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말산업 육성법 제정 이후, 말산업은 농촌의 새로운 고부가가치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아 왔다. 그러나 외형적 성장 뒤에 가려진 '생명윤리의 부재'와 '구조적 한계'는 여전히 한국 말산업의 아픈 손가락으로 남아있다.

글로벌말산업생태환경연구소 소장이자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인 김갑수 박사는 작금의 상황을 "소모적 구조"라고 진단한다. 그는 말의 생애주기 전반에 걸친 재활 시스템 구축만이 말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역설한다.
■ ‘베를린에서 배운 생명 존중’... 30년 외길 말 전문가의 통찰
김갑수 박사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말 외과 전문의이자 정책 전문가다. 고려대학교 축산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수의학 학·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30여 년간 치료와 교육, 정책 현장을 지켰다.
특히 독일 유학 시절 접한 '치료승마(Hippotherapy)'는 그에게 말산업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귀국 후 제주한라대학교 마사학부 학부장과 한국치료및장애인승마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그가 일관되게 주장해온 것은 바로 '말과 인간의 상생'이다.
김 박사는 “경마를 단순한 도박이나 베팅의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경마산업의 핵심 가치는 말의 엄격한 선발과 체계적인 관리, 그리고 은퇴 이후의 재활과 복지에 있다”고 강조했다.
■ 퇴역 경주마의 비극... “파트너인가, 소모품인가”
현재 국내에 등록된 경주마는 약 3,000여 두에 달한다. 문제는 매년 이 중 절반에 가까운 1,500여 두가 퇴역한다는 점이다. 화려한 트랙을 달리던 이들 중 상당수는 은퇴와 동시에 갈 곳을 잃고 안락사나 도축의 길로 내몰린다.
말과 건강전문가로서 김 박사가 지적하는 지점은 바로 이 '생애 주기 관리의 단절'이다.
> “말은 인간과 수천 년을 함께해 온 파트너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신체적 소모를 겪은 경주마들이 은퇴 후 적절한 재활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은 산업의 윤리적 결함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자산의 낭비다.”
그는 퇴역마를 단순한 ‘은퇴마’가 아닌, 재교육을 통해 인간의 건강을 돕는 ‘치유마’나 ‘승용마’로 재탄생시켜야 한다고 제안한다.

■ 함양·포천·홍천 거점... ‘재활-복지-사회 환원’의 트라이앵글
김 소장은 현재 구체적인 대안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경남 함양, 경기 포천, 강원 홍천 등지에 ‘퇴역 경주마 전용 재활센터’ 건립을 준비 중이다. 이곳은 은퇴한 말들의 신체적 부상을 치료하는 ‘피지컬 리커버리’와 경주마 특유의 예민함을 완화하는 ‘심리 순화’ 과정을 전담하게 된다.
이 재활 시스템의 최종 목적지는 ‘사회적 가치 창출’이다. 재활을 마친 말들은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치료승마 프로그램에 투입된다. 말과의 정서적 교감은 노인 치매 예방과 우울증 치료, 장애아동의 근육 발달 및 정서 안정에 탁월한 효과가 있음이 임상적으로 증명된 바 있다.이는 단순히 말을 살리는 것을 넘어, 말산업이 노인 복지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공익적 영역으로 확장되는 선순환 구조를 의미한다.
■ AI와 데이터로 읽는 말의 마음... 과학적 말산업의 서막
김 박사의 혁신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말산업에 첨단 ICT 기술을 접목하는 ‘말산업의 과학화’를 추진하고 있다. 인공지능(AI) 기반의 말 동작 분석 시스템과 스트레스 평가 알고리즘을 개발하여 말의 건강 상태를 실시간으로 체크하는 체계를 구축 중이다.
“말은 통증을 숨기려는 습성이 있다. AI를 통해 말의 미세한 움직임과 표정 변화를 분석하면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한 관리는 결국 말의 복지 향상과 직결되며, 이는 승마객과 치료 대상자의 안전까지 보장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 “말이 행복해야 인간도 행복하다”... 미래를 향한 제언
인터뷰를 마치며 김갑수 박사는 다시 한번 ‘공존’을 강조했다.
> “말의 복지를 외면한 채 산업적 수익만을 쫓는 모델은 더 이상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말이 행복한 환경에서만 진정한 치유의 에너지가 인간에게 전달될 수 있다.”
그가 꿈꾸는 미래는 한국이 말산업 변방국에서 벗어나, 생명존중과 기술력이 결합된 글로벌 말산업의 표준이 되는 것이다. 그의 행보가 단순히 축산 산업의 성장을 넘어, 우리 사회의 생명 인지 감수성을 한 단계 높이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기자 수첩] 건강한 사회는 ‘약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결정된다.
건강전문기자로서 본 김갑수 박사의 행보는 '원헬스(One Health)' 개념과 닿아있다. 동물의 건강이 곧 인간의 건강과 직결된다는 이 철학이 말산업 현장에 뿌리 내릴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신성장 동력’을 얻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