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의 이웃인가?: 이웃에 대한 성경적 정의

-문밖에 쓰러진 이웃: 예수는 우리의 경계선을 어떻게 무너뜨리는가?

-예수의 가르침은 지금 우리 앞에 쓰러진 그 사람에게 다가가 이웃이 되어주는 것이다.

-예수의 마지막 명령은 단순하고도 명확하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 AI 이미지 (제공: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성경 누가복음 10장에 기록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지만, 그 익숙함이 때로 이 이야기가 가진 본래의 혁명적인 충격을 무디게 만들곤 한다. 이 이야기는 율법의 조문을 두고 벌이는 고상한 신학 토론이 아니다. 이것은 한 율법 교사가 자신의 기득권과 배타적인 세계관을 지키기 위해 던진, 정당화의 질문(“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29절)에 대한 예수의 전복적인 응답이다.

 

이야기는 한 율법 교사가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는 질문으로 예수를 시험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예수께서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는지 되물으시자, 그는 막힘없이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신 6:5; 레 19:18)고 대답한다.

 

문제는 이 두 번째 계명,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에 있었다. 예수께서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고 하신다(28절). 그러자 율법 교사는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결정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이 질문 속에 당시 유대 사회가 가졌던 견고한 장벽이 숨어 있다.

 

견고한 장벽: '우리'만의 이웃

 

율법 교사가 물었던 '이웃'(히브리어 '아흐')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옆집 사람' 정도의 개념이 아니었다. 구약의 율법적, 문화적 맥락에서 '이웃'은 '형제'와 거의 동의어였다. 이는 혈연, 종교, 그리고 언약 공동체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동족 유대인을 의미했다.

 

반면, 이방인이나 타국인('자르', '노크리')은 이 범주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 그들은 언약의 백성이 아니었고, 따라서 '이웃 사랑'이라는 율법의 의무에서 예외가 될 수 있었다.

 

이러한 배타성은 당시 유대인들의 삶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훗날 사도 베드로조차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행 10:28)라고 말할 정도로 이 장벽은 견고했다. 심지어 초대 예루살렘 교회조차 복음이 유대인에게만 해당한다고 생각하여, 이방인 선교를 위한 안디옥교회라는 새로운 구심점이 필요할 정도였다(행 11~13장).

 

특히, 사마리아인들은 이방인보다 더 경멸받는 대상이었다. 그들은 유대인들에게 혼혈이자 종교적 변절자로 낙인찍혀, 상종조차 하지 않는 원수였다.

 

율법 교사의 질문("내 이웃이 누구니이까?")은 바로 이 지점에 서 있었다. 그는 예수께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의 경계선은 어디까지입니까? 사마리아인이나 이방인도 포함됩니까, 아니면 그들을 제외해도 좋다는 율법적 근거를 주시겠습니까?"라고 묻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사랑의 범위를 '정의'하고 '한정'함으로써, 자신의 의무를 축소하고 자신을 정당화하려 했다.

 

충격과 반전: 경계선을 파괴하는 비유

 

예수께서는 이 질문에 직접 답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세계관 자체를 뒤흔드는 하나의 비유를 드신다. 바로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설정부터가 의도적이다. 한 '유대인'이 강도를 만나 거반 죽게 되었다. 이제 율법 교사의 관점에서 '이웃'을 판별할 시험대가 마련되었다.

 

율법의 실패: 제사장과 레위인

 

가장 먼저 그 길을 지나간 사람은 '제사장'과 '레위인'이었다. 그들은 율법 교사보다 더 엄격하게 율법을 알고, 성전에서 그것을 가르치고 집행하는 사람들이었다. 쓰러진 유대인은 그들의 기준에서 명백한 '이웃'이자 '형제'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31-32절). 어쩌면 시체를 만지면 부정해진다는 율법(민 19:11)을 핑계 삼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더 큰 율법의 핵심을 정면으로 위반했다. 이는 율법이 그들의 삶에서 생명력 있는 지침이 아니라, 자신들의 종교적 지위를 지키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음을 폭로한다.

 

그들은 강도 만난 자가 자신들의 '이웃'임에도 불구하고 이웃이 되어주기를 거부했다. 율법을 가장 잘 아는 자들이 율법의 정신을 가장 처참하게 짓밟은 것이다.

