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고대사 연구와 관련한 공적 발언 과정에서 ‘환단고기’가 간접적으로 언급되며 논쟁이 재점화됐다. 해당 문헌을 둘러싼 오래된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그러나 이 논쟁은 특정 발언의 적절성이나 표현 문제에 머물러서는 본질에 다가가기 어렵다. 보다 근본적인 질문은 따로 있다. 왜 환단고기는 학문적 논의의 출발선에조차 오르지 못했는가라는 문제다.
환단고기는 한국 고대사 연구에서 독특한 위치에 놓여 있다. 일부에서는 상실된 고대사 복원의 단서를 담고 있다고 평가하지만, 주류 연구 환경에서는 위서라는 판단이 오랫동안 전제처럼 작동해 왔다. 문제는 이 결론이 충분한 내용 검토와 교차 분석을 거쳐 도출됐는지에 있다. 많은 경우 환단고기는 검토 이전 단계에서 ‘논의 불가’라는 분류표를 부여받아 왔다.
가장 빈번하게 제기되는 비판은 출처 불명과 검증 불가능성이다. 그러나 문헌의 본문을 살펴보면 다수의 고기, 밀기, 조대기 등 고문헌을 인용하는 서술 방식이 반복된다. 배달유기, 삼성밀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등 다양한 기록명이 등장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전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존재하지 않았다는 판단은 동일하지 않다는 데 있다.

실제 조선시대 기록에는 특정 고서의 수거와 금서를 지시한 사례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 목록에는 환단고기에 인용된 문헌명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이는 해당 기록들이 적어도 특정 시기까지는 실재 문헌으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문헌의 실물 부재만으로 존재 가능성까지 부정하는 접근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근대 이후의 사료 수난 역시 간과하기 어렵다. 식민지 시기 조선사 편찬과정에서 사료의 수집, 이관, 선별, 폐기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된다. 다만 어떤 문헌이 어떤 경로로 남고 사라졌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체계적인 전수 조사와 종합 분석이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현재의 고대사 연구 구조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현존하지 않으므로 검토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논리다. 이 방식은 연구 효율성 측면에서는 간명하지만, 동시에 한국 고대사 사료가 소실된 역사적 배경을 논의에서 배제한다. 그 결과 고대사 서술은 여전히 외부 기록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환단고기는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사례다. 이 문헌이 제기하는 서술은 기존 고대사 서술의 출발점과 전제를 재검토하도록 요구한다. 바로 그 점에서 환단고기는 학계에 불편한 존재가 된다. 논의를 시작하는 순간, 기존의 연구 기준과 배제 논리를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문은 본래 불편한 질문을 회피하지 않는 과정에서 발전해 왔다. 사료가 부족하다면, 왜 소실됐는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지를 함께 연구하는 것이 정공법이다. 검토 가능성 자체를 연구 대상에서 배제하는 순간, 역사학은 스스로 탐구의 범위를 좁히게 된다.
환단고기를 둘러싼 사회적 질문은 이미 형성돼 있다. 이를 외면한다고 해서 질문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응답을 미루는 사이, 고대사의 공백은 더욱 확대된다. 이제 필요한 것은 특정 문헌에 대한 찬반을 넘어, 한국 고대사 연구가 어떤 기준과 태도로 사료를 다루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다. 같은 질문에 같은 대답만 반복한다면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논의의 문을 닫는 학문은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킬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