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로그아웃의 용기

질주하는 자의 눈멂

멈춤은 포기가 아니라 숨이 돌아오는 자리

 

 

F1 레이서들은 시속 300km로 질주할 때 '터널 시야(Tunnel Vision)' 현상을 겪는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시야가 좁아져 주변의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오직 앞만 보게 되는 현상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문제 해결을 위해 전력 질주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인지적 시각장애' 상태에 빠진다.(ⓒ온쉼표저널)

 

 

모니터 화면이 흐릿해진다.
커서는 깜빡이고 당신의 마음도 같이 깜빡인다.
몇 시간째 아니 며칠째 같은 문제 앞에서 맴도는 당신을 나는 안다.  머릿속은 꽉 차 있는데 손끝은 움직이지 않고 성실함은 계속되는데 결과는 따라오지 않을 때의 그 막막함을.

 

먼저 말해주고 싶다.
지금의 당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당신이 게을러서도 아니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애쓰고 있다.

그저 너무 오래 너무 가까이에서 버텨온 것뿐이다.

 

사람은 압박이 커질수록 시야가 좁아지곤 한다.  위험하거나 급할 때 우리의 주의는 본능적으로 “바로 앞”에 달라붙는다.  주변의 소리와 풍경은 멀어진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주의의 협소화’ 흔히 ‘터널 비전’ 같은 말로 설명한다.


그러니 요즘 당신이 앞만 보게 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아주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문제는 앞만 보게 될 때 우리는 자주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길은 한 방향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로그아웃, 더 큰 세상으로 로그인하는 시작이다(ⓒ온쉼표저널)

 

 

 

멈춤은 포기가 아니라 숨이 돌아오는 자리

 

우리는 멈추는 순간 스스로를 심판한다.
“나태한가?”
“뒤처지는 건가?”
“내가 이렇게 쉬어도 되나?”

그런데 멈춤은 죄가 아니다.


멈춤은 고장 난 사람이 받는 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이 갖는 권리다.

오히려 인간은 멈추지 않으면 망가진다.


몸이 숨을 들이쉬어야 내쉬듯 마음도 들숨과 날숨이 필요하다.  계속 내쉬기만 하면 그건 결국 호흡이 아니라 과호흡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계속 ‘해야 한다’만 있으면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살고 있다’는 감각을 잃는다.

 

당신이 지금 필요한 건 더 빠른 속도가 아니다.
숨이 돌아오는 자리
그 자리에 잠깐 앉는 일이다.

 

 


“멍 때림”은 게으름이 아니라 회복의 기술

 

우리가 일을 멈추면 뇌도 멈출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뇌는 우리가 잠깐 멍하니 있을 때도 바쁘게 움직인다.  연구자들은 외부 과제에 몰입하지 않을 때 두드러지는 뇌의 네트워크를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라고 불러왔다.  그 시간에 뇌는 정보를 정리하고 기억을 재배열하고 서로 관련 없어 보이던 조각들을 조용히 연결한다.

 

그러니까 당신이 잠깐 멈추는 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당신의 마음은 스스로를 정돈하고 있다.

어쩌면 지금 당신이 느끼는 답답함은
뇌가 게으른 게 아니라 너무 성실해서 생긴 신호일 수도 있다.
“조금만 떨어져서 보자.”
“조금만 쉬면서 다시 맞춰보자.”
그렇게 말해주는 신호.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면 마음이 먼저 편안해진다

문제에 바짝 붙어 있으면 우리는 ‘어떻게(How)’에 매달린다.
“어떻게 마감하지?”
“어떻게 성과를 더 내지?”
“어떻게 실수 없이 끝내지?”

그 질문들이 당신을 책임감 있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당신을 지치게 했을지도 모른다.

한 발 물러나면 다른 질문이 생긴다.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지?”
“내가 정말 지키고 싶은 건 뭐지?”
“지금 내 마음은 어디에서 가장 아픈가?”

 

이 질문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당신을 더 사람답게 만든다.
‘일하는 나’가 아니라 ‘살아 있는 나’를 다시 만나게 한다.

 

 

휴식은 강제적인 줌 아웃(Zoom-out) 버튼이다.
산책, 샤워, 창밖 바라보기, 따뜻한 차 한 잔, 잠깐 눈 감기 등 작은 행위들이 당신을 문제에서 떼어내준다.  그리고 그 거리감이 생기는 순간 해결책은 종종 “정답처럼”이라기보다 “안심처럼” 다가온다.

아, 여기서부터 풀면 되겠구나.
아, 내가 지금 너무 몰려 있었구나.

 

 


오늘의 회복 레시피 : ‘하루를 고치려 하지 말고 10분을 살리기’

 

지금 당장 삶 전체를 바꾸려 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은 딱 이것만 해도 좋다.

 

1. 몸부터 풀어주기(1분)
  어깨를 한 번 크게 올렸다가 내려놓고 숨을 길게 내쉰다.
  “내가 지금 긴장했구나.” 인정만 해도 근육이 조금 느슨해진다.

 

2. 시야를 넓히기(3분)
  창밖을 본다.  먼 곳을 본다.  하늘이나 나무, 건물의 윤곽을 따라가 본다.
  시야가 넓어지면 마음도 따라 넓어진다.

 

3. 문제와 나를 분리하기(5분)
  종이에 한 줄만 적는다.
  “문제는 내 전부가 아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 덧붙인다.
  “나는 지금 지친 상태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4. 작게 떠나기(1분)
  문제에서 가장 작은 단위 하나만 남긴다.
  “오늘은 100%가 아니라 10%만.”
  멈춤은 ‘다 포기’가 아니라 ‘조금 살리기’다.

 

 

 

당신은 이미 잘하고 있다

끝으로 꼭 한 문장을 남기고 싶다.

당신이 멈추고 싶다는 건
당신이 무너지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당신이 스스로를 지키려 한다는 뜻이다.

 

삶은 늘 악보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그리고 음악은 음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쉼표가 있어야 다음 소리가 살아난다.

 

오늘은 로그아웃해도 된다.
그건 도망이 아니라 회복이다.
당신이 다시 로그인했을 때
당신의 마음이 조금 더 부드럽고 안전한 상태로 돌아올 수 있도록.

 

 

멈춰라.
그래야 비로소 당신이 먼저 보인다.

 

작성 2025.12.17 19:17 수정 2025.12.17 19:18

RSS피드 기사제공처 : 온쉼표저널 / 등록기자: 장은순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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