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BC 보도에 따르면, 최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연방 이민세관집행국(ICE)의 작전을 감시하던 중 연방 요원의 총격으로 '르네 니콜 굿'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37세의 시인이자, 세 아이의 어머니였던 그녀는 현장에서 자발적인 법적 감시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으나, 사건의 성격을 두고 정부와 지역사회의 입장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와 관계자들은 그녀를 공무 집행을 방해한 '국내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며 대응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반면, 유가족과 지역 시장은 이를 공권력의 남용이자 살인으로 규정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미국 전역에서 대규모 항의 시위를 촉발했으며, 공권력 사용에 대한 사회적 논쟁을 다시금 점화시키고 있다.
세 아이의 어머니 르네 니콜 굿의 죽음, 두 개의 진실이 충돌하는 미국 사회의 비극적 자화상
한 시인의 죽음이 미국을 뒤흔들고 있다. 그녀의 이름은 르네 니콜 굿. 37세의 나이, 세 아이의 어머니이자 장래가 촉망받는 시인이었던 그녀는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삶을 마감했다. 그녀를 쏜 것은 다름 아닌 그녀가 사랑했던 조국의 연방 이민 경찰이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단순한 총격 사건을 넘어, 미국 사회의 깊은 균열을 보여주는 거울이 되었다. 한편에서는 그녀를 '사랑받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국가에 대한 위협'으로 묘사한다. 한 사람의 삶을 두고 벌어지는 이 극단적인 평가는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조지 플로이드가 숨진 곳에서 불과 2km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 위에 또 다른 비극을 덧씌우며 우리에게 묻고 있다. 국가란 무엇이며, 시민의 안전은 어디에 있는가.
평범한 어머니의 비범한 죽음
르네 니콜 굿의 삶은 결코 '테러리스트'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는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자신을 "시인, 작가, 아내, 그리고 어머니"로 소개할 만큼, 가족과 문학에 깊은 애정을 가진 평범한 여성이었다. 올드 도미니언 대학교에서 문예 창작을 전공하며 '돼지 태아 해부 학습에 관하여'라는 독특한 시로 미국 시인 아카데미 학부생 상을 받기도 했던 그녀는, 세 아이를 돌보며 남편과 함께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등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첫 번째 남편은 그녀가 정치 활동가가 아니었으며, 젊은 시절 선교 활동에 참여했던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고 증언했다. 그녀의 어머니 도나 갱어 역시 딸을 "평생을 다른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온, 엄청나게 자비로운 사람"으로 기억했다. 그런 그녀가 왜 차가운 총구 앞에 서게 되었을까. 그녀는 사건 당시 시위 현장에서 이민 경찰의 작전을 감시하는 '법률 감시인'으로 자원봉사 중이었다. 공권력의 남용을 막고 시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비극의 시작이 된 것이다.
두 개의 진실이 충돌하는 거리
그녀의 죽음을 둘러싸고 정부와 유가족, 그리고 목격자들의 증언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녀를 '전문 선동가'이자 '국내 테러리스트'로 규정했다. 크리스티 노엠 국토안보부 장관은 그녀가 하루 종일 차로 경찰관들의 길을 막고 고함을 지르며 업무를 방해했고, 급기야 자신의 차를 '무기처럼 사용'해 경찰을 위협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곧바로 현지 시장에 의해 반박되었다. 미니애폴리스 시장 제이콥 프레이는 사건 당시 영상을 직접 확인했다고 밝히며, 정부의 주장을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그는 이 사건을 "한 경찰관이 무모하게 공권력을 사용했고, 그 결과로 한 사람이 죽고, 살해당한 사건"이라고 규정하며 경찰의 과잉 진압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녀의 어머니 역시 딸이 경찰에 대항하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정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슬픔을 넘어 분노로
시민들은 정부의 '테러리스트' 낙인에 분노로 응답했다. 사건 직후 '르네를 위한 정의'를 외치는 시위가 미 전역으로 번져나갔다. 대중의 지지는 재정적 후원으로 폭발했다. 유가족을 위해 5만 달러를 목표로 시작된 모금 캠페인은 단 10시간 만에 37만 달러(약 5억 원)를 돌파했다. 이는 단순한 동정의 표시가 아니었다. 그것은 정부의 서사에 대한 강력한 거부이자, 공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한 시민에 대한 깊은 연대의 표현이었다.
그녀의 모교인 올드 도미니언 대학교 역시 성명을 통해 그녀를 '국가적 폭력'의 희생자로 기렸다. 영문학과장은 그녀의 죽음을 "우리나라에서 공포와 폭력이 안타깝게도 일상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명백한 예시"라고 애도했다. 브라이언 헴필 총장 또한 "르네의 삶이 우리를 하나로 묶는 가치들, 즉 자유, 사랑, 그리고 평화를 상기시켜 주기를 바란다"며 그녀를 추모했다.
멈춰버린 시계, 그리고 남겨진 질문들
시인의 시계는 멈췄지만, 그녀의 죽음이 던진 질문들은 여전히 살아있다. 한 사람의 삶을 두고 벌어지는 이토록 극단적인 평가는, 오늘날 미국 사회가 직면한 깊은 분열과 불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공권력을 감시하려던 시민의 정당한 행동이 어떻게 국가에 대한 위협으로 둔갑할 수 있는지,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조지 플로이드의 비극이 채 아물기도 전에 반복된 이 사건은, 단순히 한 개인의 죽음을 넘어 공권력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사회적 균열을 다시 한번 드러낸 사건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