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의 기억은 달콤하다. 그것은 한때 우리가 옳았음을 증명하는 훈장이자, 어두운 밤을 비추는 별빛처럼 우리를 인도한다. 그러나 그 빛이 너무 강렬할 때, 우리는 도리어 길을 잃는다. 과거의 영광이 오늘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고, 한때 빛나던 그 성취가 영혼을 잠식하는 우상이 되는 순간이 온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가장 빛나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 순간의 '나'는 완벽해 보였다. 모든 결정이 옳았고, 세상은 나의 예측대로 움직였다. 문제는, 우리가 그 순간의 '나'를 영원한 진리처럼 붙들고 놓지 못할 때 시작된다.
영국의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이러한 문명의 흥망성쇠를 관통하는 치명적인 병리를 '무상한 자아의 우상화(Idolatry of the Ephemeral Self)'라는 말로 통찰했다. 여기서 핵심은 '무상함(Ephemeral)'이다. 그것은 영원하지 않고, 찰나에 불과하며, 이미 지나가 버린 순간의 파편이다. 우리가 숭배하는 것은 진정한 '나'가 아니라, 과거의 성공이라는 박제된 '자아의 유령'이다.
거울 속의 우상: '그때의 나'라는 함정
이 우상화는 거대 문명이나 조직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이 글을 읽는 우리 각자의 삶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가장 내밀한 영적 전쟁이다.
한때 눈부신 성공을 거둔 창업가가 있다. 그는 시장을 꿰뚫는 직관과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했다. 모두가 그를 칭송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세상이 변하고, 새로운 파도가 밀려왔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그의 '성공 신화'에 열광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변하지 않았다. 아니, 변할 수 없었다. 그의 모든 전략은 과거의 승리 방정식을 복제하는 데만 머물렀다. 새로운 도전을 마주할 때마다, 그는 '지금 무엇이 필요한가'를 묻지 않고, '과거의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되물었다.
그는 살아있는 현재를 사는 것이 아니라, '성공했던 과거의 나'라는 우상에게 끝없이 제물을 바치고 있었다. 그 우상은 그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 변화하는 세상의 신호를 보지 못하게 했다. 그의 실패는 전략의 실패가 아니라, 과거의 자신을 신격화한 영혼의 실패였다. 성공의 단물이 쓰디쓴 독배가 되는 순간이다.
거대한 침몰: '우리가 쌓은 성'이라는 교만
이 비극은 조직의 영역에서 더욱 거대하고 참혹하게 나타난다. 한때 필름이라는 매체로 전 세계의 기억을 지배했던 거대 기업을 떠올려본다. 그들에게 '필름'은 단순한 제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의 정체성이자 신앙이었고, 그들이 이룩한 제국의 반석이었다.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빛이 여명처럼 밝아올 때, 그들 역시 그 빛을 가장 먼저 목격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빛을 환영하는 대신 외면했다. 왜냐하면 그 빛은 자신들이 평생 숭배해 온 '필름'이라는 우상을 위협하는 '이단'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경영진은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의 방식을 원할 것이다'라는 주문을 외웠다. 그들은 시장을 분석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었다. 그들의 몰락은 기술의 변화를 읽지 못한 경영의 실패 이전에, 자신들의 성공을 절대화한 '신학적 파산'이었다. 그들이 쌓아 올린 성공의 성은, 그들 스스로를 가두는 견고한 감옥이 되었다.
제국의 황혼: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길'의 종말
역사는 이러한 교만의 무덤으로 가득 차 있다. 인류가 알고 있는 가장 위대한 제국 로마(Roma)를 보라. 로마는 '길'을 만들었고, '법'을 세웠으며, '군단'으로 세계를 호령했다.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는 그들의 성공 방식은 당대 최고의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그 '길'과 '법'과 '군단'이 로마의 우상이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시스템이 영원히 유효할 것이라 굳게 믿었다. 제국의 경계 밖에서 새로운 세력(게르만)이 새로운 방식으로 힘을 키우고, 세상의 기후가 변하고 있었지만, 로마는 과거의 영광에 취해 있었다.
그들은 변화하는 현실에 맞춰 자신들의 시스템을 유연하게 바꾸는 대신, 낡은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그들이 만든 위대한 '길'은, 오히려 외부의 적들이 로마의 심장부로 빠르게 진격하는 통로가 되었다. 그들의 위대한 성공 공식이 바로 그들의 묘비명이 된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도전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해 스러진 것이 아니라, 과거의 성공을 놓지 못해 무너졌다.
유령을 깨뜨리고: 오늘을 살기 위한 고백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무상한 자아의 우상화'라는 치명적인 덫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토인비가 경고한 이 역사의 교훈은 우리에게 단 한 가지를 요구한다. 그것은 '유연성'이나 '혁신'이라는 세련된 말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겸손'이라는 고통스러운 자기 부정이다.
진정한 겸손은, 나의 가장 빛나는 성공이 '영원한 진리'가 아니라 '찰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것은 어제의 내가 이룬 성취가 오늘의 나를 구원해 주지 못한다는 쓰라린 진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성공은 축복이지만, 그 성공의 기억에 나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순간, 우리는 살아있는 시체가 된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성공했던 과거의 나'라는 유령이 아니라, 비록 실수하고 넘어질지라도 '오늘을 살아내며 배우는 나'이다.
이것은 매일 아침 거울 속에 비친 '과거의 우상'을 스스로 깨뜨리는 영적인 순례이다. 어제의 방식이 통하지 않음을 기꺼이 인정하고, 새로운 길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두려워하며 첫걸음을 내딛는 용기이다.
우리의 삶은 과거의 성공을 기념하는 박물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매일 새로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배움을 향해 나아가는 거친 들판이 되어야 한다.
진정한 성공은 과거의 업적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성취를 기꺼이 발판 삼아, 자신을 넘어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는 끊임없는 자기 파괴와 재창조의 과정이다. 성공의 왕관은 영원히 쓸 수 없다. 그것은 다음 도전을 위해 기꺼이 내려놓을 때만 그 빛을 유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