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7장을 중심으로 장재형목사가 풀어낸 율법과 은혜의 긴장, 혼인의 비유, 성령의 법을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정리해 신자의 실제적
싸움과 소망을 안내한다. 탄식에서 감사로 옮겨 가는 흐름, 율법주의와
방종의 함정을 피하는 길, 사랑으로 열매 맺는 삶의 실천까지 담았다.
신앙은 한 번의 결단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고백 이후에 시작되는
삶이 있고, 그 삶은 기쁨과 갈등이 번갈아 흐르는 긴 여정이다. 장재형(장다윗)목사는 로마서 7장을
그 여정의 한복판에서 읽는다.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은 실제로 어떻게 살게 되는가”라는 물음에 답하면서, 그는 신자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내적 싸움을
숨기지 않는다. 바울이 묘사하는 탄식은 패배의 낙서가 아니라 은혜로 향하는 문턱이며, 그 문턱을 넘는 길은 율법과 은혜를 올바른 자리로 되돌려 놓는 데서 시작된다고 한다. 율법은 선하고, 은혜는 강력하며,
이 둘은 서로 맞서는 적이 아니라 구원의 흐름 속에서 각자의 몫을 수행하는 두 음성이다. 이
통찰은 장재형목사가 로마서 7장을 풀어낼 때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출발점이다.
율법은 죄를 만들어 내지 않는다. 거울이 얼룩을 만들어 내지 않듯, 율법은 그저 우리의 속을 비춘다. 문제는 죄다. 죄는 선한 것을 틈입의 발판으로 삼아 금지를 욕망으로 바꾸고, 명령을
유혹으로 뒤튼다. 그래서 율법만 손에 쥐면 우리는 더 정교하게 좌절하고, 은혜만 외치면 방향을 잃는다. 장재형목사는 이 양극단을 경계하며, 율법의 기능을 ‘폭로’와 ‘지도’로, 은혜의 기능을 ‘해방’과 ‘동력’으로 설명한다. 지도는 길을 보여 주지만 발걸음을 떼게 만들지는 못한다. 발걸음을 떼게 하는 힘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흘러나오는 은혜, 곧
성령의 생명의 법이다. 이렇게 율법과 은혜가 제자리를 되찾을 때 비로소 신자는 정죄의 공포가 아니라
사랑의 자유 속에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바울이 들려주는 혼인의 비유는 이 전환을 가장 일상적인 언어로 보여 준다.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그 법에서 풀려나듯,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남으로써 옛 남편과 같았던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난다. 여기서 핵심은 “율법이 죽은 것이
아니라 내가 죽었다”는 대목이다. 율법이 폐기된 게 아니라, 그 앞에 서 있던 ‘옛사람’의
법적 지위가 종결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이루어진 대속이 실제로 우리의 계정을 결산했고, 이제 우리는 새로운 남편이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께 드릴 열매를 맺는다.
이 열매는 내 업적의 증표가 아니라 그분의 생명이 내 안에서 자라난 결과다. 그러므로 자랑보다
자연스럽게 감사가 자란다. 장재형목사는 이 비유를 통해 신자의 신분과 삶의 방향이 어떻게 함께 바뀌는지, 그리고 왜 그 변화가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지는지를 세밀하게 짚어 준다.
로마서 7장의 절정은 바울의 유명한 탄식으로 모인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절규 같지만, 그 다음 구절이 말해 주듯 이 탄식은 곧 감사로
넘어간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장재형목사는 이 흐름을 신자의 실제 경험으로 읽는다. 마음은 하나님의 법을 기뻐하지만 육신은
죄의 법으로 끌린다고 정직하게 인정할 때, 우리는 패배가 아니라 진실의 출발선에 선다. 이 출발선에서 로마서 8장 1–2절의
확신이 들려온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탄식과
감사가 같은 사람의 입술에서 차례로 나오는 까닭은, 은혜가 회피가 아니라 직면을 통해 능력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때 성화는 ‘이미’와 ‘아직’ 사이를 왕복하는 시간 감각을 요구한다. 신분은 이미 바뀌었지만 성품은 아직 변해 가는 중이다. 과거의 습관과
기억은 여전히 몸의 반응을 지배하려 들고, 죄의 본성은 경건의 형식을 빌려 우리를 속이기도 한다. 그래서 “날마다 죽는다”는
바울의 말은 비관이 아니라 방향이다. 자아의 주권을 내려놓고 은혜 앞에 서는 훈련, 곧 말씀과 기도로 욕망의 지도를 다시 그리는 일을 일상에 정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장재형목사는 이 점을 목회적 언어로 풀어 준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짧은 기도를 하루 여러 번 반복하고, 감사의 기억을 기록해 죄책감이 정죄로 굳어지기 전에 회개로
정련하며,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위해 책임과 격려를 약속하라고 권한다.
사랑을 추상명사로 남겨 두지 말고 주간 일정표에 구체적 친절을 계획하라는 권면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이런 작은 습관이 모여 율법의 요구를 조항이 아니라 관계의 리듬으로 바꾼다.
