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는 이제 낯설지 않은 병명이다. 그러나 헌팅턴병, 엘러스-단로스 증후군, 자세기립 빠른맥 증후군처럼 생소한 이름의 질환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다양한 질병명이 사회 곳곳에서 등장하면서, ‘이름조차 생경한 병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단순히 새로운 병이 늘어난 결과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오히려 의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동안 원인을 밝히지 못했던 질환들이 세분화되고, 명확한 진단명으로 정리된 결과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원인불명 신경질환’으로 뭉뚱그려 불리던 병이 이제는 특정 유전자 변이나 세포 이상을 기준으로 분류돼 독립된 질환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유전내과 교수는 “의료 기술의 정밀화로 인해 병이 새로 생겼다기보다, 기존 질환이 세분화돼 이름을 갖게 된 것”이라며 “이는 의학의 진보이자 환자에게 자신의 질병을 정확히 인식할 기회를 제공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병명이 급격히 늘어나는 현상은 한편으로 ‘병명 피로감’을 불러오고 있다. 정보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사람들은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각종 질병 정보를 접하게 되고, 조금만 증상이 있어도 스스로 특정 병을 의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실제로 정신의학계는 이러한 현상을 ‘정보 과잉 불안 증후군’으로 명명하고 있다. 정보가 넘쳐날수록 불안은 커지고, 일반인조차 자신이 어떤 병을 가진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상황이 잦아진다는 것이다.
의료계에서는 질병의 이름을 아는 것이 곧 두려움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알려진 병보다 덜 알려진 병이 훨씬 많고, 의료정보의 불균형이 환자에게 불안감을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희귀질환의 경우 진단 자체가 어렵고 환자 수가 적어 사회적 관심이 부족하다. 현재 국내 희귀질환 관리 대상은 1,200여 종에 이르지만, 등록되지 않은 질환까지 포함하면 6,000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희귀질환에 대한 인식과 제도적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한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질병의 이름을 많이 아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는 아니다”라며 “병명을 인식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환자의 삶을 이해하고 공공적 지원 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진정한 의료 발전”이라고 말했다.
의학의 발달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동시에, ‘병의 이름’이라는 새로운 불안을 만들어내고 있다. 병명은 늘어나지만, 그만큼 사회가 이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남는다. 이름이 붙는다는 것은 존재를 인정한다는 뜻이지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병의 이름이 아니라 병을 가진 사람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다.
진단 기술의 세분화로 인해 과거에는 알 수 없던 질병들이 구체적인 이름을 갖게 됐다. 그러나 병명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정보 과잉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질병명에 대한 단순한 인식보다 환자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