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우리 사회가 이제 ‘100세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시대 노후의 가장 큰 위험요소로 빈곤이 아닌 ‘외로움’을 꼽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은 제도적 지원으로 완화할 수 있지만, 관계 단절에서 오는 외로움은 개인의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위협하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에는 전체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이 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였다. 이 중 1인 노인가구는 약 180만 가구로, 10년 전보다 60% 가까이 증가했다. 특히 혼자 사는 노인의 절반 이상이 “최근 한 달간 가족이나 친구, 이웃과 대화를 나눈 적이 거의 없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서적 고립’이 단순한 생활문제가 아닌 건강과 생존을 위협하는 ‘보이지 않는 질병’이라고 지적한다. 김미혜 박사(사회복지)는 “장기간의 외로움은 우울증이나 불면증을 넘어 심혈관 질환과 치매의 발병률을 높인다”며 “외로움은 신체 질병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스트레스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해 외로움을 ‘새로운 공중보건 위협’으로 규정하고 각국 정부에 예방과 개입 체계 마련을 권고했다. 이는 외로움이 개인의 감정 차원을 넘어선 ‘사회적 질병’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영국은 이미 2018년 ‘외로움부. 고독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 직을 신설해 외로움을 사회 문제로 관리하고 있다. 지역 사회단체가 의료기관과 협력해 노년층을 커뮤니티 활동에 참여시키는 ‘사회적 처방(Social Prescribing)’ 제도가 대표적이다.
일본 역시 ‘고립사 방지법’을 제정해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정기 방문과 전화 모니터링을 의무화했다. 이와 달리 한국의 노년 복지정책은 여전히 ‘소득 보전’ 중심에 머물러 있어 ‘정서 복지’ 부문은 상대적으로 미비하다는 지적이 많다.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고령층이 가족 외에도 지역사회에서 관계를 형성하고, 소속감을 회복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미혜 박사는 “고령층의 삶의 만족도는 소득보다 관계망의 넓이와 질에 달려 있다”며 “이웃, 친구, 지역 모임 같은 작은 연결이 외로움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복지”라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이 같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응에 나서고 있다. 서울시는 ‘이웃만남센터’를 확대 운영해 독거노인의 사회적 교류를 지원하고 있으며, 부산시는 ‘고독사 제로 마을’을 시범 운영해 지역 주민이 고립된 노인을 직접 돌보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대구시는 인공지능(AI) 스피커를 활용한 ‘디지털 말벗 서비스’를 도입해 노인의 일상 대화와 긴급상황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있다.
AI 기술을 활용한 정서 돌봄 서비스도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AI 스피커나 감정인식 로봇이 노인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외로움을 완화하고, 장시간 반응이 없을 경우 보호자나 복지기관에 알림을 보내는 방식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기술이 관계를 대신할 수는 없다”며 “기계적 돌봄보다 인간의 따뜻한 관심이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강조한다.
고령사회 전문가들은 노후의 행복을 결정짓는 핵심 요인으로 ‘관계자산(Relationship Capital)’을 꼽는다. 하버드대의 75년 장기 인생연구 결과에서도 “삶의 만족도를 결정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관계의 질”이라는 결론이 제시된 바 있다. 즉, 누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느냐가 노년의 건강과 행복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경미 센터장(서로돌봄(주))은 “경제적 빈곤은 지원정책으로 극복할 수 있지만, 관계의 빈곤은 제도로만 해결할 수 없다”며 “노년층 스스로도 일상적인 사회 참여를 이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고립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개인과 사회가 함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100세 시대의 진짜 리스크는 빈곤이 아니라 관계의 단절이다.
노년의 외로움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이며, 복지정책의 새로운 방향은 경제 지원에서 정서적 돌봄으로 옮겨가야 한다. 가까운 이웃의 안부 전화 한 통, 커뮤니티 모임의 따뜻한 인사가 노년의 삶을 지탱하는 사회적 안전망이 된다. 고독을 줄이는 사회가 결국 오래 행복하게 사는 사회다.
100세 시대의 도래와 함께 ‘빈곤’보다 ‘외로움’이 더 큰 사회적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다. 국가와 지방정부는 경제 중심의 복지정책을 넘어, 정서 중심의 돌봄 체계 구축에 나서야 한다.
노년층 스스로도 관계망을 유지하는 ‘사회적 건강 습관’을 실천해야 하며, 사회 전체가 ‘함께 늙어가는 시대’에 맞는 공동체적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