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BC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아이작 헤르초크 대통령이 지난 12월 발생한 본다이 비치 총기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호주를 공식 방문했다. 호주 정부는 이번 방문이 사회적 통합에 이바지하기를 기대하고 있으나, 헤르초크 대통령이 가자 지구 내 집단학살 선동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거센 반대 여론에 직면했다.
이에 따라 시드니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항의 시위가 예고되었으며, 경찰은 공공질서 유지를 위해 강력한 수색 및 통제 권한을 발동했다. 호주 내 유대인 사회는 이번 방문이 공동체의 아픔을 달래줄 것이라며 반기지만, 일부 인권 단체와 정치인들은 그를 국제법 위반 혐의로 체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날 선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번 방문은 테러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국제적인 정치적 갈등이 복잡하게 얽히며 호주 사회 내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치유를 향한 손길인가, 분열의 촉매제인가? 이스라엘 대통령의 호주 방문이 던진 질문
2026년 2월, 호주의 본다이(Bondi) 해변은 그 어느 때보다 시린 바람이 불고 있다. 15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비극적인 테러의 상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헤르초그(Isaac Herzog) 대통령이 '치유와 연대'의 기치를 들고 호주 땅을 밟았다. 앤서니 앨버니지(Anthony Albanese) 호주 총리는 이번 방문을 뒤틀린 사회적 응집력을 회복하기 위한 '통합의 여정'이라 정의했다. 그러나 현실은 아름다운 수사학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삼엄한 경호와 강화된 공권력, 그리고 유대인 공동체 내부에서 터져 나오는 날카로운 파열음은 이번 방문이 단순한 위로를 넘어선 거대한 사회적 시험대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는 하나"라는 고백과 그 뒤의 긴장
헤르초그 대통령은 본다이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한 명의 유대인이 다치면 모든 유대인이 그 고통을 느낀다"라는 말로 운명공동체의 결속을 강조했다. 호주 정부 역시 본다이 비극 이후 급격히 고조된 반유대주의 정서와 사회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이스라엘 국가 원수를 국빈으로 초대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하지만, 이 치유의 메시지는 역설적으로 전례 없는 보안 조치를 동반했다. 뉴사우스웨일스(NSW) 주정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극히 드물게 사용되는 '중대 행사(Major Event)' 권한을 발동하며 시민들에 대한 무차별 수색과 특정 구역 봉쇄를 단행했다. 이는 공공의 안전을 명분으로 했으나, 표현의 자유와 공권력의 한계를 둘러싼 뜨거운 논쟁을 촉발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갈라진 마음들, 공동체 내부의 깊은 골
이번 방문은 호주 내 유대인 사회가 결코 단일한 목소리가 아님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호주 유대인 평의회(ECAJ)가 이번 방문을 양국 관계의 '역사적 재정립'이라며 열렬히 환영하지만, 호주 유대인 위원회(JCA)를 필두로 한 수백 명의 유대인은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특히, 이들은 이스라엘 국가의 행위와 유대인의 정체성을 동일시하는 것이 오히려 유대인들을 더 큰 위험에 빠뜨리는 '반유대주의적 혼동'이라고 경고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대리인이 아니다"라는 이들의 일갈은 정체성과 국가 권력 사이의 본질적인 분리를 요구하는 처절한 고백에 가깝다.
국제법의 심판대 위에 선 '면책 특권'
가장 예리한 비판은 법적 정의의 관점에서 제기된다. UN 조사위원회는 헤르초그 대통령이 가자 지구의 포탄에 직접 서명하거나 국민 전체의 책임을 언급한 점을 근거로 '집단 학살 선동' 혐의를 제기해 왔다. 인권 변호사들은 호주 연방법원에 그의 체포를 촉구하는 법적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국가 원수라는 '면책 특권'의 방패가 집단 학살이라는 인류 최악의 범죄 혐의 앞에서도 유효한가에 대한 질문은, 시드니 타운홀 앞을 가득 메운 팔레스타인 지지자들의 함성과 함께 호주 전역을 흔들고 있다.
진정한 연대를 위한 남겨진 숙제
결국 헤르초그 대통령의 방문은 치유라는 꽃을 피우기도 전에 분열이라는 가시 돋친 줄기를 먼저 드러냈다. 호주 정부는 이번 방문이 가져올 외교적 실익과 사회적 통합을 기대했으나, 그 대가로 지불한 사회적 갈등의 비용은 막대하다. 비극 이후의 상처를 보듬기 위해 찾아온 손님이 오히려 새로운 갈등의 중심이 될 때, 우리는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진정한 위로란 무엇인가? 그것은 권력의 이름으로 단행되는 봉쇄와 통제 속에 있는가, 아니면 서로의 아픔을 투명하게 마주하는 용기 속에 있는가. 이번 방문은 연대라는 가치가 얼마나 무겁고 복잡한 것인지를 우리에게 고통스럽게 일깨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