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호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국민들

30여 년 전인 1980년대 말, 버마 군사정권은 국호를 미얀마로 불러달라고 요청하였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정부 수립된 지 80년이 넘었어도 우리나라 호칭에 대한 대외 요청 근거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또 이 대한이라는 나라이름을 영문으로 표기한다면 DaiHan이 될 법한데, 영문표기는 Korea로 한다. 대한의 발음이 아무리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더라도 코리아가 될 수는 없을 터이다. 딱 한 나라, 베트남이 우리나라를 ‘따이한’이라 불러주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만약 어떤 개인의 이름이 홍길동인데, 아무리 뜻이 좋기로, 남이 행복동이라 부른다면, 그러려니 하고 가만있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편, 영문으로 표기되는 나라이름이나 대륙명의 어미가 예외도 많지만 a로 끝나는 경우가 제법 많다. a에 ‘나라’나 ‘땅’ 또는 ‘대륙’이라는 뜻이 있어서 그런가보다. 그렇다면 영문 표기에서 우리나라 진짜 이름은 Kore이고 우리말로 표기하자면 ‘고리’가 될 것이다. 곧 우리나라는 외국인들에게 이미 과거로 사라진 나라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상한 나라라고 말할 수 있겠다. 더욱이 외국인들이 South Korea라고 한다고 국민이 따라 한다. 자존심도 없는가보다.
하나 더. 지금 젊은 세대는 익숙하지 않은 표현이겠지만, 황혼에 접어든 사람들은 어려서 할머니들한테, “옛날옛날 고리쩍에 말이야, ….”로 시작하는 옛날이야기를 듣곤 하였다. 여기의 고리가 지금은 고구려 또는 고려(왕건의 고리 포함)라고 부르는 조상국가의 올바른 발음이었던 것이다. 그 발음이 백 년 전 국권을 강탈했던 조선총독부가 1920년 현대식 ‘조선어사전’에서 고려라고 하였더니, 그를 따라 고려가 된 것이다. 麗는 아름답다 할 때는 ‘려’이지만, 나라이름을 말할 때는 ‘리’로 발음하는 것인데, 무식한 일본인이 그것을 모르고 제멋대로 ‘고려’라 표기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광복되고 백년이 되어가는데 국명을 바로 잡으려는 사람도 없다.
전공도 아니지만, 학식이 천박하여 관련 서적을 많이 보지 못하였더라도 말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세계언어가 어떤 변천을 거쳤는지 논리와 합리성을 갖추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 서적을 읽은 기억이 별로 없다. 다만 언어학자도 아닌 IC회로설계 전문가였던 권중혁씨의 “유라시아어의 기원과 한국어”는 필자를 감동시켰다. 그래서 스스로 생각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물론 나만의 독단적 견해는 아니고 많은 사람으로 들은 이야기를 종합한 필자 개인의 소견이니, 반드시 옳다고 단정하지는 않는다.
언어는 소통의 도구이고 사고를 지배한다.
모든 동물도 소통을 위한 도구를 갖고 있다. 예컨대 벌이 꿀의 소재지를 찾게 되면 8자를 그리며 날면서 방향과 거리를 동료에게 알린다는 이야기는 이제 상식이 되었다. 식물도 일종의 전자파나 향기로 종(種)이 잘 번성할 수 있도록 의사를 소통한다고 한다. 예컨대 오이가 발산하는 독특한 비린내란 오이가 해충에게 오지 말라는 뜻이라고 한다.
사람은 묘하다. 매우 훌륭한 발성수단을 갖고 있으므로 복잡한 언어를 갖게 되었는지, 언어를 구사하려는 노력의 결과로 발성기관이 발달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떤 다른 동물보다 훌륭한 발성이 가능하여 오늘의 문명을 향유하게 되었다고 인식한다. 더욱이 요즈음은 인간의 언어를 인식하도록 만든 인공지능을 빠르게 발달시키므로 ‘하루가 다르게’를 넘어 ‘초가 다르게’ 문명의 수준이 급변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사람은 사고한 바를 말로 표현하기 시작하였겠지만, 일단 말이 생기면 말이 생각을 지배하고, 말이 생기고 문자가 만들어졌지만 일단 문자가 만들어진 뒤에는 문자가 말을 지배한다.”
