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세기 무렵, 오키나와 사회는 장기간 이어진 카이즈카 시대(貝塚時代)를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농경 사회로 전환했다. 이 변화는 단순한 경제 구조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정치와 문화 전반에 걸친 대변혁의 서막이 되었다.
기원전 8세기 무렵부터 일부 농경 흔적이 관찰되었으나, 체계적인 농업 사회가 자리 잡은 것은 12세기 전후였다. 벼농사와 밭농사가 생활의 중심이 되면서, 주민들은 어로에 유리했던 해안가를 떠나 내륙의 대지와 평야로 이동해 정착촌을 형성했다.
농경 사회가 확립되자 공동체 규모가 커지고, 식량 관리와 방어가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카시라(かしら, 우두머리)라 불린 지도자가 등장했고, 점차 정치적 권위를 가진 지배자로 성장했다.
농경 체제의 성립은 지역 유력자, 즉 아지(按司)의 부상으로 이어졌다. 아지는 부와 무력을 바탕으로 세력을 확장했으며, 자신들의 거점으로 구스크(グスク)라 불린 성채를 건설했다. 구스크는 군사적 방어뿐 아니라 정치적 중심지이자 종교적 의례 공간으로도 기능했다.

12세기부터 16세기까지 이어진 구스크 시대는 소국가들이 각축을 벌이며 성장한 시기로, 이후 산잔 시대와 류큐 왕국의 성립을 준비하는 기반이 되었다. 12세기 후반, 오키나와 본도에는 북부의 나키진, 중부의 슈리, 남부의 오오자토를 중심으로 3개의 소국이 형성되었다. 이 흐름은 훗날 산잔 시대(三山時代)로 발전했다.
1187년에는 우라소에 지역의 아지 존돈(尊敦)이 왕위에 올라 순천(舜天) 왕조를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이 왕통은 약 한 세기 동안 이어지며 초기 왕정 체제의 기틀을 마련했다.
한편, 이 시기에는 일본에서 히라가나 문자의 도입,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통한 외래 문화의 유입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이로써 오키나와 고유의 문화와 외래 요소가 융합하며, 독창적인 류큐 문화의 토대가 형성되었다.
12세기 오키나와는 농경 사회의 확립과 함께 아지와 구스크가 등장하면서 집권적 권력 구조와 소국가 체제가 형성되었다. 대외 교류를 통해 새로운 문화가 유입되었고, 이는 류큐 왕국 성립의 기틀로 이어졌다. 카이즈카 시대의 종결과 농경 사회의 시작은 오키나와 역사에서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이 시기의 변화는 정치·경제·문화 전반에 걸쳐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류큐 정체성의 뿌리로 작용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