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com, pub-9952897869402010, DIRECT, f08c47fec0942fa0

[곽흥렬 칼럼] 제 절의 부처는 제가 위해야

곽흥렬

길거리로 나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각양각색의 간판들이다. 즐비하게 늘어선 크고 작은 건물의 외벽이 온통 울긋불긋한 간판들로 도배가 되어 있다시피 하다. 실로 사람의 수효보다도 많은 것이 간판이 아닐까 싶다. 

 

검정 바탕에 하얀 글씨, 푸른 바탕에 주황 글씨, 미색 바탕에 초록 글씨……, 그중에서도 노란 바탕에 붉은 글씨가 단연 압도적이다. 내 무지의 탓으로 확적히는 모르겠으되, 이러한 색채의 배합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가장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어서가 아닌가 한다.

 

비단 글씨만이 아니다. 크기며 모양새도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대개가 직사각형이지만, 더러는 세모꼴, 정사각형, 원형, 계란형을 이루고, 형광등을 단 것, 네온사인으로 장식된 것 또는 아무 꾸밈새도 없이 밋밋한 것까지 이루 헤아리기가 힘들다. 

 

마치 검열이라도 나온 사람처럼 거기에 쓰인 상호들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로니스펍, 기그, 루비나, 마론, 비노, 오카방고, 프리메라, 리베……, 대체 어디서 유래된 건지도 모를 온갖 국적 불명의 간판투성이다. 특히, 이른바 잘나가는 가게라는 곳들은 하나같이 이런 요상스러운 이름으로 그럴싸하게 포장을 하고 있다. 물 건너온 것을 선호하는 고객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려는 얄팍한 상술이라고나 할까. 이런 가게에 들어가면 어쩐지 바가지를 쓸 것만 같은 찜찜한 기분이 된다. 

 

어디 간판뿐이랴. 먹고 입고 마시고 자는 데까지 그 어느 것 하나 외국어투의 이름이 붙어 있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이고, 심지어 어린아이들의 완구에조차 버젓이 영어식 상표가 난무하고 있으니, 그저 할 말을 잃는다. 

 

우리는 자기 것의 가치를 어찌 그리도 홀대하는 민족인가. 제 나라 말은 격이 낮고 남의 나라 말은 고상하다는 사대주의식 사고, 언제부터 이런 일그러진 관념이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게 되었는지 참으로 한심하고 서글픈 심정이 된다. 옛 속담에 제 절의 부처는 제가 위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우리 것을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우리 것을 아껴 줄 것인가. 

 

어쩌다 쌀에 뉘처럼 순우리말 상호를 만나는 수가 있다. 반가운 마음에 눈이 번쩍 뜨이고, 기특한 생각에 어쩐지 정이 끌린다. 이런 가게에는 뭔가 그 집 주인의 품위가 엿보이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그냥 무심히 지나칠 수가 없어 안으로 들어가 손이라도 한번 덥석 잡아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중학에 다니던 시절이 생각난다. 극장 앞을 오가다 보면 출입구 쪽에 ‘조조할인’이란 문구의 입간판이 놓여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나는 당시 그게 몹시도 궁금하게 여겨졌었다. 왜 조조曹操만 할인을 해 주고 다른 사람들에겐 해 주지 않느냐는 의아심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량한 한문 지식이나마 생기고 나서야 비로소 그 ‘조조’가 사람 이름이 아니고 ‘이른 아침〔早朝〕’이라는 뜻임을 알고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나저나 여하튼 정감이 가는 말이 못 된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셔츠 가슴팍에 ‘climing’이란 영문 글씨가 새겨져 있었던 캐주얼 차림의 어느 아가씨 모습도 오래 뇌리에서 지워지질 않는다. 그 당자야 물론 태연자약이었을지 모를 일이지만, 내가 도리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었다. 그 아가씨는 그게 속어적으로 ‘올라타도 좋다’는 뜻이란 걸 알기나 하고 거리를 활보했던 것일까. 혹여 서양 사람이 마주 지나치다 아가씨를 어떻게 해코지나 하지 않았는지 노파심이 든다. 일이 잘못되어 불미스런 짓을 당해 놓고서, 나중에 그가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고 변명이라도 하고 나선다면 뭐라고 죄를 따져 물을 것인가. 하기야 이건 그나마 점잖은 편에 속한다. ‘sexual machine(성적性的 기계 곧 변강쇠)’이라는 문구에 와서는 완전히 할 말을 잃고 만다.

 

요사이 들어 한자말을 아름다운 고유어식으로 고쳐 쓰는 경우를 자주 본다. ‘사찰’ 대신에 ‘절집’, ‘양각’ 대신에 ‘돋을새김’, 동거를 ‘모듬살이’, 부부 중 한쪽 편을 ‘옆지기’라고 쓴 글은 정말이지 품격이 달라 보인다. 그런 글을 만나면 두 번 세 번 거듭해서 읽고 싶은 마음이 된다.

