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은 '읽고' 있는가, 아니면 '계산'하고 있는가?
"인공지능은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단어가 나올 확률을 계산할 뿐이다."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가 챗GPT 열풍 속에서 던진 이같은 일갈은 우리에게 중대한 질문을 던진다. 실시간 통번역이 가능하고, 시를 쓰고, 코딩을 하는 AI 시대에 인간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특히나 배우기 까다롭고 사용 인구도 적은 고대어인 히브리어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역설적이게도 AI가 정교해질수록 인간에게는 알고리즘이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만의 직관'이 생존의 열쇠가 된다.
모든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AI의 편리함 뒤에는 사고의 퇴화라는 그림자가 숨어 있다. 이때 히브리어는 우리에게 강력한 '지적 각성제'가 된다. 인공지능이 방대한 데이터를 뒤져 확률적 답을 내놓을 때, 히브리어는 우리에게 데이터 너머의 '의미'를 스스로 창조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기계가 0.1초 만에 내놓는 정답보다, 인간의 뇌가 낯선 고대어의 자음 사이에서 의미를 길어 올리는 10분의 고통이 우리를 더 인간답게 만든다. 지금 우리가 히브리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AI 시대에 인간의 존엄을 지켜줄 가장 강력한 지적 방패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바벨탑의 시대, 길을 잃은 언어들
인류는 지금 거대한 '디지털 바벨탑'을 쌓고 있다. 전 세계의 모든 언어가 데이터화되고, 실시간으로 동기화되며, 언어의 장벽이 허물어지는 듯 보인다. 경제적으로는 효율성의 극대화이지만, 문화적·정신적으로는 언어의 고유한 결이 상실되는 위기이기도 하다. 인공지능 학습의 토대가 되는 데이터는 대부분 서구적 논리 구조를 가진 영어 중심의 텍스트다. 이는 우리가 사용하는 사고의 틀이 점차 획일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히브리어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한다. 히브리어는 1,700여년 동안 일상 언어로 쓰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본질이 보존된 '압축된 지혜'의 보고다. 고전 히브리어는 부활의 과정에서 고대의 수직적 통찰과 현대의 수평적 논리가 기묘하게 결합했다. 척박한 광야에서 생존해야 했던 민족의 절박함이 담긴 이 언어는, 정보가 과잉되어 오히려 본질을 찾기 어려운 현대 사회에 '결핍을 통한 풍요'라는 역설적인 해답을 제시한다. AI가 제공하는 '가장 확률 높은 평균값'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가장 오래되었으나 가장 혁신적인 사고 체계인 히브리어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확률론적 언어 모델과 인간의 '성찰적 해석'
컴퓨터 공학자들과 언어 철학자들은 생성형 AI의 한계를 '의미론적 공백'에서 찾는다. AI는 단어와 단어 사이의 통계적 관계는 완벽하게 이해하지만, 그 단어가 인간의 삶 속에서 갖는 무게와 맥락, 즉 '실존적 의미'는 이해하지 못한다. 반면 히브리어는 태생적으로 사용자의 능동적 개입 없이는 완성되지 않는 언어다.
앞서 다루었던 '모음 없는 텍스트'의 특징은 AI에게는 최악의 노이즈이지만, 인간의 뇌에는 최고의 상상력 훈련장이 된다. 전문가들은 히브리어 읽기가 뇌의 전두엽을 자극하여 '맥락적 추론 능력'을 비약적으로 높인다고 말한다. 사회적 견해 또한 흥미롭다. 이스라엘의 하이테크 전문가들은 인공지능 개발의 최전선에 있으면서도, 아이들에게 히브리어 고전을 읽히고 하브루타 토론을 시킨다. 알고리즘을 만드는 힘은 알고리즘 밖의 사고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데이터는 과거의 기록일 뿐이지만, 히브리어적 직관은 그 기록을 해석하여 미래를 창조하는 힘이다. 기계가 패턴을 읽을 때 인간은 의미를 읽어야 하며, 히브리어는 바로 그 '의미 읽기'의 근육을 단련하는 가장 정교한 도구다.
'쇼레쉬' 알고리즘이 주는 통찰의 격차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은 '확장'에 최적화되어 있다. 수조 개의 파라미터를 연결하여 방대한 지식을 엮어낸다. 반면 히브리어의 핵심인 '쇼레쉬(어근)' 시스템은 '환원'과 '집중'에 최적화되어 있다. 이 차이가 결정적인 통찰의 격차를 만든다. AI에게 '평화'와 '지불'과 '완벽'은 서로 다른 통계적 군집에 속할 가능성이 크지만, 히브리어 어근 'S(שׁ)-L(ל)-M(מ)'을 아는 인간은 이 셋이 '온전한 상태로의 회복'이라는 하나의 본질에서 파생되었음을 직관적으로 깨닫는다.
이러한 본질 추출 능력은 데이터 홍수 시대에 '노이즈'를 걸러내는 가장 예리한 필터가 된다. AI가 수천 페이지의 분석 보고서를 내놓을 때, 히브리어적 사고 훈련을 받은 리더는 단 세 개의 자음으로 요약되는 문제의 본질을 짚어낸다. 이것은 논리가 아니라 '직관'의 영역이다. 또한, 히브리어 동사 중심의 사고 구조는 '상태'를 묘사하는 AI의 서술적 한계를 넘어 '행동'과 '변화'를 촉구하는 역동성을 제공한다.
통계에 따르면 고도의 전문직일수록 AI에 의한 대체율이 높다고 한다.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조망하고 가치 판단을 내리는' 영역은 여전히 인간의 고유 영토다. 히브리어는 단어 하나를 읽을 때도 전체 문장을 살펴야 하는 '전일적 사고(Holistic Thinking)'를 강제한다. 이러한 사고 훈련은 AI가 내놓은 수많은 선택지 중 무엇이 우리 삶에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영적인 분별력'을 길러준다. 결국 AI 시대에 히브리어를 공부하는 것은 기계와의 속도 경쟁을 포기하는 대신, 기계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깊이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함이다.
기술의 정점에서 고대를 묻다
미래학자들은 머지않아 인간의 뇌와 컴퓨터가 직접 연결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언한다. 모든 지식을 즉각적으로 다운로드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가 애써 글자를 익히고 뜻을 새기는 행위가 헛수고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술이 우리 삶의 모든 편의를 제공할수록, 인간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하는 실존적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나는 기계와 무엇이 다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
히브리어는 우리에게 그 해석의 권력을 되찾아준다. 3,000여년 전 광야에서 하늘을 보며 절대적인 존재와 대화하던 그 언어의 떨림은, 차가운 실리콘 칩 속의 데이터로는 결코 재현할 수 없는 인간 영혼의 울림이다. 인공지능이 당신의 질문에 답을 줄 수는 있지만, 당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질문을 대신 던져줄 수는 없다. 이제 가장 첨단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가장 오래된 언어의 창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알고리즘의 지배에서 벗어나 당신만의 직관으로 세상을 정의할 때, 당신은 비로소 인공지능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고대 히브리어가 전하는 지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그곳에 당신의 미래를 바꾸고 사고를 혁신할 가장 날카로운 통찰이 숨어 있다.
[ 허동보 목사 ]
ㆍ現 수현교회 담임목사
ㆍ現 수현북스 대표
ㆍ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목회학석사(M.Div)
ㆍ미국 Covenant University 신학석사(Th.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