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의 작은 마을 호가든(Hoegaarden) 은 오랫동안 안개와 함께 아침을 맞는 조용한 농촌이었다. 그러나 이 평범한 마을이 세계 맥주 역사의 출발점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중세 수도사들은 수도원 내에서 포도주 대신 맥주를 빚었다. 수도사들은 단순한 음료가 아닌, “깨끗한 물이 귀하던 시절의 영양 대체식”으로 맥주를 만들었다. 그중 호가든 마을의 수도사들은 특이한 비법을 사용했다.
보리 대신 밀(wheat) 을 섞어 부드럽고 탁한 빛깔을 띠게 만든 것이다. 여기에 오렌지 껍질과 코리앤더 씨앗을 더해 향긋한 향을 입혔다. 이렇게 만들어진 맥주는 오늘날 ‘벨지안 화이트 에일(Belgian White Ale)’이라 불린다.
호가든 맥주는 단순한 술이 아니었다. 벨기에 사람들에게는 “자연의 순수함과 전통의 상징”, 즉 정체성을 담은 문화였다. 수도사들의 수작업으로 빚어진 이 맥주는 16세기부터 호가든 마을을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고, 사람들은 “하얀 안개 속의 맥주”라 부르며 그 부드러운 맛을 기억했다.
그러나 1950년대 들어 시대는 급격히 변했다. 대량생산의 바람이 불며 수공예 맥주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1960년대 초, 마지막 호가든 양조장이 문을 닫으며 마을에는 더 이상 밀맥주 향이 남지 않았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피에르 셀리스(Pierre Celis) 다. 그는 호가든에서 태어난 젖소 농부였지만, 잃어버린 전통의 맛을 잊지 못했다.
“우리의 맥주는 사라졌지만, 그 영혼은 여전히 여기 있다.” 그는 옛 수도사들의 기록을 뒤지고, 마을 어르신들의 기억을 되살려 다시 맥주를 빚기 시작했다. 1966년, 피에르 셀리스는 마침내 ‘호가든’이라는 이름의 맥주를 부활시켰다.
그의 수제 맥주는 이내 벨기에 전역에서 인기를 얻었다. 1970년대 들어 호가든은 “옛 전통의 부활”을 상징하는 브랜드가 되었고, 1980년대에는 AB InBev(현 세계 최대 맥주 기업)에 인수되며 글로벌 무대로 진출했다.
투명한 유리잔 속의 뿌연 맥주, 오렌지 향과 부드러운 거품, 특유의 육각형 병은 세계 시장에서 새로운 감성을 전했다. ‘호가든’은 단순한 맥주가 아닌, 유럽 전통과 감성을 세계화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21세기에 들어서며 호가든은 ‘감성’으로 다시 한 번 도약했다. 거친 맥주 시장에서 강렬한 맛과 알코올을 내세우는 브랜드들과 달리, 호가든은 ‘순수함과 여유’를 내세웠다.
광고 슬로건은 “Naturally Different” 인공적이지 않은, 본연의 자연스러움을 강조했다. 잔잔한 음악, 투명한 유리잔 속 흰 거품, 그리고 창가에 앉은 사람들의 미소. 호가든은 ‘한 잔의 휴식’이라는 감성으로 MZ세대를 사로잡았다.
특히 한국 시장에서는 ‘화이트 맥주’의 정체성을 감각적인 디자인과 마케팅으로 풀어내며, ‘여유로운 삶’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SNS에서는 ‘호가든 모먼트’, ‘화이트 감성’이라는 해시태그가 퍼졌고, 소비자는 맥주를 단순한 음료가 아닌 라이프스타일의 표현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호가든, 한 잔의 맥주가 만든 문화의 유산
호가든의 역사는 잃어버린 전통을 되살린 한 사람의 신념, 그리고 자연스러움으로 세상을 사로잡은 브랜드의 감성 전략의 결합이다.
그 시작은 단지 한 수도사의 실험에서 비롯되었지만, 오늘날 호가든은 “전통의 현대화”라는 개념을 완벽히 구현한 브랜드가 되었다.
호가든의 투명한 유리잔 속에는 단순한 맥주가 아니라, 벨기에 사람들의 문화와 철학, 그리고 세상을 바꾼 한 잔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한 잔이 전 세계에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진정한 혁신은 새로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본질을 되찾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