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이 사라진 도시, 산업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미래도 없다
— 마르크스, 하이데거, 아렌트가 던지는 ‘도시와 인간의 질문’
“인간의 노동은 인간의 본질을 실현하는 행위다.” — 카를 마르크스
한국의 도시가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지방 중소도시들은 산업기반의 붕괴와 함께 청년층 인구가 사라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지방 중소도시 70곳 이상이 ‘청년비율 10% 미만’의
고령·공동화 지역으로 분류된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노동을 “자기 자신을 세계 속에 실현하는 행위”라 했다.
하지만 현대의 산업 구조는 그 노동을 인간으로부터 분리시켰다.
노동이 자본의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청년은 더 이상 ‘노동을 통해 세계에 참여하는 존재’가 아니다.
지방 산업이 무너지고 수도권 대기업 중심 구조가 고착되면서,
청년의 선택지는 오직 하나가 되었다 — “서울로 가거나, 포기하거나.”
청년은 노동을 잃은 것이 아니라,
노동이 인간다운 의미를 잃은 시대를 마주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이런 현상을 ‘소외(alienation)’라 불렀다.
노동의 주체가 더 이상 자기 일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할 때,
인간은 자신과 세계로부터 단절된다.
지금의 도시에서 청년이 사라지는 이유는,
단순한 인구유출이 아니라 존재의 소외 때문이다.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 마르틴 하이데거
산업화 이후 한국의 발전은 ‘기술’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기술을 경계했다.
그는 기술을 단순한 효율의 도구로 보지 않았다.
기술은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고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오늘의 도시를 지배하는 기술은 ‘효율’과 ‘속도’다.
기업은 생산 효율을 위해 사람을 줄이고,
도시는 경쟁력 유지를 위해 청년을 흡수하지만,
그 과정에서 삶의 의미와 공간의 균형이 사라졌다.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는 ‘세계를 자원으로만 바라보는 태도(Ge-stell, 가설적 사유)’에 갇혀 있다.
도시와 인간, 청년과 일자리가 모두 ‘최적화할 수 있는 데이터’로만 존재한다.
그 결과 지방의 산업은 존재로서의 의미를 잃은 공간이 되었다.
기술이 인간을 해방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인간을 기술의 논리 속에 가두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
청년이 떠나는 도시의 진짜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존재론적 위기다.
“노동은 인간의 조건이지만, 행위는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 한나 아렌트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활동을 세 가지로 구분했다 —
노동(labor), 작업(work), 행위(action).
노동은 생존을 위한 활동이고,
작업은 세계를 창조하는 행위이며,
‘행위’는 인간이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세계를 여는 창조적 활동이다.
현대의 산업구조는 청년을 ‘노동자’로만 규정한다.
그들에게 주어진 일은 생존의 수단이지,
세계와 연결되는 창조의 과정이 아니다.
정책의 초점은 여전히 일자리 숫자 늘리기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진짜 산업구조개혁이란
청년이 ‘행위자(Actor)’로 참여할 수 있는 경제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럽의 일부 도시들은
지역 청년들이 사회문제 해결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경제·복지·환경의 경계를 허무는 ‘사회적 산업 구조’를 실험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아렌트가 말한 “공동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행위”다.
한국의 정책이 ‘고용률’에만 머문다면,
청년은 여전히 시스템 속 부속품일 뿐이다.
이제는 ‘일하는 인간’이 아니라 ‘행위하는 인간’을 위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
“모든 혁명은 인간이 자신을 되찾는 과정이다.” — 카를 마르크스
“기술이 인간을 잊게 만들 때, 철학은 다시 인간을 호출한다.” — 하이데거
“정치란 인간이 함께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일이다.” — 한나 아렌트
청년이 사라진 도시는 경제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 존재의 의미를 잃은 사회의 신호다.
마르크스는 “노동을 되찾는 것”을 혁명이라 했고,
하이데거는 “존재의 사유로 돌아가는 것”을 철학의 과제라 했다.
아렌트는 “공동의 세계를 회복하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라 했다.
이 세 관점을 합치면,
산업구조개혁은 기술적 조정이 아니라 인간 회복의 과정이다.
청년이 살아야 도시가 존재한다.
청년이 일할 수 있어야 기술이 의미를 갖는다.
청년이 사유할 수 있어야 사회가 지속된다.
도시의 미래는 정책이 아니라 철학에서 시작한다.
‘청년이 사라진 도시’의 위기는 곧
‘인간이 사라진 산업’의 경고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