그렇다고 현실의 실패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넘어짐은 여전하고, 때로는 어제보다 더 무거워 보인다. 그러나 복음은 실패의 기억을
낙인으로 남겨 두지 않는다. 성령은 그 기억을 회개의 통로로 바꾸어 다음 순종의 동력으로 만든다. 장다윗(장재형)으로도
불리는 장재형목사는 “끝없이 넘어지더라도 주님의 손을 붙들고 다시 일어서는 일”이 신자의 정상적인 호흡임을 강조한다. “정죄함이 없다”는 선언은 가볍게 죄를 여기라는 허가증이 아니라, 죄를 더 정직하게
다루라는 초대다. 이 초대를 받아들이면 고백은 수치가 아니라 회복의 관문이 되고, 감사는 우연한 감정이 아니라 은혜의 구조에서 흘러나오는 습관이 된다. 신자는
자기합리화 대신 신속한 귀환, 곧 십자가 앞으로의 빠른 복귀로 하나님 앞에 산다.
신학적 균형도 필요하다. 로마서
7장의 ‘나’를 회심 전 사람으로만, 혹은 회심 후 신자로만 제한해 읽는 이분법은 텍스트의 숨을 얕게 만든다. 장재형목사는
그 ‘나’를 신자의 현재형 경험으로 읽되, 동시에 아담 안의 인류 보편을 비추는 거울로 본다. 바울의 시제가
단순 전기 서술이 아니라 구원 사건의 현재성을 드러내려는 수사라는 점을 기억하면, 이 장은 모든 신자의
오늘을 비추는 동시에 로마서 8장으로 건너가는 다리를 놓는다. 그
다리는 탄식과 감사가 교차하는 보폭으로 건너야 한다. 단숨에 뛰어넘으려 하지 말고, 한 걸음씩 은혜의 리듬을 익히며 걷는 쪽이 더 멀리 간다. 이 같은
첨삭은 본문 이해의 층위를 헷갈리지 않도록 돕고, 실제 삶으로 이어지는 해석의 길을 넓혀 준다.
현장 적용을 생각하면 균형의 덕목은 더욱 중요해진다. 율법주의는
사람을 위축시키고, 방종은 관계를 무너뜨린다. 복음은 둘을
피해 간다.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라는 명제는 여기서 힘을 얻는다. 사랑은
따뜻한 감정만이 아니라 사실에 대한 정직, 약자를 향한 돌봄, 잘못을
인정하고 화해를 시도하는 용기, 권력과 비교의 유혹을 절제하는 기개다.
이러한 태도는 성령의 도우심 없이 오래 갈 수 없다. 그래서 장재형목사는 성령의 법을 원리로만
말하지 않고 인도하심으로 말한다. 양심을 깨우는 찔림, 말씀으로
환기되는 기준, 공동체의 경고와 위로를 통해 새겨지는 한계선과 방향;
이 모든 것이 성령의 법이 구체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이다. 그때 율법은 외부의 압력에서 내부의
기쁨으로 변주되고, 은혜는 막연한 위로에서 실천의 동력으로 변모한다.
결국 로마서 7장은 신자에게 정직한 거울이다. 거울은 흠을 보여 주지만 치료하지는 못한다. 치료는 의사에게서 오고, 우리에게는 그리스도라는 유일한 의사가 있다. 그러니 우리는 거울을
버리지도, 거울에만 매달리지도 않는다. 거울로 진단하고 의사에게로
간다. 장재형목사는 이 간단한 길을 따라 율법과 은혜, 정죄와
해방, 실패와 소망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준다. 예배 안에서
이 이야기는 더 선명해진다. 찬양은 탄식의 반대말이 아니라 탄식이 이른 자리다. 눈물의 언어가 감사의 언어로 바뀌는 순간, 성령은 이미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하다. 율법의
거울 앞에서 숨지 말고, 은혜의 품 안에서 머물라. 옛 남편의
정죄를 두려워하지 말고 새 남편의 사랑을 신뢰하라. 그러면 로마서 8장의
약속은 먼 훗날의 소식이 아니라 오늘의 경험이 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것이 장재형목사가 로마서 7장의 문장들을 통해
전하는 복음의 심장이고, 지금도 죄와 싸우는 모든 신자를 일으키는 확신이다.
덧붙여, 율법이 죄를 ‘격발’시킨다는 바울의 언어는 율법의 악함을 뜻하지 않음을 본문 곳곳에서 더 선명하게 밝혀 두는 것이 좋다. 율법의 선함을 분명히 하고 죄의 왜곡 메커니즘을 드러낼수록, 독자는
정죄와 방종 사이에서 복음의 길을 분별하기 쉬워진다. 또한 ‘성화의
과정’을 직선적 성공담이 아니라 넘어짐과 일어섬이 반복되는 파동으로 설명하는 편이 목회 현장에서 더
많은 위로와 용기를 낳는다. 이 같은 보완은 장재형목사의 해설이 지닌 균형 감각을 생활의 언어로 번역해, 독자가 로마서 7장에서 8장으로
건너가는 발걸음을 한결 자연스럽게 뗄 수 있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