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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서 칼럼] 청소년 비평교육을 과학적 방법론 위에 세우기

탈진실 시대, 청소년 비평교육의 긴급성 2

전편에서 나는 탈진실의 시대에 왜 청소년 비평교육이 긴급한가를 논했다. 사실보다 감정이, 설명보다 선동이 더 앞서는 시대에 정작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사유의 구조라는 것이 나의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그런 비평교육이 실제 학교 현장에서도 가능한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종종 다음과 같은 유사한 저항에 부딪힌다. "너무 주관적이지 않나요?", "평가가 불가능하잖아요", "체계가 없어요." 이런 반응은 단순한 행정적 우려만은 아니다. 이는 비평이 '객관적인 과학'과는 달리 주관적이라는, 오랜 이분법적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비평은 여전히 '느낌 나누기'나 '자유 토론' 정도로 축소되어 있는 현실에 대한 우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구도 자체가 이미 시대 인식과 어긋나 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과학은 주관을 제거한 순수한 객관성의 영역이다. 관찰자는 사라지고 데이터만 남으며 결과는 하나로 수렴된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그것은 과학의 실제 작동 방식이 아니라 과학을 둘러싼 신화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막스 플랑크를 불러올 필요가 있다. 양자론을 연 물리학자이자 과학과 의식의 관계를 사유했던 막스 플랑크에 따르면, 과학은 의식을 배제함으로써 성립하는 체계가 아니라 오히려 의식적 주체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활동이다. 측정하는 자, 질문하는 자, 의미를 부여하는 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데이터는 그 자체로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한다. 플랑크에게 객관성이란 주체가 제거된 상태가 아니라 주체 스스로 자신의 위치와 전제를 성찰하는 태도였다. 과학의 엄밀성은 '주관성의 소거'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 아닌, 그러한 주관성을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다루려는 노력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비평교육은 과학의 반대편이 아니라 오히려 현대 과학의 인식론과 가장 가까이 닿아 있다. 비평교육은 관찰에서 출발한다. 텍스트나 사회적 현상을 마주하고, 그 과정에서 생겨난 질문을 언어화하여 잠정적 해석을 내린다. 그리고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그 해석을 검증하고 수정한다. 관찰, 질문, 가설, 검증이라는 구조는 과학적 탐구의 기본 틀과 정확히 겹친다. 차이가 있다면 비평은 관찰자의 위치성과 감각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학 역시 관찰자가 세계와 무관한 외부자가 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있다. 비평교육은 이 전제를 교육적 형식으로 드러낸 것이다.

 

비평교육의 과학성은 감정을 배제하는데 있지 않다. 오히려 감정을 정확히 다루는 데 있다. 불편함, 흥미, 납득되지 않음과 같은 감각을 질문으로 전환시킨다. 과학자가 관측값을 측정 가능한 언어로 번역하듯 비평교육은 학생이 자신의 감각을 질문 가능한 언어로 바꾸도록 훈련한다. 이때 핵심은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해석은 텍스트로 돌아가 검증되고 다른 관점과의 충돌 속에서 수정된다. 해석은 하나로 수렴되지 않을 수 있으나 그렇다고 아무 말이나 허용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근거와 논리, 검증이라는 과학적 엄밀성이 비평에서도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 구조는 실제 교실에서도 실현 가능하다. 하나의 텍스트가 제시되고 그것을 함께 읽은 뒤 인상적인 부분이나 불편한 지점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다. 왜 그 지점이 눈에 들어왔는지 스스로 묻게 하고, 그 감각을 질문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한다. 이후 서로의 질문들을 교차시킨다. 한 학생이 제시한 해석은 다른 학생의 교차 질문 속에서 다시 검토되고, 대화는 텍스트로 되돌아간다. 

 

이때 교사는 정답을 전달하기보다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장면이 없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달라질까?", "다른 해석을 반박할 근거는 무엇일까?" 이 과정은 언뜻 토론처럼 보이지만 구조적으로는 실험과 유사하다. 가설은 시험대에 오르고, 반증 가능성을 통해 사유는 정교해진다. 이 과정에서 글쓰기는 그 탐구의 경로를 기록하는 보고서가 된다. 무엇에 주목했고, 왜 그렇게 느꼈으며, 대화를 통해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를 서술하는 글은 단순한 감상문이 아니라 사유의 궤적을 남기는 비평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비평교육이 단순한 표현 훈련이 아니라는 것은 더욱 분명해진다. 그것은 시대의 철학과 과학을 반영한 인식 훈련이다. 관찰자가 세계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현대 과학의 전제, 의미는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된다는 현대 철학의 통찰이 교육의 형식으로 변주된 것이다. 그렇기에 비평교육이 현실을 바꾼다는 말은 이제 추상적 구호가 아니다. 의식이 세계를 다르게 명명하고 의미화하는 순간, 현실은 이미 다른 조건 안에 들어선다. 

 

혐오 발언을 농담처럼 뱉어내는 상황을 문제적으로 인식하기, 살인적인 경쟁을 자연스런 산물이 아닌 왜곡된 구조로 읽어내기, 실패를 단순히 개인의 무능으로 보기보단 사회적 부정의와 제도적 문제가 중첩된 서사로 이해하기 등등. 이러한 인식을 통해 세계는 이전과는 다르게 구성된다. 이것이 비평교육이 작동하는 과학적 경로다.

 

탈진실의 시대에 청소년 비평교육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그리고 현대 과학과 철학이 이미 충분하게 그 길을 열어두었다. 방법론 역시 명확하다. 비평교육은 의식과 세계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가능하게 하고, 또한 관찰을 통해 주관을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엄밀하게 다룰 수 있다. 비평교육을 더 이상 '주관적'이라 의심하거나 '체계 없음'을 우려할 이유는 없다. 남은 것은 이제 각자의 교실에서 이 구조를 펼치는 일이다.

 

 

[이진서]

고석규비평문학관 관장

제6회 코스미안상 수상

lsblyb@naver.com

 

작성 2026.01.13 10:33 수정 2026.01.13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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