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지에서 20년을 훌쩍 넘은 아파트 엘리베이터 교체 움직임에 대해 언급했었는대요. 최근 저희 아파트 현황을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근 2~3년 동안 우리 아파트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많았습니다. 단지 내・외부 도색, 아스콘 바닥 공사, 주차관리 시스템 도입, 미사용 공간을 헬스장으로 리모델링하는 일까지. 입주자 대표 회장이 진행한 사업을 보며 주민으로서 추진력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올 봄에 있었던 놀이터 리모델링을 보며 의문이 생겼습니다. 시설 안전검사에서 불합격 판정 후, 지자체에서 일부 금액 지원 사업을 따내 진행된 공사였습니다. 완공된 모습을 보니 ‘정말 이 금액이 필요했을까’ 싶더군요.
마침 회장 선거가 열렸습니다. 기존 회장은 그동안의 성과를 강조했고, 새로운 후보는 놀이터 사업의 불투명함, 잦은 관리소장 교체, 오래된 권력의 부패 가능성을 문제 삼았습니다. 그러나 3개월이 넘도록 결론을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개표 과정의 불투명성과 결과 불복등으로 고소·고발이 오가고, 선거인단 전원이 사퇴를 선언하면서 무주공산이 되어버렸습니다.
남기업의 <아파트 민주주의>를 읽으며 지금의 상황이 겹쳐 보입니다. 저자가 아파트 회장을 역임하면서 기존 이권에 단맛을 들인 이들에게 당하는 고초. 그리고 이를 극복해내는 과정을 담은 책입니다.
그는 아파트라는 공동체에서 소수가 쉽게 권력을 갖는 현상을 두고 ‘참여의식의 부재’를 꼽습니다. 많은 이들이 아파트를 '살림의 공간'이 아닌 불로소득을 기대하는 ‘투자 수단’으로 여기면서, 건물 관리나 공동체 운영보다는 재건축 가능성이나 집값 상승에만 관심을 두는 현실을 지적합니다.
누군가의 견제가 사라질 때 권력은 쉽게 비대해지고, 오래된 권력은 필연적으로 부패의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남기업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유는 영원한 경계의 대가로 주어진다.”
예전에 아파트 동대표 선거공고문을 보고 아내가 출마를 권하더군요. 물론 그때는 회사일이 더 우선순위라 손사래를 쳤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선뜻 다짐이 서진 않습니다.
하지만 아파트 운영에 대해 마음 속으로 비판만 할 게 아니라, 바로 이 참여의 부재를 메우는 점을 떠올려 보게 됩니다. 저희 아파트가 겪고 있는 혼란은 개인 간의 다툼이 아닌, '작은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저는 아파트 운영에 대한 ‘경계'를 시작하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독자 여러분의 일상 속 '작은 민주주의', 아파트나 주변 공동체를 위한 참여나 '자유를 위한 경계'의 모습은 어떤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