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수도 뉴델리에는 라즈가트(Raj Ghat)라는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의 추모공원이 있다. 그곳을 직접 가본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이 추모공원에 있는 추모 기념석에는 간디가 말한 사회를 병들게 하는 다음과 같은 현대판 칠거지악(七去之惡: 7 Blunders of the world)이 새겨져 있다. 이 칠거지악은 간디가 손자인 아룬 간디(Arun Gandhi: 시민운동가)에게 준 경구(警句)라고 한다.
첫째는 원칙 없는 정치(Politics without Principle)이다. 정치가 무엇인지도,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권력욕, 정권욕에 사로 잡혀 있다면 국민은 불행해 질 것이다.
둘째는 도덕성 없는 상업(Commerce without Morality)이다. 경제는 모두가 다 함께 잘살자는 철학이 깔려 있어야 한다. 거래를 통해 손해를 보고 피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있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있는 자의 탐욕은 억제돼야 한다.
셋째는 노동 없는 부(Wealth without Work)이다. 열심히 일해서 소득을 얻는 자들의 근로의욕을 말살시키고 노동가치를 떨어뜨리는 불노소득이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넷째는 인격 없는 지식(Knowledge without Character)이다. 교육의 목적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품격있는 지성을 갖추도록 하는데 있어야 한다. 즉, 잘난 사람의 양성이 아니라 떳떳한 사람의 양성에 있어야 한다.
다섯째는 인간성 없는 과학(Science without Humanity)이다. 자연환경을 훼손하는 무분별한 개발과 비인간적 과학기술은 인류를 결국 파멸의 길로 몰고 갈 것이다.
여섯째는 양심 없는 쾌락(Pleasure without Conscience)이다. 즐거움은 행복의 원천이지만 무분별한 쾌락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혐오감과 수치심을 일으킨다.
일곱째는 희생 없는 신앙(Worship without Sacrifice)이다. 희생과 헌신을 전제로 하지 않는 신앙은 독단이 되고 순수한 영혼에 대한 정신적 폭력이 된다.
위와 같은 간디의 현대판 칠거지악(七去之惡)에 훗날 손자인 아룬 간디(Arun Gandhi)가 “책임없는 권리(Rights without responsibilities)”를 추가하여 현대판 팔거지악(八去之惡)이 되었다. 이 8가지 중에서 3가지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노동 없는 부(Wealth without Work), 희생 없는 신앙(Worship without Sacrifice), 그리고 책임 없는 권리(Rights without Responsibilities)”를 선택하겠다. 그 이유는 너무도 간단명료하다. 오늘도 돈을 쉽게 벌려는 사람들이 넘치고, 종교를 치부의 수단으로 삼는 사이비 종교인들이 넘치고, 특권을 누리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책임은 지지 않는 정상배들이 너무도 넘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없는 부”는 무노동무소득(無勞動無所得)이라는 경제의 불변적 원칙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망국의 원인이 된다. 생산노동이 없다는 말은 놀고먹는 자가 많다는 말이다. 놀고먹은 자가 많은 사회가 갈 길은 망하는 길뿐이다. 노동가치설이 입증하듯 생산노동이 없으면 생산가치(수입)도 없다. 수입이 없으면 손가락만 빨게 될 것이고 그런 가정과 사회는 결국 파멸하고 말 것이다. 이것은 상식이요, 불변적 천리이다.
희생 없는 신앙이란 사이비 종교라는 말이다. 쉽게 말하면 “나는 멋진 말(經)을 줄테니 너는 기도하고 돈 바치고 몸 바쳐라”는 말이다. 아무리 멋진 말이라 할지라도 말과 돈을 바꾸자는 거래가 과연 성립될 수 있단 말인가? “희생 없는 신앙”은 하느님을 앞세워 그런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기꾼 중의 최고 사기꾼과도 같다.
책임 없는 권리는 양심없는 불한당들이나 부르짖을 수 있는 권리이다. 모든 권리에는 의무가 따른다. 가장이라는 자리는 식솔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이 따르는 자리이고, 사장이라는 자리는 종업원들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책임이 따르는 자리이듯,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무원이라는 자리는 국부를 높이고, 국민의 자유와 국가의 안위를 지키는 책임이 따르는 자리(권좌)이다. 그러나 현실적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들은 자기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 먼저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는 자들처럼 보인다.
선출직 공무원이든 임용직 공무원이든 그 자리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는 자리이다. 공무란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폭설이 쏟아지면 개인은 그냥 방에 틀어박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공무원은 사람들이 무사히 다닐 수 있도록 도로의 눈을 치우자고 독려하며 나서야 한다. 그런 책임이 있는 사람이 바로 공무원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공무원은 국민도 나라도 필요로 하지 않는 공무원이다. 홍수가 나도, 회오리 바람이 불어 집채를 날려도, 심지어 산불이 나도 피해를 챙기고 복구하는 일보다 보여주기식 사진찍기에 바쁜 정치인들은 정치건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즉, 현대판 칠거지악의 주인공일 뿐이다. 어느 나라 백성들이 그런 정치인, 그런 고위 공무원을 원하겠는가?
-손 영일 컬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