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과 교사교권

2026년, 우리의 교육이 갈등이 아닌 ‘균형의 미(美)’를 회복해야 할 때

 

허 재 훈

서울예술대학교 영상학부 교수

전국학교운영위원연합회 수석부회장

 

 

다사다난했던 지난 2025년을 돌이켜보면,
우리 교육 현장은 유난히도 많은 사건과 논쟁으로 흔들린 한 해였다.

교실에서는 학생의 권리를 둘러싼 갈등이 잦아졌고,
교단에서는 교사의 지도와 판단이 문제의 중심에 서는 일이 반복되었다.
수업 중 발생한 크고 작은 분쟁,
생활지도 과정에서 불거진 충돌,
민원 제기와 고소 및 고발로 이어진 사례들까지.
교육의 이름으로 감당해야 했던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어떤 사건은 학생 인권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웠고,
어떤 장면은 교사 교권의 붕괴가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 과정에서 교실은 종종 갈등의 현장이 되었고,
학교는 교육의 공간이 아니라 논쟁의 무대처럼 비치기도 했다.

이 모든 장면은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과연 우리는 지난 한 해 동안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교권을 균형의 언어로 이야기해 왔는가,
아니면 어느 한쪽의 목소리만을 키워왔는가.

2025년은 분명 많은 것을 드러낸 한 해였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 혼란 위에서
다음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에 서 있다.

 

교육은 언제나 사회의 내일을 비추는 거울이다.
오늘날 우리 교육 현장에서 가장 첨예하게 맞서는 주제,
‘학생 인권과 교사 교권’의 문제 역시 단순한 학교 내부의 갈등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와 질서를 다음 세대에 전하려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학생의 인권은 반드시 존중되어야 하며,
교사의 교권 또한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어느 한쪽이 아니라, 두 가치 사이의 균형이 무너졌을 때 교육은 방향을 잃는다는 사실이다.

 

권리는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학생 인권은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 안전할 권리, 존엄을 지킬 권리는 어떤 이유로도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공적 연구와 국제기구의 다양한 비교 자료가 공통으로 보여주는 사실은 분명하다.
권리가 책임과 규칙을 동반하지 않을 때, 그 권리는 오히려 약자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교실에서 규칙이 무너질수록
가장 먼저 상처받는 것은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소수가 아니라,
말없이 수업을 듣고 싶어 하는 다수의 평범한 학생들이다.

학생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제한 없는 자유가 아니라,
안전한 경계 안에서 성장할 수 있는 자유다.

 

교권은 특권이 아니라 교육의 기반이다.

 

교사의 교권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교권은 교사를 위한 특권이 아니라, 학생의 배움을 가능하게 하는 공적 권한이다.

수업을 어떻게 운영할지,
학생을 어떻게 지도할지에 대한 전문적 판단이 존중되지 않는 교실에서
교육은 성립될 수 없다.

국제적으로도 명확하다.
OECD와 UNESCO의 다양한 교육 관련 자료에 따르면,
학생의 인권이 가장 안정적으로 보호되는 국가일수록
교사의 전문성과 권한이 강하게 보장되어 있다.

교사가 판단을 주저하고
지도 대신 침묵을 선택하는 순간,
교실은 교육의 공간이 아니라 방임의 공간이 된다.

 

학부모의 신뢰가 교육을 살린다.

 

학부모의 마음을 모르는 교육자는 없다.

교육자 역시 학부모이고 누군가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그러나 부모의 역할은
자녀의 편을 드는 데서 멈추지 않고,
교육 공동체의 편에 서는 것까지 나아가야 한다.

교사를 불신하는 순간,
아이들은 권리는 배우되 책임은 배우지 못한다.

교육은 언제나 ‘내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책은 선언이 아니라 구조여야 한다.

 

학생인권조례든, 교권 보호 대책이든
정책의 성패는 문구가 아니라 현장에서 작동하는 구조에 달려 있다.

권리의 범위는 명확한가?

갈등이 발생했을 때 판단 기준과 절차가 존재하는가?

교육 전문가의 판단이 제도적으로 존중받는가?

정책이 감정과 여론에 흔들릴수록
그 부담은 고스란히 학교 현장으로 전가된다.

 

 

우리 선조들이 알았던 ‘지혜로운 균형’

 

교육의 해답은 늘 미래에서만 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 교육의 전통 속에는 이미 깊은 통찰이 담겨 있었다.

조선의 서원과 향약은 단순한 학습 공간이나 지역 규범이 아니었다.
그것은 권리와 책임, 자유와 질서의 균형을 실천했던 교육 공동체의 모델이었다.

