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화엄경』 강의 현장에서 이뤄진
의상과 문도들의 생생한 문답 모음집”
역사의 기본은 고증(考證)이다. 과거의 자료가 자세하고 뚜렷하게 남아있을수록 과거의 진실은 더욱 정확해지는 법이다. 한국 불교사상사는 고증이 어려운 편이다. 자료의 부족 탓이다. 특히 고대와 중세의 문헌은 더 심각하다.
7세기 동아시아 최고의 지성이었던 원효스님의 경우가 유난히 아쉽다. 원래 지은 저술은 100여 종으로 추정되지만 지금까지 온전히 전하는 것은 10종이 채 되지 않는다. 그나마 원효스님은 다행이다. 다른 대부분의 스님들은 겨우 한두 종의 저술이 전하거나 심지어 저술의 제목이나 일부 문장들만 잔해처럼 흩날린다. 이럴 때 새로운 문헌의 발견은 학자들에게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화엄경문답』…의상스님의 강의를 지통스님이 정리
중국 초기 화엄사상의 진수를 보여주는 佛書
『화엄경문답』은 오랫동안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있다가 20세기 끝자락에 와서야 비로소 실체가 드러났다. 동시대 원효스님과 쌍벽을 이루던 대학자였던 의상스님의 『화엄경』 강의록임이 밝혀졌다. 『화엄경문답』의 발견은 한국 고대불교사상의 백미였던 화엄사상에 대한 안목을 크게 높일 수 있는 개가였다. 원래는 중국 화엄사상을 집대성한 법장(法藏)스님의 저술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의 다른 저술들과 배치되는 내용이 보여 실제 법장스님의 저술이 아니라는 의심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러던 중 1990년대 후반 故김상현 동국대교수가 일본 학계의 연구를 참조해 “이 책은 의상스님의 강의를 제자인 지통스님이 정리한 책”이라고 주장하면서 새 국면이 열렸다. 학계의 관심을 끌고 집중적인 연구가 이어지면서 신라의 화엄사상 및 그와 연결된 중국 초기 화엄사상의 진수를 보여주는 불서(佛書)임이 규명됐다. 이제는 초기 화엄사상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문헌으로 평가된다.
『화엄경』에 달통한 스승의 수업을 생생하게 남긴 기록
‘의상 학파(學派)’는 한국 최초의 학파로 알려져 있다. 『화엄경문답』은 『화엄일승법계도』와 함께 의상스님과 그 문도들, 즉 의상 학파의 화엄사상의 본모습을 알려주는 아주 귀중한 자료다. 의상 이전에도 여러 학자와 고승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개인적 차원의 학문 활동에 머물렀다. 함께 공부하며 독자적인 개념을 만들고 체계를 세운 것은 의상 학파가 처음이다.
이러한 의상 학파의 형성 과정은 『화엄일승법계도』와 『화엄경문답』을 통해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화엄일승법계도』가 의상의 기본적 이론 토대를 제시했다면, 이것을 의상 이 제자들과 묻고 답하며 구체화하고 심화한 결실이 『화엄경문답』이다. 『화엄경』은 가장 방대한 분량의 경전이고 불법의 요체를 담은 최고의 경전이다. 곧 『화엄경문답』은 『화엄경』에 달통한 스승과 그의 문하들 사이의 수업을 생생하게 기록한 책으로, 그 집단 지성의 안목과 지평은 오늘날에도 충분히 유효하다.
의상 학파는 의상 당대에는 당시 불교학계의 변방에 있었다. 다만 이후 점차 세력을 확대하여 8세기 중엽 이후에는 신라 불교계의 중심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더구나 이 의상 학파 출신들이 선불교와 같은 새로운 불교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선종(禪宗)이 득세한 후에도 의상의 사상은 한국불교의 기본적 입장으로 크게 존중되었다. 의상 학파는 한국 최초의 학파이면서 후대 한국불교 사상사의 뿌리라는 역사적 위상을 갖는다. 신라의 국교는 불교였고 그러므로 비단 불교학뿐만 아니라 고대 한국학 전반의 면모를 더듬을 수 있는 최적의 실마리이기도 한 셈이다.
변격 한문을 통해 신라시대 우리말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자료로도 의미
『화엄경문답』은 유난히 개념이 생소하고 문장구조가 독특하다. 일본에서 유학한 저자는 반복해 읽으면서 『화엄경문답』의 문장을 마치 현대의 대학 강의실에서 벌어지는 토론을 담듯 쉽고 간명하게 풀어냈다. 『화엄일승법계도』만으로는 의상의 사상을 아는 데 모자람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화엄경문답』이 기꺼이 도와줄 것이다. 신라 화엄사상 특히 의상 스님과 그 문도들의 사상을 이해하는 입문서로서 뛰어난 가치를 갖고 있다.
『화엄경문답』에 대한 공부는 의상과 의상 학파의 사상에 대한 이해를 넘어 한국불교와 한국 사상의 근원을 탐구할 수 있는 으뜸의 교재다. 또한 순수한 한문 문법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한문 문장들이 많은데, 이 문장들은 일부 표현과 어순에 우리말의 특성이 반영된 한국식 한문, 즉 변격 한문으로서 신라시대의 우리말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