 

율법의 완성: 사마리아인

 

바로 그때, 유대인들이 그토록 경멸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이 등장한다. 만약 율법 교사의 관점이었다면, 사마리아인은 쓰러진 유대인을 보고 그냥 지나쳐도 아무런 비난을 받지 않을, 오히려 당연한 인물이었다. 그는 '이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의 비유 속 사마리아인은 모든 예상을 뒤엎는다. 그의 행동은 5단계의 구체적이고 전인적인 '사랑의 실천'을 보여준다.

 

첫째, 보고 불쌍히 여겼다(33절): 모든 것은 마음의 동기에서 시작된다. '불쌍히 여겼다'(헬라어 '스플랑크니조마이')는 문자 그대로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과 연민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상대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깊은 공감이다.

 

둘째, 가까이 갔다(34절): 그는 종교적, 민족적 장벽을 넘어 쓰러진 유대인에게 다가갔다. 제사장과 레위인이 '피하여' 갔던 그 거리를 그는 '좁혀' 갔다.

 

셋째,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었다(34절): 그는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내어주었다. 당시 여행자에게 기름과 포도주는 식량이자 가장 중요한 응급 치료제였다. 그는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자원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넷째,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34절): 그는 자신의 편의와 일정을 희생했다. 짐승에 환자를 태웠다는 것은 자신은 밤새 걸어갔다는 의미이다. 그는 일시적인 조치로 끝내지 않고, 안전한 곳으로 옮겨 회복될 때까지 시간을 들여 돌보았다.

 

다섯째, 비용을 내어주며 보증을 섰다(35절):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노동자의 이틀 치 품삯)을 주며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 갚으리라"라고 말한다. 이것은 '무한 책임'의 선언이다. 그는 그 사람의 생존에 대해 완전한 보증을 섰다.

 

질문의 전복: "누가 이웃인가?"에서 "누가 이웃이 되었는가?"로

 

사마리아인의 놀라운 헌신을 설명하신 후, 예수께서는 율법 교사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신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6절)

 

이 질문은 예수께서 행하신 '질문의 대전환'이다. 율법 교사는 처음에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Who is my neighbor?)라고 물었다. 이는 '사랑의 대상'을 분류하고 한정하려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어주었느냐?"(Who was a neighbor to him?)라고 물으신다. 이것은 '사랑의 주체'가 누구이며, '사랑의 행위'가 무엇인지를 묻는 말이다.

 

예수께서는 '이웃'을 우리가 찾아내야 할 '대상'이나 '범주'로 정의하지 않으셨다. 대신 '이웃'을 우리가 되어야 할 '행동'이자 '존재'로 재정의하셨다. '이웃'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다.

 

율법 교사는 이 날카로운 질문에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차마 '사마리아인'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못했지만, 진실을 인정해야 했다.

 

이에 대한 예수의 마지막 명령은 단순하고도 명확하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37절)

 

오늘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

 

오늘 우리도 율법 교사처럼 묻고 있을지 모른다. "내가 사랑해야 할 이웃은 누구입니까? 저 난민들입니까? 저 다른 종교인들입니까? 나와 정치적 견해가 다른 저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여전히 사랑의 경계선을 긋고, 우리의 무관심을 정당화하려 한다.

 

그러나, 주님은 그가 누구인지, 그의 가치가 어떠한지를 따지지 말라고 하신다. 장 칼뱅이 지적했듯이,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입장에 서야 한다. 그 사람이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바로 그 순간, 그가 누구이든 상관없이 그는 하나님이 우리 앞에 보내신 '이웃'이다.

 

오늘날 강도 만난 자는 누구인가? 우리의 편견과 냉담함, 혹은 종교적 위선이라는 이름으로 외면당한 채 우리 삶의 길가에 쓰러져 있는 자는 누구인가?

 

예수의 가르침은 분명하다. 누가 나의 이웃인지 분류하는 것을 멈추고, 지금 내 앞에 쓰러진 그 사람에게 다가가 '이웃이 되어주는' 것이다. 신앙은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다가가, 나의 것을 내어주고, 끝까지 책임지는 구체적인 삶의 실천이다.

 

작성 2025.11.19 20:30 수정 2025.11.19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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