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한국은 서로를 선택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지리적으로도, 산업적으로도,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떼어낼 수 없는 중요한 이웃”이라는 표현은 수사가 아니라 현실에 가깝다. 1월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이재명 한국 대통령 간 정상회담은, 이 같은 현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키는 장면이었다.
이번 정상회담은 단순한 외교 이벤트를 넘어, 중·한 관계가 정치적 관리 국면을 지나 다시 실질 협력의 궤도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평가할 수 있다. 회담 직후 양국 정상은 과학기술 혁신, 생태 환경, 교통·물류, 경제·무역 협력 등 총 15건의 협력 문서 서명을 공동으로 지켜봤다. 이는 중·한 협력이 선언적 차원을 넘어 다시 제도와 프로젝트 단위로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주목할 점은 이번 방중을 한국 언론과 중국 모두가 “관계 회복”이 아닌 “실용 외교의 새로운 출발”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과거로의 단순한 복귀가 아니라, 변화된 글로벌 환경 속에서 중·한 관계를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현실적 접근에 가깝다.
시진핑 주석이 회담에서 강조한 ‘더 자주 오가고, 자주 만나며, 긴밀히 소통하자’는 발언은 외교적 수사라기보다 현재 중·한 관계에 필요한 최소 조건을 정리한 문장에 가깝다. 전략 경쟁이 구조화된 국제 질서 속에서, 이웃 국가 간 관계 관리의 핵심은 더 이상 이념이나 진영이 아니라 예측 가능성과 실용성이다.
이미 민간 차원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빠르게 감지되고 있다. 양국의 상호 무비자 정책 시행 이후 ‘주말 상하이 여행’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고, 《원신》, 《명조: 워더링 웨이브》, 《연운십육성》 등 중국 게임 콘텐츠가 한국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이는 정치·외교와는 별개로 경제·문화 교류의 복원력이 여전히 강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번 방중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 중 하나는 이재명 대통령을 수행한 대규모 경제 사절단이다. 이는 한국 정부와 기업 모두가 중·한 관계에서 여전히 경제 협력을 핵심 축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중국은 수년간 한국의 최대 무역 파트너이자 최대 수출 시장, 최대 수입원 지위를 유지해 왔고, 한국 역시 중국에게 있어 결코 대체 가능한 파트너가 아니다. 2024년 양국 간 교역 규모가 글로벌 경기 둔화와 공급망 불안 속에서도 증가세를 보였다는 점은, 중·한 경제 관계의 구조적 탄탄함을 방증한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중국의 ‘15·5(十五五)’ 계획이다. 첨단 제조, 녹색 전환, 디지털 경제, 에너지 구조 개편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중장기 전략은 한국 기업에게 경쟁이자 동시에 기회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체결된 15건의 협력 문서는 이러한 기회를 제도적 틀 안에서 관리하고 확장하겠다는 양국의 의지를 보여준다.
이는 곧 중·한 경제 관계가 단순한 수출입 관계를 넘어, 기술·산업·공급망 차원의 공동 설계 단계로 이동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글로벌 경제는 여전히 저성장, 고금리, 지정학적 리스크라는 삼중고에 놓여 있다. 보호무역과 산업 정책 경쟁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중·한 관계의 안정은 단순히 양국의 문제가 아니라 동북아 경제 환경 전체의 예측 가능성을 좌우하는 변수다.
중·한 양국은 산업 구조가 깊이 맞물려 있으면서도 각자의 비교우위를 보유한 관계다. 이 관계가 충돌이 아닌 조정과 관리의 방향으로 움직일 경우, 기업의 투자 판단과 시장의 기대는 보다 안정적인 토대를 갖게 된다. 이번 방중에 대한 한국 기업계의 높은 관심은 바로 이 점을 정확히 읽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5년은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과거 일본 군국주의에 맞서 함께 싸운 역사를 언급한 것, 그리고 이재명 대통령이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옛 터를 방문하는 일정은 외교적 상징성을 넘어선다. 이는 중·한 관계가 단순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 역사 인식과 국제 질서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대를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세계 질서가 다시 흔들리는 시기일수록, 이러한 공통 기억은 관계의 하방 경직성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수교 30여 년 동안 중·한 관계의 본질은 우호 협력이었고, 그 중심에는 늘 공동 발전이라는 목표가 있었다. 물론 경쟁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경쟁을 관리하지 못하면 손실은 쌍방이 떠안게 된다.
이번 정상회담은 중·한 관계가 다시 한 번 “관리되는 경쟁, 확장되는 협력”이라는 현실적 궤도로 복귀할 수 있음을 보여준 출발점이다. 중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이후의 실행이다. 정책, 산업, 기업, 그리고 민간 교류가 이 흐름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뒷받침하느냐에 따라 중·한 관계의 다음 10년이 결정될 것이다.
이웃은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이웃과의 관계는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 베이징에서의 만남은, 중·한 양국이 다시 한 번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선택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 장면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윤교원 대표 / The K Media & Commerce, kyoweon@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