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을 공동체 활동가로서 지역의 공식적인 주민자치 기구에 참여하기로 결심했을 때, 나는 그것이 공동체의 가치를 행정 시스템에 녹여내는 유기적인 과정이 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실제 마주한 주민자치회의 내면은 ‘민주주의의 훈련장’이라기보다, 소규모 권력을 둘러싼 경직된 ‘정치적 각축장’에 가까웠다. 한 명의 위원으로서 겪은 이 생생한 경험은 단순히 개인의 소회를 넘어, 한국 주민자치가 직면한 구조적 모순을 관통하고 있었다.
1. ‘닫힌 자치’가 낳은 권력 고착화와 진영 논리
주민자치회는 거주 요건과 무작위 추첨이라는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만, 현실에서는 기존 기득권이 형성한 ‘라인’과 ‘진영’이 강력하게 작동한다. 내가 참석한 첫 회의에서 목격한 자치회장 선출 과정은 이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변화를 열망하는 목소리와 기존 체제를 유지하려는 분위기가 팽팽히 맞섰고, 선거 결과가 나오자마자 패배한 쪽이 예우 없이 퇴장하는 모습은 주민자치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되묻게 했다.
이러한 현상은 학계에서 지적하는 ‘지방 엘리트의 포획(Elite Capture)’ 현상과 맞닿아 있다. 정치학자 벤틀리(Bentley) 등의 연구에 따르면, 주민 참여 기구가 설치되더라도 지역 내 기존 영향력 있는 소수 엘리트들이 의사결정 구조를 장악하면, 새로운 시민의 진입은 차단되고 조직은 폐쇄적인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게 된다.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고 이탈하는 문화는 주민자치가 ‘마을의 발전’이 아닌 ‘권력의 쟁취’ 수단으로 전락했음을 보여주는 서글픈 증거다.
2. ‘우려먹기’ 사업의 굴레: 창의성을 죽이는 매너리즘
조직의 폐쇄성은 필연적으로 사업의 매너리즘을 낳는다. 구청 관계자들이 토로하듯, 많은 주민자치회의 공모 사업들이 과거의 내용을 제목만 바꿔 제출하는 ‘우려먹기식’ 관행에 머물러 있다.
이는 조직 내부의 인적 쇄신이 정체되고, 외부 공동체의 신선한 아이디어가 수혈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해외의 선진 사례는 이 문제의 해답을 제시한다.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의 참여예산제(Participatory Budgeting)가 초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매년 참여 규칙을 갱신하고, 새로운 시민들의 참여 비중을 제도적으로 보장했기 때문이다.
반면, 현재 우리의 주민자치회는 기존 위원들의 경험이라는 명목하에 새로운 피의 수혈을 주저하며, 창의적인 마을 설계보다는 행정 예산의 관성적 집행에 매몰되어 있다.
3. 갈등을 넘어서는 ‘협력적 거버넌스’의 가능성
내가 속한 자치회는 다행히 선거 이후에도 대다수 위원이 이탈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구청 관계자가 이를 “선도적인 사례”라고 평가한 점은 역설적으로 우리 주민자치가 얼마나 쉽게 무너져 왔는지를 반증한다.
갈등을 조직의 와해가 아닌 발전을 위한 ‘숙의(Deliberation)’의 과정으로 전환하는 능력, 그것이 바로 자치 역량의 핵심이다.
독일의 ‘뷔르거라트(Bürgerrat, 시민의회)’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작위로 추출된 시민들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모이지만, 충분한 정보 제공과 숙의 과정을 통해 갈등을 조정하고 공동의 대안을 도출해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 편의 당선’이 아니라 ‘우리의 합의’다. 봉사라는 초심보다 진영 논리가 앞선다면, 그것은 이미 자치가 아닌 정치의 노예가 된 것이다.
4. 나에게 찾아온 기회: 효능감이 만드는 변화
리더십의 교체와 조직의 유연화는 신입 위원인 나에게 실제적인 기회를 제공했다. 경직된 과거 체제였다면 묵살되었을 현장의 목소리가 새로운 리더십 하에서는 경청과 토론의 주제가 되었다.
마을 활동가로서 느꼈던 현장의 갈등과 필요를 정책 안건으로 제안하고, 그것이 긍정적으로 검토되는 과정에서 나는 ‘참여의 효능감’을 경험했다.
앨버트 허쉬만(Albert Hirschman)은 그의 저서 《이탈, 저항, 그리고 충성》에서 조직의 문제가 생겼을 때 구성원은 떠나거나(Exit), 목소리를 내거나(Voice), 남아서 개선을 돕는다(Loyalty)고 설명했다.
주민자치회의 혁신은 낙선했다고 떠나는 ‘이탈’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참여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목소리’에서 시작된다.
결론: 봉사가 권력을 이기는 마을을 꿈꾸며
주민자치회는 마을의 작은 권력을 쥐는 곳이 아니라, 주민의 불편을 살피고 이웃 간의 단절을 회복하는 ‘공론의 장’이어야 한다. 이번에 목격한 갈등과 변화의 몸부림은 우리 주민자치가 넘어야 할 거대한 산이자, 동시에 새로운 도약의 기회다.
이제 ‘라인’을 만들고 편을 가르는 구시대적 관행을 끝내야 한다. 새로운 피가 수혈되고, 다양한 목소리가 부딪히며, 결과에 승복하고 협력하는 문화가 정착될 때 주민자치회는 비로소 제 이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을 공동체의 진심 어린 열망이 행정의 시스템과 건강하게 맞물릴 때, 우리 마을의 자치는 비로소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이름에 걸맞은 꽃을 피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