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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엽 칼럼] 가난한 밥상, 풍요로운 문화 – 착한가격과 인문학적 가치

제7회 코스미안상 은상

[당선소감]

 

한 도시의 밥상은 단순한 식문화가 아니라 그 사회가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글 ‘가난한 밥상, 풍요로운 문화’는 ‘착한가격’이라는 제도를 통해 한 끼의 경제와 공동체의 품격이 만나는 지점을 이야기해 보고자 했습니다. 밥상은 언제나 관계의 언어이며, 우리가 서로를 시민으로 호명하는 일상의 의식(儀式)입니다.

 

이 상은 제게 ‘공공 인문학’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확신을 주었습니다.

 

화려한 레스토랑의 조명이 아닌, 시장 골목의 김 서린 밥상 위에서 사람과 사람이 다시 만나는 장면을 기록할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기쁨입니다. 글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것은 ‘가난함의 미학’이 아니라 함께 먹을 수 있는 사회의 윤리였습니다.

 

끝으로 코스미안상 운영진과 심사위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 글을 하나의 결승점이 아니라, 시민의 일상 속 인문학을 다시 세우는 출발점으로 삼겠습니다. 함께 밥상에 둘러앉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지역과 사람의 이야기를 꾸준히 써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덕엽 칼럼] 가난한 밥상, 풍요로운 문화 – 착한가격과 인문학적 가치

 

한 도시의 얼굴은 대개 ‘화려한 레스토랑’이 아니라 ‘소박한 밥집’에서 드러난다. 점심시간이면 시장 골목에 김이 서리고, 서툰 사투리의 인사가 그릇 위로 얹힌다. 밥상은 칼로리를 넘어 관계를 차려 내는 공간이고, 지역의 기억을 푸짐하게 담아내는 그릇이다. 그래서 인류학과 철학은 오래도록 ‘함께 먹는 행위’를 공동체의 원형으로 주목해 왔다. 밥상은 우리가 서로를 시민, 이웃, 동료로 호명하는 일상의 의식(ritual)이다.

 

하지만 요즘 한 끼는 빠르게 비싸지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2024~2025년 외식물가는 소비자물가보다 높은 상승세를 이어 왔다. 올해 4월 전국 외식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대 상승을 기록했고, 여름 성수기 메뉴(삼계탕·냉면 등)도 전년 대비 추가 인상 흐름을 보였다. 이러한 추세는 가계의 체감 부담을 키우며, ‘다 같이 먹는 밥상’의 보편성을 위협한다.

 

이때 ‘착한가격업소’라는 제도가 가진 의미가 커진다. 행정안전부는 지자체와 함께 정기·수시 점검을 통해 업소의 적격 여부를 심사하고, 위생·친절·지역 기여 등을 종합 평가하여 지정을 유지·취소한다. 최근에는 이용 편의를 위해 공식 홈페이지를 개편하고, 지역별 현행화를 독려하고 있다. 제도는 단순 ‘싼 집’의 홍보가 아니라, 가격의 합리성과 지역 공동체의 선순환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려는 시도다.

 

소비자 측 데이터도 이 논지를 보강한다. 한국소비자원·소비자24의 외식비 정보는 품목별·지역별 가격 흐름을 공개해 ‘보편적 한 끼’의 기준선을 가시화한다. 냉면·비빔밥·백반·칼국수 등 일상 메뉴들의 평균 가격은 도시·권역별로 차이가 존재하지만, 공공 데이터의 축적은 지역정책·상생정책의 근거로 기능한다. 정책은 감각이 아니라 수치 위에서 설계되어야 하며, 착한가격업소는 바로 그 수치를 생활의 언어로 번역하는 현장이다.

