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한 꼬집’의 결단보다,
세상을 품는 ‘한 자밤’의 넉넉함으로”
오묘하면서도 살가운 분량 ‘자밤’
‘자밤’이란 단어를 몇이나 알까? 낯설 테지만 엄연히 표준 국어대사전에 등재된 단위명사다. 정의는 ‘나물이나 양념 따위를 손가락 끝으로 한 번 집을 만한 분량.’ 계량할 수는 없으나 실체가 분명한 무게와 질감이어서, 오묘하면서도 살가운 느낌이다.
여기서 핵심은 ‘세 손가락’이다. 엄지와 검지, 그리고 중지까지 세 손가락을 둥글게 모아 식재료를 그러쥐는 행위를 가리킨다. 비슷한 말로는 ‘꼬집’이 있다. 다만 뉘앙스가 좀 차갑고 신경질적이다. 이름난 셰프의 놀라운 솜씨에는 어울릴지 몰라도, ‘엄마의 손맛’과는 짝을 맞추기가 주저된다. 『자밤의 미학』은 모성과 자비가 배인 한국의 집밥에 관한 고찰이다.
자연의 재료와 인간의 정성이 빚어낸 K-푸드 ‘한식’
책은 ‘K-푸드의 지혜와 미학’으로 서두를 연다. 우리나라 음식이 세계적 열풍을 일으키고 있으니 당연하다. 김치나 라면은 물론이고 김밥과 장조림까지, 이국의 특별식이 아니라 냉장고에 밑반찬처럼 두고 먹는 일상식이 되고 있다.
‘자연의 재료와 인간의 정성이 빚어낸 예술’, ‘사람의 손끝에서만 탄생하는 시간의 예술’, ‘기다림과 배려의 결정체’라는 다양한 정의로 그 저력과 깊이를 감칠맛 나게 표현했다. 이러한 추상적인 수사들이 구체적인 음식으로 스며들면 시각으로 산해진미를 맛보는 듯하다. 특히 숨겨진 전통음식의 묘미를 소개할 때는 눈이 번쩍 뜨인다. 과거 임금이 먹던 고급 한식들을 먹음직스러운 사진과 함께 선보인다.
눈으로 즐기며 맛보는 다양한 한식의 향연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했던 아름다운 디저트 란(卵)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기회다. 밤·대추·생강 등에 꿀과 계피를 발라 알처럼 동글동글하게 반죽하는 ‘란’은 자연보다 더 부드럽고, 자연보다 더 완벽하다. 기계로 찍어낼 수도, 대량으로 미리 만들어 둘 수도 없이 오직 일일이 사람의 손끝에서만 탄생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더욱 영롱하다.
섭산적은 또 어떠한가. 쇠고기를 잘게 다져 갖은양념을 해서 반죽한 특별한 산적이다. 입안에서 살살 녹는데다가 신선한 육즙이 우러나는 치즈 케이크를 닮았다. 전복만두, 어만두, 석류만두… 저렴하고 흔한 만두지만 어떤 재료를 넣느냐에 따라 그 풍미는 무한히 뻗어나간다.
이밖에도 세계인의 식탁에 올릴 개성주악, 발효의 맛과 향에 보존성과 건강까지 고려한 증편, 입안에 넣는 순간 감칠맛이 터지는 북어 보푸라기, 한국 토속의 젤리 도토리묵 등 색다른 미각의 향연이 펼쳐진다.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지혜, ‘자밤’의 미학
음식에 대한 인간의 오랜 역사와 철학에 대해 연구·비평하고 있는 저자는 음식인문학자로서 동국대학교 불교사회문화연구원 초빙교수를 겸하고 있다.
직접 요리를 하고 공부하며, 궁중음식을 비롯해 각종 한식에 밝은 그가 내놓은 결론은 “인생은 요리와 닮았다.”는 것이다. 살다 보면 날카로운 분석과 결단을 이뤄내는 ‘한 꼬집’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경험과 연륜이 쌓이다 보면 최후의 승자는 꼬집이 아니라 자밤이다.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은 결국 관계를 아우르고 공동체를 보듬는 넉넉한 ‘한 자밤’의 지혜에 있었다.”고 술회한다.
또한 “매번 같은 재료를 써도 매번 다른 맛이 나는 것이 요리이고 인생”이라고 전한다. 그리고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식사는 각자의 색깔과 사연을 가진 자들을 한자리에 모여 웃게 한다.
‘먹음’이란 모든 생명의 고정값이다. 특히 요리해서 먹을 줄 아는 인간의 ‘먹음’은 매우 다채롭고 화려하고 고차원적이다. 그래서 인간의 요리는 단순히 생존을 위한 끼니 때우기가 아니다. 손끝의 감각을 통해 만들어지는 고도의 기능인 동시에 숱한 도전과 실패 속에서 익어가는 내공이다. 무엇보다 그것은 자식이든 손님이든 배불리 잘 먹여 행복하게 하려는 옛날 어머니들 정성이다.
‘자밤’의 깊이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고, 이 책을 읽으면 자밤이 한껏 우러나는 요리의 비법을 배울 수 있다. 더구나 과거엔 수라상에만 올라가던 진귀한 먹을거리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