했다면, 새로운 의사는 환자를 중심으로 이야기했다.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라는 말 한마디가 10년간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치료받아야 할 대상'이었는데, '인생의 선배'라는 말에 '존중받을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그 의사는 증상을 다루는 대신 사람을 보살펴준 것이다.

 

상대방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말의 힘

작가 노구치 사토시는 저서 『50센티 더 가까워지는 선물보다 좋은 말』에서 "상대방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대화"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대화에서 누군가를 주인공으로 만든다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중심에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노구치 사토시는 이런 커뮤니케이션의 비결을 '상대를 먼저 생각하기', '상대방을 대화의 중심에 두고 이야기하고 질문하기'라고 설명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칭찬법과 대화법이 넘쳐난다. 그런데 왜 어떤 말은 마음을 건드리고, 어떤 말은 그냥 지나갈까?

 

첫째, 진심의 차이다. 의사의 말에서는 형식적 인사가 아닌 진짜 관심이 느껴졌다. 진료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와 눈을 마주치며 관찰해주었고, 그 관찰에서 시작된 관심이라 더 진심이 와 닿았다.

 

둘째, 타이밍의 차이다. 의사는 병을 먼저 보지 않고 사람을 먼저 봐주었다. 안구건조증 증상을 묻기 전에, 바로 눈앞의 사람 자체를 인정해준 것이다. 10년간 병원에 갈 때마다 늘 "어디가 아프세요?", "증상이 어떠세요?"부터 시작되던 대화가, 이번에는 "정말 멋진 인생 선배의 모습이네요"로 시작되었다. 병이 아닌 사람을 먼저 본 순간의 타이밍이 모든 것을 바꿨다.

 

셋째, 관점의 차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집중하는 말과 무엇이 잘되고 있는지를 보는 말은 전혀 다른 영향을 끼친다. 기존 병원에서는 "안구건조증이 심하네요", "나이가 들면서 더 안 좋아질 거예요" 같은 문제 중심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새로운 의사는 "그동안 정말 힘드셨을 것 같아요"라며 먼저 공감해주고, "분명 좋아지실 거예요"라며 희망을 심어주었다. 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180도 달랐다.

 

일상 속 치유의 언어들

이런 현상은 의료 현장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상 곳곳에서 말이 약이 되는 순간들을 만날 수 있다. 직장에서 실수로 위축된 동료에게 "그래도 당신이 평소에 얼마나 꼼꼼한지 우리 다 알잖아요"라고 말해주는 것. 육아로 지친 엄마에게 "정말 대단해요, 이렇게 아이들을 잘 키우고 계시다니"라고 인정해주는 것. 핵심은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다. 그 사람이 지금 가장 듣고 싶어할 말이 무엇인지 헤아려서 건네는 말에는 자연스럽게 치유의 힘이 담긴다.

 

속도보다 온도가 필요한 시대

현대 사회는 점점 효율성을 중시한다. 빠른 진단, 빠른 해결책, 빠른 결과. 하지만 때로는 '속도'보다 '온도'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AI가 정확한 정보를 빠르게 제공하는 시대에도, 여전히 사람만이 줄 수 있는 것이 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신호, 그 사람의 존재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메시지. 그런 인간적 온기는 어떤 기술로도 대체할 수 없다.

 

누구나 가진 치유의 능력

내가 받은 진짜 처방은 인공눈물이 아니었다. '당신은 충분히 괜찮은 사람입니다'라는 인정이었다. 그 한마디가 10년간 쌓인 심리적 피로를 녹여냈다.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는 의사가 될 수 있다.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말, 지친 영혼에 힘을 주는 인정,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게 하는 격려를 건네는 사람이 될 수 있다.

 

✍ ‘보통의가치’ 뉴스는 작은 일상을 기록하며, 우리 사회가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치를 전하고 있습니다.

작성 2025.09.19 23:06 수정 2025.09.19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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