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어떻게 ‘교육’할 수 있는가?
선(禪)은 부처님의 깨달음을 체득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중에서도 화두를 통해 진리를 통찰하는 간화선(看話禪)은 한국불교의 정통 수행법이다. 단, 스스로 깨달을 수는 있어도 그 깨달음을 남에게 전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불립문자(不立文字)라 하여 깨달음은 언어로 표현하거나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오래고 공고한 불문율이다. 그럼에도 불교사에는 무수한 선사들이 배출돼 사람들의 혜안을 열고 선의 지평을 넓혔다. 그렇다면 깨달음은 어떻게 ‘교육’되었을까.
선사들의 삶은 그대로가 가르침이었다
<한국 선불교의 교육사적 근원>은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책이다. 알고 보면 강의를 하든 교과서를 읽든, 교육은 언어를 통해서만 성립될 수 있다. 결국 이심전심(以心傳心), 이른바 마음과 마음으로만 이어질 수 있다는 선불교에서 과연 일반적인 의미의 교육이란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인지, 내용이란 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 이론으로 세울 만한 교육사상이 가능한지에 대해 묻고 고찰하고 진단했다. 저자는 “교육사의 입장에서 불교를 바라보자면 우리 불교 역사의 또 다른 측면이라 할 수 있다”며 “우리 불교학의 토양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데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지 않을까”라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결론적으로는 ‘말’이 아니면 다른 ‘수’는 없다. 책에서는 깨달았다는 사람들이 어떤 말을 했는지에 주목한다. 특히 옛 선사들의 법문과 일대기에서 실마리를 찾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조(宗祖)이자 중국의 조사선을 국내에 들여온 도의국사를 비롯해 신라하대 당나라에 유학한 구법승(求法僧)들의 흔적을 추적했다. 이들은 귀국해 제자를 길러내고 종풍을 세우며 한국 선불교만의 정체성을 일궜는데 그 행적들은 비문(碑文)으로 전해진다. 낡고 더러는 마멸되었지만 네모반듯한 돌에 새겨진 글씨들은 선의 정신을 오롯이 담고 있다. 불립문자라지만 찬란한 문자의 유적들이 연구 대상이 되었다. 이것은 단순히 말이 아니라 선사들의 삶에 관한 말이다. 깨달음과 중생을 향한 치열한 탁마와 사랑은 오늘날에도 훌륭한 교보재다. 그들의 삶은 그대로 가르침이었다.
이 시대에도 여전히 선불교를 읽고, 배우고 닮아야 하는 이유
종교는 기본적으로 교육의 기능을 갖고 있다. 단어의 뜻 그대로 ‘가장 으뜸[宗]이 되는 가르침[敎]’이다. 종교 그 자체가 교육인 셈이다. 불교의 경우 불·법·승 삼보(三寶)가 모두 교육의 요소가 된다. 무엇보다 법(法)을 실천하고 전하는 승(僧), 곧 스님은 현실적이고 능동적인 교육자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교육받은 그들은 이를 임금과 신하와 백성들에게 전파하고 계도함으로써 불교를 교육학의 궤도 위에 올려놓았다.
또한 스님이라는 낱말의 어원 가운데 하나는 ‘스승님’이다. 전통사회부터 스님들은 공인된 스승의 자격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비단 불교만이 아니라 국가의 통치이념에서 개인의 생활윤리까지 가르치는 국민 멘토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자기화하고 내면화해서 독보적인 학식과 안목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교육과 삶은 밀접하며 교육을 하는 까닭 역시 궁극적으로는 바른 삶, 더 나은 삶으로 인도하기 위한 목적이다.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가장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적확한 해답을 갖고 있는 이들은 스님들이다.
저자는 교육학의 관점에서 깨달음의 교육사를 독특하고 날카롭게 기술하고 있다. 선불교에서의 핵심은 ‘마음’이라면 종교로서 불교의 핵심은 ‘믿음’이다. 이 둘을 조합하면 ‘마음을 바른 길로 세워 갈 때 참된 교육이 된다’는 마지막 문장이 도출된다. 반면 오늘의 학교 교육에는 ‘마음챙김 교육’이 보이지 않는다. 불교에 관심이 많은 교육학 전공자라면 곁에 두고 읽어야 할 책이다.
<한국 선불교의 교육사적 근원>
152*224 양장본 / 576쪽 / 32,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