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정서가 학습을 이끄는 보이지 않는 힘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이 흔한 말 속엔 진실이 있다. 아이가 공부를 ‘좋아하는가’, ‘자신 있다고 느끼는가’는 단순한 감정 문제가 아니라 학습 성취의 근본 요인이다. 초등 저학년 시기는 공부 그 자체보다 ‘공부에 대한 감정’을 배우는 시기다. 이때 느낀 ‘공부는 즐겁다’는 감정이 평생의 학습 태도를 결정한다. 반대로 ‘나는 못해’, ‘공부는 힘들어’라는 감정이 뿌리내리면 이후의 학습 의욕은 쉽게 꺾인다.
학습심리학자 캐롤 드웩(Carol Dweck)의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 연구는 이를 뒷받침한다. 아이가 실패를 성장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성취 수준이 높아지지만, 실패를 자기 부정으로 연결하면 시도조차 두려워한다. 즉, 정서적 안정은 인지적 성장의 전제조건이다. 감정이 안정되어야 집중이 가능하고, 자신감이 생겨야 탐구가 시작된다.
특히 초등 저학년은 감정 조절 능력이 막 발달하기 시작하는 시기로, 작은 성공과 인정이 아이의 자존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부모의 한마디 칭찬, 교사의 따뜻한 시선이 ‘공부정서’를 자라게 한다. 아이의 공부가 막힐 때, 그 원인은 종종 지능이 아니라 감정의 불안정에 있다.
2. 초등 저학년, ‘공부정서’가 뿌리내리는 결정적 시기
초등 1~3학년은 학습의 기초기이자 정서적 학습 태도의 형성기다. 이 시기에는 ‘무엇을 배우느냐’보다 ‘배움을 어떻게 느끼느냐’가 더 중요하다. 심리발달학자 에릭 에릭슨은 이 시기를 ‘근면성 대 열등감’의 단계로 정의했다. 즉, 노력의 결과가 인정받으면 근면성을 배우지만, 실패나 비교 속에서 부정적 경험이 누적되면 열등감이 자리 잡는다.

초등 저학년 아이가 “나 공부 잘해!”라고 말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성적표가 아니라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다. 자기효능감은 ‘나는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학습 동기를 지속시키는 핵심 심리적 에너지다. 연구에 따르면 초등학교 2~3학년 시절의 자기효능감은 중학교 이후의 학업 성취도와 정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 공부는 경쟁이 아니라 ‘놀이의 연장’으로 느껴져야 한다.
재미있게 배우고, 실수를 허용받는 환경에서 아이는 학습을 자연스럽게 자기 세계 안으로 끌어들인다. 하지만 지나친 성취 압박, 조급한 비교, 감정적 꾸중은 공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준다. 초등 저학년의 마음은 스펀지와 같아서, 감정이 먼저 흡수되고 지식은 그다음에 자리한다.
3. 감정이 무너지면 공부는 멈춘다: 부모와 교사의 역할
많은 부모가 “아이가 공부를 안 해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뒤에는 “공부가 싫어요”라는 감정이 숨어 있다. 공부를 싫어하는 이유를 물으면 대부분 “어려워서”, “선생님이 무서워서”, “엄마가 화내서”라고 답한다. 즉, 학습 부진의 상당 부분은 인지적 결핍이 아니라 정서적 상처에서 비롯된다.
교실에서의 교사 언행, 가정에서의 부모 태도는 공부정서를 결정짓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다. 교사의 따뜻한 피드백은 아이의 학습 동기를 촉진하지만, 부정적 비교나 비난은 정서를 위축시킨다. 학습 행동은 ‘감정-동기-행동’의 순환 구조로 작동한다. 감정이 위축되면 동기가 사라지고, 행동이 멈춘다.
부모 역시 감정의 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칭찬을 많이 받아서’가 아니라 ‘실패해도 괜찮다는 확신’을 가진 아이이다.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먼저 인정하고 공감할 때, 아이는 자신을 방어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예를 들어, “왜 틀렸어?” 대신 “이 부분이 어려웠구나. 같이 방법을 찾아보자.”라는 접근은 아이의 정서 회복력을 높인다. 교사와 부모가 함께 ‘정서적 코치’가 되어줄 때, 아이의 공부정서는 단단히 뿌리내린다.
4. 공부를 좋아하게 만드는 정서적 환경 만들기
아이의 공부정서를 키우는 핵심은 ‘감정 중심 학습 환경’이다. 즉, 감정을 존중하고, 작은 성취를 축하하며, 실패를 성장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문화다.
첫째, 감정 표현 훈련이 필요하다.
아이에게 “지금 기분이 어때?” “무엇이 어렵니?” 같은 질문을 자주 던지면, 스스로 감정을 인식하고 조절하는 능력이 자란다. 감정어휘가 풍부한 아이일수록 좌절에 대한 회복탄력성이 높다.
둘째, 성취보다 과정에 초점을 맞춘 칭찬을 해야 한다. “이 문제를 풀 때 정말 집중했구나”, “어제보다 글씨가 훨씬 또렷해졌어” 같은 피드백은 아이의 노력을 인정하는 방식이다. 결과 중심의 평가보다 과정 중심의 피드백은 학습에 대한 내재적 동기를 강화한다.
셋째, 정서적으로 안전한 교실 문화가 중요하다. 실수를 비웃지 않고,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는 분위기에서 학습은 생동감을 얻는다. 감정적으로 안전한 환경에서 아이는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할 수 있다.
넷째, 부모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 부모가 공부를 ‘성적 경쟁’이 아니라 ‘성장 과정’으로 바라볼 때, 아이의 감정도 안정된다.
결국, 아이는 부모의 감정 온도를 닮는다. 부모가 불안하면 아이도 불안하고, 부모가 여유로우면 아이도 도전한다.
공부정서를 돌보는 것은 단지 아이의 학습능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평생 학습자로 성장하기 위한 토대를 다지는 일이다.
감정이 자라야 공부도 자란다
초등 저학년의 공부정서는 지식보다 깊은 뿌리를 가진다.
감정은 학습의 토양이고, 그 위에 모든 인지가 자란다.
아이의 마음이 편안할 때 뇌는 열린다. 그리고 열린 마음에서 배우는 것은 오래 남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문제집이 아니라 ‘정서적 토대 위의 학습 문화’다. 공부를 강요하기보다 공부를 좋아하게 만드는 일, 그것이 진짜 교육이다.
부모와 교사, 그리고 사회가 함께 아이의 감정을 지켜주는 순간, 아이는 스스로 배우는 존재로 성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