서원에서 스승은 가르칠 책임을 지녔고,
배우는 이는 배울 책임을 알았다.
그 관계는 일방적인 권위가 아니라,
공동체가 합의한 역할 분담 위에 서 있었다.

특히 향약의 네 가지 조항 가운데
오늘날 우리가 다시 주목해야 할 개념이 있다.
바로 과실상규(過失相規)이다.

과실상규는 잘못이 발생했을 때
누군가를 공개적으로 몰아세우거나 감정적으로 처벌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공동체가 공유한 규범을 기준으로,
서로의 잘못을 차분히 짚어주고 바로잡는 집단적 성찰의 장치였다.

이는 오늘날 교육 현장에서 우리가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모습과 닮았다.
권리 침해냐, 교권 침해냐를 두고
누가 옳은지를 먼저 따지는 대신,
어떤 기준과 절차로 풀어갈 것인가를 먼저 묻는 태도 말이다.

우리 선조들은 알고 있었다.
질서 없는 자유는 오래가지 못하고,
책임 없는 권리는 공동체를 지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들이 추구한 것은
억압도 방임도 아닌,
균형과 배려가 공존하는 질서였다.

 

세계 교육이 보여주는 공통된 결론

 

이러한 전통적 지혜는
오늘날 세계 교육의 현장에서도
다른 언어와 제도로 다시 구현되고 있다.

OECD나 UNESCO의 교육 관련 조사자료들을 분석해 보면,

핀란드의 교실에서는
학생의 인권이 강하게 보호된다.
그러나 동시에 교사의 판단 역시 흔들리지 않는다.
교육법과 제도는 교사를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전문적 판단을 맡은 공적 전문가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사는 지도에 주저하지 않고,
학생은 일관된 기준 속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자유는 있지만 혼란은 없다.

독일의 학교에서도 갈등은 감정으로 처리되지 않는다.
학생의 권리 주장이나 교사의 지도 행위에 대한 이견이 생길 경우,
문제는 개인 간의 다툼으로 남지 않는다.
학교와 교육청, 전문위원회로 이어지는
단계적이고 객관적인 판단 구조와 조율 시스템이 작동한다.

이 구조는 교사를 보호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의 권리 역시 제도적으로 검증되고 보장되도록 하기 위한 장치다.

일본의 학교는 또 다른 길을 보여준다.
학교 규칙은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이 아니라,
학생과 교사 그리고 학부모가 함께 논의하고 합의하는 약속에 가깝다.
왜 이 규칙이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이 선행되기에,
규칙은 통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합의가 된다.

세 나라의 방식은 다르지만,
교육이 선택한 방향은 놀라울 만큼 닮아있다.

학생의 권리는 존중되어야 하고,
교사의 전문성은 보호되어야 하며,
갈등은 감정이 아니라 명확한 기준과 절차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해답은
대립이 아니라 합의,
선언이 아니라 구조,
권리의 경쟁이 아니라 책임의 공유에 있다.

 

교육은 공존과 균형의 예술이다.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교권은 저울의 양 끝에 놓여 서로를 밀어내는 힘이 아니다.
그것은 같은 축 위에 놓인 하나의 균형추이며,
어느 한쪽이 무너지면 전체가 함께 흔들리는 구조다.

학생의 존엄은
교사의 전문성과 책임을 통해 비로소 지켜질 수 있고,
교사의 권위는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할 때 가장 단단해진다.
이 둘은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라,
서로를 완성하는 관계다.

우리 선조들의 과실상규가 그러했듯,
세계 교육의 다양한 사례들이 증명하듯,
교육은 누가 옳은지 그른지를 가려 승자를 만드는 과정이 아니다.
어떻게 함께 오래 가며 성장할 수 있는지를 묻는 여정이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누가 더 옳은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모두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그 질문 앞에서
학생은 권리와 함께 책임을 배우고,
교사는 권위와 함께 존중을 회복하며,
학부모는 내 아이를 넘어 공동체를 바라보고,
정책 당국은 선언이 아닌 구조로 답해야 한다.

이 균형이 회복될 때,
학교는 다시 아이들이 안전하게 배우는 공간이 되고,
교사는 당당하게 가르칠 수 있는 교육의 중심으로 돌아온다.
그곳에서 인권은 선언이 아니라 실천이 되고,
교권은 방어가 아니라 신뢰가 된다.

교육은 승부가 아니다.
교육은 공존이다.
그리고 그 공존의 미를 지켜내는 일은
학생과 교사, 학부모와 정책 당국 모두가 함께 짊어져야 할 공동의 책임이다.

균형을 회복할 때,
교육은 다시 희망이 된다.

 

희망찬 병오년 새해를 맞이하며.

작성 2026.01.06 11:07 수정 2026.01.07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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