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기술과 의료의 발전이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킨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오래 사는 법은 배웠지만, ‘잘 늙는 법’을 아는 사람은 여전히 많지 않다. 늙음은 피해야 할 과정이 아니라 배워야 할 인생의 기술이다. 나이 듦은 쇠퇴가 아니라 완성으로 향하는 또 다른 성장의 시간이다.
젊음이 속도와 경쟁의 시간이었다면, 노년은 성찰과 여유의 시간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늙음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인다. ‘늙는다’는 말에 우울감과 두려움을 느끼며, 은퇴 이후의 삶을 공백으로 여긴다. 그러나 인생의 마지막 30년은 비워내고 돌아보는 인생의 황금기일 수 있다. 노년을 바라보는 태도가 인생의 품격을 결정한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전문

가들은 노년의 행복을 결정짓는 요소로 ‘건강’보다 ‘태도’를 먼저 꼽는다. 최수안 박사(상담심리)는 “노년의 삶은 신체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 자기 인생을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태도가 삶의 질을 좌우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한 조사에 따르면, 노화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가진 노인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우울증 발병률이 40% 낮고, 삶의 만족도가 2.5배 높았다. 늙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결국 노년의 건강을 결정하는 셈이다.
건강한 노년을 위해서는 세 가지 축이 필요하다. 바로 관계, 취미, 그리고 배움이다. 노년의 외로움은 병보다 무섭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존재를 확인하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친구와의 식사, 이웃과의 대화, 봉사활동이나 동호회 모임은 단순한 교제가 아니라 정서적 면역력을 높이는 삶의 비타민이다. 누군가와 함께 웃는 시간은 그 자체로 노년의 활력소다.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취미다. 무엇이든 좋다. 그림을 그리거나, 악기를 배우거나, 등산을 하거나, 글을 써도 된다. 몰입할 수 있는 활동은 하루의 의미를 만든다. “내일이 기다려지는 사람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말처럼, 취미는 노년의 시간을 살아 움직이게 한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배움이다. 나이 들수록 배움은 사치가 아니라 생존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사람은 인지력 감퇴 속도가 느리며, 사회적 자신감을 유지한다. 최근 지방자치단체들이 운영하는 시니어 평생교육 프로그램은 이런 점에서 의미가 크다. 스마트폰 활용법을 배우거나, 수묵화를 그리는 수업에 참여하는 노인들의 표정은 젊은이 못지않게 밝다. 배움은 뇌를 깨우고, 자존감을 회복시킨다.
노년의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이미 2025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는 생산성과 효율성을 기준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한다. 퇴직 이후의 세대를 ‘경제적 부담’으로 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품위 있는 노년이 자리 잡기 어렵다. 노년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문화적 전환이 필요하다.
일본과 유럽의 일부 도시는 ‘시니어 자원봉사 제도’를 운영하며, 노년층이 지역사회 문제 해결의 중심 역할을 맡는다. 우리 사회도 노인을 ‘돌봄의 대상’이 아닌 ‘참여의 주체’로 바라봐야 한다. 지자체의 시니어 커뮤니티 센터, 시니어 채용 프로그램, 세대 통합형 마을공동체 등은 이런 전환의 단초를 제공한다.
노년을 존중하는 사회는 단순히 복지 정책이 잘 된 사회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마무리’가 아니라 ‘삶의 지속’을 존중하는 사회다. 인간은 누구나 늙는다. 하지만 늙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인생의 마지막 장은 전혀 다르게 쓰인다. 나이 듦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사회에 환원할 줄 아는 노년은 가장 아름답다.
100세 시대의 행복은 젊음의 연장이 아니라 마음의 성숙에서 비롯된다. 나이 들어도 여전히 배우고, 나누며, 웃을 수 있다면 그것이 진짜 젊음이다. 노년이 좋아야 인생이 아름답다. 오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늙을 것인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잘 늙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인생을 완성하는 마지막 수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