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 응암3동 주민센터 4층, ‘스마트 실버교육’ 현장. 평균 연령 68세의 수강생들이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있다. “선생님, QR코드는 어떻게 찍어요?” “카카오톡 선물받은 것은 어떻게 사용해요?” 익숙하지 않은 손놀림이지만, 얼굴에는 배움의 의지가 가득하다.
정부는 올해 ‘디지털 포용사회 실현’을 핵심 정책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디지털 문해력의 격차가 ‘복지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모든 세대가 그 혜택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지금, 고령사회는 ‘기술을 누가 사용할 수 있는가’라는 새로운 복지의 문턱 앞에 서 있다.

디지털 격차, 새로운 사회적 불평등의 그림자
“은행 앱을 못 써서 돈을 찾으려면 아들한테 부탁해야 해요.”
70대 수강생 김정자 씨(가명)는 스마트폰을 쥔 채 웃었다. 그녀에게는 단순한 앱 설치가 아니라, ‘자립의 시작’이다. 이처럼 시니어 세대에게 디지털 기술은 단순한 편리함이 아니라 존엄과 자율성의 문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54%가 ‘디지털 기기 사용에 자신이 없다’고 응답했다. 이 격차는 행정, 금융, 의료, 복지 등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공공서비스가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디지털 접근 불능층’은 사회적 배제의 위험에 놓인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격차는 소득이나 교육 수준 못지않은 새로운 사회적 불평등”이라고 지적한다.
시니어 디지털 교육, 복지정책의 중심으로
정부는 2020년부터 ‘디지털배움터’ 사업을 통해 전국 1,000여 개 거점센터에서 교육을 진행 중이다. 기초부터 금융앱, 전자민원, 키오스크 사용까지 폭넓게 다루지만, 교육 시간은 짧고 지속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응암3동 주민센터 스마트실버 교육현장에서 만난 주민정 강사(크레센티아 대표, 대한인식생명교육사회적협동조합 전임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시니어분들의 배움의 열정에서 생존의지를 느끼곤 합니다. 디지털 교육은 단순히 기계 조작이 아니라, 삶의 연결을 배우는 일입니다.”
또한 그는
"시니어 세대는 젊은 층보다 학습 속도가 느립니다. 따라서 교육정책은 ‘속도 중심’이 아닌 ‘경험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라고 전하며 정부의 교육정책이 단순한 디지털 훈련을 넘어, 노년의 삶의 질 향상과 복지 접근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자체와 민간이 함께 만드는 포용적 교육 모델
현장에서는 지자체의 역할이 더욱 두드러진다. 부산시 남구의 ‘스마트 어르신 아카데미’는 지역 통신사와 협력해 스마트폰 활용, AI 스피커 사용법, 디지털 금융 교육을 함께 진행한다. 참여한 어르신들은 “집에서도 AI 스피커에게 날씨를 묻고, 손주 얼굴을 영상통화로 본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성남시는 공공도서관 내 ‘디지털 체험존’을 조성해, 시니어들이 직접 태블릿으로 뉴스 구독, 음악 감상, 온라인 민원 신청 등을 체험하도록 했다. 이런 모델은 중앙정부의 일방적인 교육보다 생활 속 디지털 포용을 현실로 만든다.
또한 기업의 참여도 확산 중이다. KT, 네이버, 카카오 등은 ‘디지털 동행 프로젝트’를 통해 전국 각지에서 시니어 맞춤형 교육과 멘토링을 진행하고 있다. 정책과 민간의 손이 맞잡을 때, ‘디지털 격차 해소’는 구호가 아니라 현장의 변화가 된다.

디지털 역량 강화, 세대 통합의 시작점
서울의 한 대학생 멘토 김도윤 씨(23)는 매주 토요일마다 어르신들에게 스마트폰을 가르친다.
“처음엔 답답했지만, 지금은 할머니들이 제 이름을 불러주실 때 정말 뿌듯해요.” 그의 말에는 세대 간의 ‘연결감’이 묻어 있었다.
디지털 교육은 기술을 배우는 과정이 아니라 세대 간의 이해를 회복하는 통로다. 시니어가 스마트폰을 배우고, 청년이 가르치면서 생기는 관계의 온도는 단순한 교육 이상의 사회적 의미를 가진다. 사회학자들은 이를 “세대 간 상호작용 기반의 사회적 자본”이라 부른다. 즉, 디지털 문해력은 고립을 줄이고, 공동체를 다시 엮는 복지 인프라로 작동한다.
복지의 미래는 디지털 포용에서 시작된다
디지털은 단순히 기술이 아니다. 이제 복지의 언어는 ‘돌봄’을 넘어 ‘연결’로 바뀌고 있다. 시니어가 온라인으로 병원을 예약하고, 정부 서비스를 스스로 신청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사회는 ‘디지털로 모두가 함께 사는 시대’로 나아간다. 시니어의 디지털 문해력은 복지의 새로운 기준이다.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도구이며, 고령사회의 미래를 결정짓는 열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