 

인문학은 이 장면을 어떻게 해석할까. 부르디외는 ‘구별짓기’에서 음식 취향이 사회적 위계와 결합해 ‘구별의 상징’으로 기능한다고 분석했다. 고가의 미식은 소수가 향유하는 구별의 도구가 되기 쉽지만, 서민 밥상은 다수가 참여하는 평등의 무대가 된다. 누구나 접근 가능한 가격의 밥상에서 우리는 공동체의 연대와 상호 돌봄을 체험한다. 다시 말해, 저렴함은 천한 가치가 아니라 민주적 가치다.

 

착한가격의 공간은 지역 정체성의 수문장 역할도 한다. 오래된 백반집, 시장통 국수집, 다소 투박한 식당 간판은 관광 브로슈어의 문장 몇 줄보다 도시를 더 정확히 묘사한다. ‘그 집 된장찌개의 간’ ‘그 시장 칼국수의 면발’ 같은 감각적 기억은 세대와 세대를 잇고, 외지인에게까지 전염되는 지역의 서사가 된다. 행안부의 관리·현행화 정책이 반복되는 까닭은, 이 서사가 단지 미각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의 자산으로서 기록·보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반론도 있다. “싸면 질이 떨어진다”, “인건비와 원가를 고려하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제도는 ‘무조건 싸게’가 아니라 적정 가격·적정 품질·투명한 관리를 삼각 축으로 세운다. 지정 취소와 재평가, 정보 현행화는 제도 남용을 막는 안전장치다. 동시에 소비자는 ‘싼 맛’이 아니라 ‘좋은 값(가성비+가치비)’을 지지함으로써 건강한 시장 신호를 보낼 수 있다. 가격이 아닌 관계의 품질이 충성도를 만든다는 점에서, 착한가격업소는 동네 상권의 회복 탄력성을 키우는 핵심 인프라다.

 

밥상의 윤리는 ‘함께 먹는 기술’이다. 한 끼를 마련하는 요리사의 손, 그릇을 맞잡는 손님들의 말, 설거지 소리와 회전하는 좌석의 리듬까지 모두가 공동체의 리듬을 만든다. 여기에 가격의 벽이 낮아질수록 참여는 넓어진다. 노인·청년·아이와 보호자, 이주민과 여행객까지 ‘한 도시의 일상’으로 초대받는다. 밥상은 궁핍을 감추는 장치가 아니라, 존엄을 평평하게 펴는 무대가 된다.

 

정책이 더 할 일도 분명하다. 첫째, 데이터 기반의 지원이다. 외식비 통계·카드 매출 자료·원재료 지수 등을 결합해 지역별 ‘한 끼 적정가’를 산정·공개하면, 업주와 소비자 모두 예측 가능한 기준을 갖게 된다. 둘째, 현장 혁신의 촉진이다. 표준 레시피·공동 구매·에너지 효율·세제 혜택 같은 실무적 패키지를 묶어 진입·유지 비용을 낮춰야 한다. 셋째, 문화화 전략이다.

 

착한가격 지도를 관광·교육·복지와 연결해 ‘도시의 식탁’을 시민교육과 지역 브랜딩의 소재로 삼을 수 있다. 이런 접근이 누적되면 ‘싼 집’은 좋은 시민성의 실험장으로 자리 잡는다.

 

결론적으로 가난한 밥상은 궁핍의 상징이 아니다. 오히려 모두가 참여하는 문화의 토대, 연대의 언어, 존엄의 최소 단위다. 물가 상승의 파고 속에서 착한가격업소는 ‘공정한 한 끼’의 기준을 지키는 최전선이다. 미각의 만족을 넘어 함께 먹을 권리를 보장하는 장치로서, 이 제도는 지역경제와 공동체 신뢰를 동시에 살린다. 

 

우리는 오늘도 그 소박한 상 위에서 같은 시간을 나누고, 같은 도시가 되어 간다. 그 풍요는 가격표가 아니라 사람 간의 거리를 얼마나 줄였는가로 측정될 것이다.

 

작성 2025.10.16 10:02 수정 2025.10.16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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