 

우리가 대학 다니던 시절만 해도 취미활동을 함께 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일러 ‘서클’이라고 불렀다. 그때는 서클 아니면 아니 되는 줄로만 알았었다. 한데 언제부터인가 또래들 사이에서 ‘동아리’라는 순우리말로 바뀌어 불리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예 서클이 자취를 감추었다. ‘동아리’ ‘동아리’,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을, 참 아름답고 정겹게 느껴지는 낱말이 아닌가.

 

한글날이 가까워져 오면서 우리 고유어의 감칠맛을 다시금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 아끼고 사랑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놓는다.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

김규련수필문학상

이메일 kwak-pogok@hanmail.net

 

작성 2025.10.02 09:48 수정 2025.10.02 09:52

RSS피드 기사제공처 : 코스미안뉴스 / 등록기자: 한별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NEWS 더보기
용인특례시 보라동 행정복지센터 신축개청
파킨슨 환자 길치되면 치매 7.3배위험
DMZ 옆에 삼성이 온다고?" 경기도 접경지에 돈바람 불기 시작했다!
꽃피는 봄인데 왜 나만 우울할까?
4년 만에 45%가 사라졌다고? 경기도에서 벌어진 기적!
MZ 입맛 저격한 두바이 찹쌀떡부터 보양 끝판왕 흑염소까지
뇌는 잠들기 전 10분의 정보를 가장 중요하게 처리한다
폭락장에서 내 지갑 지키는 3단계 필살기
줄타기 대신 드론 투입
766억 기부한 이수영 이사장 "또" 서울대에 노벨과학상 인재육성 기부
우리 집 앞 도로, 2030년에 이렇게 바뀐다고?
베드로와 유다의 차이 한국어
가마지천 자전거
아직도 공중화장실 갈 때 구멍부터 확인하세요?
빚 때문에 인생의 끝을 고민하고 계신가요
자전거 타기와 인생은 똑 같다. 자전거와 인생 이야기 #쇼츠 #short..
자산 30억인데 밥 굶는다? 강남 노인들의 눈물겨운 흑자 도산
디알젬의 거침없는 진격: 초음파까지 접수 완료!
삼성의 역습? 엔비디아의 1,500조 파트너 낙점!
벤츠E 300 주행후기, 음이온 2억개 공기정화, 연비향상 50%가 동시..
내 아이 입으로 들어가는 건 무조건 확인! 경기도 농업의 미친 변화
주말에 뭐해? 도서관에서 갓생 살자!
봄의 생명력으로 마음을 채우다
중동발 경제 한파 터졌다! 한일 재무수장 도쿄서 긴급 회동, 왜?
중동발 경제 쇼크,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마약 치료 실적 5배 폭발! 경기도가 작정하고 만든 이것
노후파산의 비명, "남은 건 빚뿐입니다"
"내 집 재개발, 가만히 있다가 2년 날릴 뻔했습니다"
유튜브 NEWS 더보기

일론 머스크의 경고, 2030년 당신의 책상은 사라진다

부의 이동심리, 타워팰리스가 던지는 경제적 신호

그대는 소중한 사람 #유활의학 #마음챙김 #휴식

나 홀로 뇌졸중, 생존 확률 99% 높이는 실전 매뉴얼

숨결처럼 다가온 희망. 치유.명상.수면.힐링

통증이 마법처럼 사라지다./유활도/유활의학/유활파워/류카츠대학/기치유

O자 다리 한국, 칼각 일본? 앉는 습관 하나가 평생 건강을 좌우한다

겨울마다 돌아오는 ‘급성 장폭풍’… 노로바이러스, 아이들 먼저 덮쳤다

아오모리 강진, 철도·항만·도심 모두 멈췄다… 충격 확산

경기도, 숨겨진 가상자산까지 추적했다… 50억 회수한 초정밀 징수혁신으로 대통령상 수상

간병 파산 막아라... 경기도 'SOS 프로젝트' 1천 가구 숨통 틔웠다 120만 원의 기적,...

100세 시대의 진짜 재앙은 '빈곤'이 아닌 '고독', 당신의 노후는 안전합니까...

브레이크 밟았는데 차가 '쭉'... 눈길 미끄러짐, 스노우 타이어만 믿다간 '낭패...

"AI도 설렘을 알까?"... 첫눈 오는 날 GPT에게 '감성'을 물었더니

응급실 뺑뺑이 없는 경기도, '적기·적소·적시' 치료의 새 기준을 세우다

GTX·별내선·교외선이 바꾼 경기도의 하루… 이동이 빨라지자 삶이 달라졌다

행복은 뇌에서 시작된다. 신경과학이 밝혀낸 10가지 습관

행복은 뇌에서 시작된다 신경과학이 밝혀낸 10가지 습관

자신을 칭찬할 수 있는 용기, 삶을 존중하는 가장 아름다운 습관

아이젠사이언스생명연, AI 신약 개발 초격차 확보 전략적 동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