이 사실을 뒤집으면 문자가 말을 지배하고, 말은 생각을 지배하는 것이다. 한편 말이라는 소통 수단은 사람만이 가능하다는 사실로부터 그 중요성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이 특히 우리말의 중요성, 나아가 인류 가운데에서도 ‘우리’의 뛰어난 정체성을 강조하려는 글이다.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현생인류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기후변화를 극복하려 5~6만 년 전 탈출하고, 소수(유럽은 빙하가 두터웠다)는 북진하지만 다수는 동진했던 것으로 보이며(고고학과 유전학으로 추정한 결과), 현재 동남아지역에서 일단 인구팽창을 경험한다. 다시 북진하면서 무성음을 발달시키며 고급문법의 언어를 발달시킨다. 이어 빙하기를 북아시아에서 극복하지만, 빙하기 말의 급격한 기후변화로 남진 또는 서진한다. 그 뒤 만여 년 전부터 동북아시아에서 발달된 언어가 흉노, 돌궐, 몽골 등에 얹혀 서진하며 오늘날의 북반구 문명권의 언어분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뒷날 좀 더 나누어 상세한 글을 올리겠지만, 결과적으로 현재 북반구의 문명국의 언어들은 우리말에서 기원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말이야말로 기독교 경전이 말하는 바벨탑 이전의 언어가 된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동진하지 않고 아프리카 북부 및 인근 지역에서 창발된 언어도 일정한 비율로 현존하는 북반구 언어에 기여하고 있을 것이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뜻을 갖는 상형문자인 글(契)과 발음을 표기하는 음소문자인 (훈민)정음 두 가지를 향유하고 있어 막강한 문화력을 발휘할 수 있다. 만약 지금이라도 글을 다시 가르치고, 일본인에 의하여 상실된 음소 네 자와 (훈민)정음의 초성과 중성의 합용병서로 돌아간다면 전 세계 모든 언어의 발음을 쉽게 배울 수 있음에 더하여, 폭발적 문화를 창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말의 문법구조로부터 변형된 북반구 언어의 문법변화 구조를 이해한다면 다른 말도 쉽게 구사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꾸로 외국인들에게는 경험하지 못한 음소와 그 응용이 과학적이지만 복잡한 우리말 배우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말과 문자를 매우 존중되어야 하는 언어임을 실감하게 된다.
삼국시대 이전의 국가, 조선과 구리
우리나라 사학계에서는 ‘환단고기’라는 사서를 ‘위서’로 정의하면서 엄청난 혐오감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들이 정통사서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마천의 사기 1권에 우리의 직계 조상국가인 (단군)조선 이전의 구리(九黎)가 등장한다.
그 기사를 간단히 소개한다. 저 대륙(중공 땅)에 남은 종족의 조상이라는 황제(黃帝)가 경쟁 대상으로 삼았던 분이 치우(蚩尤)인데, 집해라는 주해서에 “응소가 말하기를 치우는 옛 천자(天子. 이때 저들의 역사에는 천자라는 어휘가 없었다는 말이 된다)”라고 하였다. 또 정의라는 주해서에는 “공안국이 말하기를 구리 임금의 호가 치우”라고 하였다.
한편 구리(九黎)에서 黎의 발음이 검다는 뜻이면 ‘려’, 보습을 뜻하면 ‘리’인데 사기 권8 고조본기 13쪽에 구리의 경우는 ‘리’로 읽으라고 명시하였다.
이러한 사실로 판단한다면,
고(구)리는 바로 앞에 있던 국가인 ‘조선’의 나라이름을 취하지 아니하고 전전 국가인 ‘구리’에서 취한 것을 알 수 있다. 곧 조선이 이천 년이 넘은 세월 동안 존재하여 음가가 바뀌었던 것으로 추정한다면, 고(구)리가 구리를 계승하였다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한편 려ㆍ리(黎)라는 글(契. 아래 ★ 참조)은 검다는 뜻과 함께 ‘동틀 무렵’이라는 뜻을 함께 갖고 있다. 우리나라 이름은 대륙 서쪽의 무지하고 단명했던 정권과 달리 일관성있는 나라이름으로 이어왔다. 곧 하루가 시작한다는 뜻을 품는 구리, 아침이라는 조선, 빛이 펼쳐진다는 뜻을 갖는 라(羅)로 이어졌다. 그 사이 사이에 고리시대가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음도 의미가 있다.
여기에서 우리나라가 펼쳐가야 할 세상을 생각하며 백년대계, 아니 만년대계를 구축하며 우리 나라이름을 어찌 할 것인지 신중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필자를 비롯한 소수의 소견이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조상의 혼이 담긴 역사와 언어를 망각하다시피 한 상태이기 때문에 엄청난 정체성의 혼란과 자존심을 잃고 헤매는 상태이다.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생각을 지배하는 말을 바로잡고, 조상의 혼이 담긴 역사를 바로세우는 일이겠다. 그 잠재력은 위대하다. 우리나라에만 국한하지 않고 인류평화에 기여하는 선도 국가로 다시 태어나게 할 것이다. 우선 이 글을 읽는 독자들부터 동참과 격려를 기대한다.
★ 글(契)이란 소위 한자를 말한다. 한자는 글에 무식했던 일본인이 사용한 어휘로, 명나라가 발행한 원사(元史) 이전에는 없던 말. 우리가 사용하던 글방(또는 서당)을 생각해 보시라. 한자방이라는 말은 없었다. 契을 글이라 발음하는 종족은 우리뿐이다. 이 契의 주인이 우리에게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한글전용은 모든 국민의 문해력을 떨어뜨린 가장 폭력적 조치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또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드셨지, 언제 한글을 만드셨는가? 한글날은 완전히 광기의 발현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1940년 발견되어 전형필선생이 기와집 한 채가 천 원이던 시절 거금 만원을 지불하고 소장하였던 ‘훈민정음해례본’을 1945년 광복한 뒤에야 공개하였으므로, 해례본을 몰랐던 한글학자들은 정음의 철학도, 제자원리도 모른 채, 일본인 마수에 걸려 28개 음소 가운데 4자를 없애는 등, 마구 정음을 망쳤을 뿐이다. 다만 우리말을 지키려 목숨을 걸었던 그들의 우국충정에는 무한 감사를 올리지만 삼가 과를 평가하였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