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이슬람 수니파의 강력한 보루이자 아랍 민족주의의 맹주를 자처했던 땅,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가 있었다. 그 이름은 중동의 질서를 지탱하는 하나의 거대한 기둥처럼 보였다. 그러나 역사의 거대한 풍랑은 그 견고해 보이던 성채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2003년, 바그다드의 하늘을 뒤덮었던 그 짙은 포연과 먼지를 우리는 기억한다.
그 견고함은 그러나, 환영에 불과했다.
이라크라는 땅은 본디 하나의 색으로 칠해진 곳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천 년 넘게 이어진 복잡다단한 균열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전체 인구의 약 60~65%는 시아파 무슬림이며, 약 15~20%의 수니파 아랍인, 그리고 또 다른 15~20%의 수니파 쿠르드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1^] 사담 후세인은 이 중 소수에 불과한 수니파 아랍인을 기반으로, 바트당이라는 세속적 사회주의의 이념과 철권통치를 통해 다수의 시아파와 북부의 쿠르드족을 억눌러왔다.
그의 통치는 '종교적'이라기보다는 '권력적'이었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동안에는 시아파 맹주 이란에 맞서는 '수니파의 방패'를 자처했지만, 정작 그의 정권은 1991년 걸프전 직후 남부에서 일어난 시아파의 봉기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잔혹함으로 진압했다. 그는 이슬람의 종파적 정체성 위에 군림하는, 바벨탑을 쌓아 올린 세속의 독재자였다.
2003년, "이라크 자유 작전"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폭풍이 이 탑을 무너뜨렸다. 한 독재자가 사라진 자리에 남겨진 것은 해방의 환호가 아니라, 그가 억지로 눌러왔던 모든 모순과 원한, 그리고 천 년 넘게 억눌려왔던 거대한 종파적 균열의 분출이었다.
결과는 참혹하고 역설적이었다. '자유'는 오지 않았다. 대신,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미군정의 성급한 '탈(脫) 바트당화(De-Ba'athification)' 정책은 국가를 지탱하던 최소한의 뼈대, 즉 군대와 경찰, 행정 조직을 통째로 해체해 버렸다.[^2^] 이들은 대부분 일자리를 잃고 분노한 수니파였다. 동시에, 억압에서 풀려난 시아파는 자신들의 다수 권력을 되찾기 위해 움직였다.
이라크는 거대한 진공상태에 빠졌고, 그 공백을 메운 것은 '민주주의'가 아닌 '총'이었다.
시아파는 시아파대로 민병대를 조직했고, 졸지에 모든 것을 잃은 수니파는 저항 세력으로 돌아섰다. 여기에 알카에다와 같은 외부의 지하디스트 세력이 유입되면서, 이라크는 걷잡을 수 없는 내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2006년 2월, 시아파의 핵심 성지 중 하나인 사마라의 알 아스카리 황금 돔 사원이 폭파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3^] 이는 봉인되어 있던 종파 간 증오에 불을 붙였다. 이후 바그다드를 비롯한 이라크 전역은 문자 그대로 '피의 강'이 되었다. 오늘은 시아파가 수니파 거주지를 습격해 보복하고, 내일은 수니파가 시아파 사원에서 자살 폭탄을 터뜨렸다. 한때 이웃이었던 이들은 서로의 종파를 확인하고 죽이는 살인귀가 되었다.
이는 단순히 한 국가의 몰락이 아니었다. '이라크'라는 이름으로 간신히 봉합되어 있던 공동체가 완벽하게 해체되는 과정이었다. 수니의 보루였던 이라크는 인구 다수를 차지하던 시아파의 손에 넘어갔고, 이는 곧 중동 전체의 세력 균형을 뒤흔드는 거대한 지각 변동의 진앙이 되었다.
가장 아이러니한 승자는 이란이었다. 8년간의 전쟁으로도 꺾지 못했던 적수 사담 후세인을, 그의 최대 적이었던 미국이 대신 제거해 준 셈이었다. 수니파의 장벽이 무너지자, 시아파의 맹주 이란은 시아파가 장악한 이라크를 통해 레바논과 시리아에 이르는 '시아 벨트(Shia Belt)'를 완성하는 지정학적 대승리를 거두었다.
한 영혼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 그토록 치열하듯, 한 문명권이 자신의 헤게모니를 재편하는 과정은 이토록 피비린내 나는 혼돈을 동반한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이라크의 먼지는 단순한 전쟁의 잔해가 아니다. 그것은 강압적인 힘으로 쌓아 올린 바벨탑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지는지 보여주는 역사의 증거다. 공포로 유지되던 질서가 사라진 자리에, 진정한 화해와 용서, 그리고 영혼의 근본적인 변화가 자리하지 못할 때, 그 땅은 어떻게 스스로를 파괴해 가는지 똑똑히 보여준다.
나는 고백한다. 진정한 '개혁'이나 '재건'은 정치 지도자의 선언이나 외부의 군사력에서 오지 않는다. 그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이 차가운 율법의 돌판이나 복수의 칼날이 아닌, 살아있는 진리의 말씀 앞에서 깨어지고 다시 태어나는 내면의 혁명에서만 시작된다.
이라크의 먼지는 우리에게 권력의 무상함과 역사의 아이러니를 가르쳤다. 그리고 이 무너진 바벨탑의 폐허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영혼에게 묻고 있다. 당신의 삶을 지탱하는 그 기반은 과연 견고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