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여 문화살롱]사진만 찍고 떠나는 여행은 그만: 제주미술의 뿌리를 만나는 전시 ‘시대의 가교’

제주 여행의 새로운 시선: 왜 미술관인가

근현대 제주미술을 연 작가 17인, 그들의 삶과 창작의 궤적

자연·문화·사람을 담아낸 제주미술의 정체성 재발견

제주 여행을 깊게 만드는 또 하나의 길

제주를 여행하는 사람들의 선택지는 늘 풍부하다. 바람이 스치는 들녘, 절벽 아래 부서지는 파도, 고즈넉한 오름의 능선까지 어디에서나 감탄이 터져 나온다. 그러나 이 아름다움을 조금 더 깊고 단단하게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바로 제주도립미술관을 통해 제주미술의 흐름을 만나는 것이다.

 

2025년 11월 4일부터 30일까지 열린 전시 “시대의 가교: 제주미술의 선구자들”은 이러한 관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제주미술이 어떤 시대적 결을 거쳐 오늘에 도달했는지 보여주는 지적 여정이다. 1900~1960년대에 태어난 작고 작가 17인의 발자취는 근현대 제주미술의 틀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생생하게 보여 준다. 이 전시는 여행자에게 ‘제주를 보는 새로운 눈’을 선물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제주 여행의 새로운 시선: 왜 미술관인가

대부분의 여행자는 사진 명소, 맛집, 자연경관을 중심으로 제주를 기억한다. 하지만 제주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이 땅을 살아온 사람들의 시선이 담긴 예술을 마주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미술은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시간과 감정, 지역의 정서를 가장 직접적으로 담아내는 표현 방식이기 때문이다.

제주도립미술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제주의 자연·역사·문화가 예술이라는 필터를 통해 다시 태어나는 곳이다. 관광지가 주는 즉각적 즐거움과 달리, 미술관은 여행자가 제주를 느리게 바라보고 사유하게 한다. 특히 이번 전시는 제주미술의 뿌리를 구성한 작가들의 삶과 작품을 통해, 제주라는 땅이 어떤 예술적 원천을 품어왔는지를 깊이 이해하게 만든다.

 

근현대 제주미술을 연 작가 17인, 그들의 삶과 창작의 궤적

‘시대의 가교’ 전시에 참여한 17인은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작가들이지만, 그들의 작품은 여전히 제주미술의 토대 위에서 강하게 숨 쉬고 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혼란한 재건기의 시기를 건너며 각자의 예술 세계를 만들어냈다.

일본 유학을 거친 1세대 작가들은 근대적 미술 교육을 제주에 처음 들여왔고, 그들의 제자들인 2세대 작가들은 이를 토대로 제주미술의 얼개를 다졌다. 이어 3세대 작가들은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지역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확장하며 오늘의 제주미술계를 구축했다.

17인의 작품은 시대의 아픔과 개인의 사유, 그리고 제주라는 땅의 생명력을 동시에 담아냈다. 이들의 작업은 제주미술의 뿌리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그 단서를 제공하며, 그 자체로 한 시대의 시각적 기록이 된다.

 

일제강점기 1세대부터 3세대까지: 제주미술 형성의 역사적 흐름

제주미술은 단절이 아닌 연결의 역사를 품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1세대 작가들은 한국 근대미술의 영향을 받으며 지역 미술의 첫 장을 열었다. 이들은 새로운 재료와 기법을 제주에 들여왔고, 시각 예술이 전문 영역으로 발전할 기반을 마련했다.

2세대는 이들의 가르침 아래 제주미술의 성장을 견인했다. 이들은 교육 현장을 중심으로 후학을 양성하면서 지역 미술 공동체를 형성했고, 동시에 창작자로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3세대 작가들은 한국 사회의 변화 속에서 지역성과 보편성 사이의 균형을 모색했다. 그들은 제주 고유의 자연과 민속, 생활문화를 재해석하며 제주미술의 확장된 정체성을 만들어냈다. 이번 전시는 이 세 세대가 하나의 지층으로 쌓여 오늘의 미술계를 이루기까지의 과정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자리였다.

 

자연·문화·사람을 담아낸 제주미술의 정체성 재발견

제주미술의 가장 큰 특징은 제주의 자연과 삶이 작품의 밑바탕을 이룬다는 점이다. 거친 바람, 현무암의 질감, 푸른 바다와 검은 땅, 그리고 그 위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얼굴과 이야기까지 모두 작품의 형상 속에 녹아 있다. 이미 고인이 된 작가들이 남긴 작품에는 당시 제주 사회의 공기, 생활의 온도, 개인의 고독과 기쁨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번 전시는 수십 년의 시간을 통과한 작품들이 제주미술의 정체성을 어떻게 키워왔는지 확인하게 해준다. 관람객은 작품 하나하나를 통해 제주라는 공간의 깊이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이는 여행자에게 단순한 감상이 아닌 제주를 이해하는 새로운 앵글을 제공한다.

 

제주를 깊게 보고 싶다면, 미술관으로 향하라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열린 ‘시대의 가교’ 전시는 단순히 과거 작가들을 소개하는 회고전이 아니었다. 이는 제주미술의 근현대사를 읽어내는 지적 탐험이며, 제주라는 공간을 바라보는 감각을 넓혀주는 경험이었다. 제주 여행이 자연경관의 감탄에 그치지 않고, 사유와 성찰을 품은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면 미술관 방문은 더없이 훌륭한 선택이다. 예술을 통해 제주를 다시 바라보는 순간, 여행은 사진 이상의 기억으로 자리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

작성 2025.11.18 15:57 수정 2025.11.18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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