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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수의 우리말 찾기] 비단옷 입고 밤길 걷기

이봉수

좋은 옷을 입고 치장을 하는 인간의 사치는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 게 없다. "비단 옷 입고 밤길 걷기"라는 속담과 함께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다. 좋은 옷을 입으면 날개를 단듯 한 끗 뽐내며 다닐 수 있는데, 캄캄한 밤에 비단옷을 입고 나서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요즘은 가로등도 밝고 도시가 불야성을 이루고 있어 비단옷을 입고 밤에 돌아다녀도 괜찮다. 하지만 전기도 없었던 농경시대에 비단옷 입고 밤길 걷기는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소용없는 일이었다.

 

전기가 없던 시절 농촌에서는 호롱불을 켜고 지냈다. 애들이 호롱불에 바짝 붙어 숙제를 하다가 콧구멍은 새까맣게 되고 머리카락을 태우는 경우가 있었다. 그 시절 부모들은 아이 숙제보다는 기름값에 더 신경을 썼다. 숙제고 뭐고 빨리 불 끄고 자라고 애들을 닦달하기 일쑤였다. 요즘 대치동 학원가 주변의 학부모들이 보면 기절초풍할 일이다. 

 

비단옷 입고 밤길 걷기와 비슷한 속담으로 "봉사 지름 값 당키"라는 말이 있다. "지름값 당키"는 "기름값 대기"의 경상도 방언이다. 비싼 석유로 호롱불을 켜야 하는데, 앞을 못 보는 봉사에게 불을 밝혀줘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봉사는 활동하는 데 있어 밤이나 낮이나 차이가 없다. 그래서 예전에 시골 애들이 밤에 수박 서리를 하러 갈 때, 봉사가 지키는 밭에는 절대 가지 않았다. 봉사는 지팡이 하나만 들면 칠흑 같은 밤에도 금방 쫓아오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좋은 옷이 널렸는데 누가 촌스럽게 비단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겠는가. 대신 명품 가방이 비단옷을 대체했다. 호롱불도 남폿불로 진화했다가 전깃불이 나타났고 이제는 휘황찬란한 조명까지 등장했다. 그리고 요즘 세상에 어지간하면 차를 타고 밤길을 가지, 걸어서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나. 앞을 못 보는 봉사라는 말도 심청전에나 나오는 말이고, 요즘은 맹인이라고 한다.

 

비단옷 입고 밤길 걷기나 봉사 기름값 대기를 두고,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1960년대에만 해도 시골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을 켜고 사는 동네가 많았다. 지금은 외딴섬이나 화전민이 살았던 산골 마을에도 전기가 들어간다. 

 

밤에 찍은 한반도 위성사진을 보면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별나게 환하다. 반세기 만에 물질적 풍요를 이루어내고 대명천지가 되었지만, 가난했던 시절의 우리말들은 더욱 정겹게 다가온다.

 

 

[이봉수] 

시인

이순신전략연구소 소장

https://myisoonsinxsz.zaemit.com/

 

작성 2026.02.03 10:26 수정 2026.02.0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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