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튀르키예 국회에서 '테러 없는 튀르키예' 보고서가 통과되었다. 쿠르툴무시 국회의장은 이 보고서가 범죄자에 대한 사면이 아니며, 국가적 통합과 민주화를 위한 역사적 이정표임을 강조했다. 총 7부로 구성된 이 문서에는 쿠르드 반군으로 알려진 PKK의 해체와 무기 방기를 유도하기 위한 법적 틀과 더불어, 인권 존중을 위한 사법 개혁 방안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유럽인권재판소의 판결 준수와 지방 자치 제도의 개선을 제안하며, 이를 '튀르키예 모델'로서 국제 사회에 제시한다. 보고서는 최종적으로 테러를 종식하고, 민주적 법치주의를 확립하여 지역의 영구적인 평화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테러 없는 튀르키예’ 보고서가 던진 충격과 감동: 분열의 대리전을 끝내고 ‘내부의 요새’를 쌓다
오랜 시간 중동의 화약고 곁에서 아슬아슬한 평화를 이어온 튀르키예의 대지에 전례 없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2026년 2월 18일, 튀르키예 국회(TBMM)의 높은 문턱을 넘어선 한 권의 보고서는 단순한 정책 자료가 아니다. 그것은 수십 년간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었던 이들이 피로 쓴 참회록이자, 증오의 사슬을 끊어내겠다는 국가적 결단이다. 4,199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기록 속에는 테러라는 이름의 유령에 아들을 잃고, 형제를 떠나보낸 수많은 이들의 눈물과 이를 치유하고자 밤을 지새운 정치인들의 고뇌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제 튀르키예는 외부 세력이 설계한 ‘분열의 덫’을 걷어내고, 스스로의 힘으로 평화를 설계하는 거대한 실험대에 올랐다.
냉전의 유산과 대리전의 종말을 향하여
튀르키예에 있어 테러는 단순히 치안의 공백이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의 영혼을 갉아먹는 암세포와 같았다. 냉전 시기부터 지정학적 요충지인 튀르키예를 흔들기 위해 주변 강대국들은 민족 갈등과 종교적 차이를 교묘히 이용했다. 이른바, ‘대리전’의 각축장이 된 아나톨리아 고원은 튀르키예인과 쿠르드인, 아랍인이 수천 년간 쌓아온 형제애를 시험받게 했다. 국가의 막대한 예산은 복지와 교육 대신 무기를 사는 데 쓰였고, 그만큼 서민들의 삶은 팍팍해졌다.
어떻게 이 지독한 굴레를 벗어날 것인가? 이번 ‘테러 없는 튀르키예’ 보고서는 그 해답을 외부가 아닌 ‘우리 안’에서 찾았다. 제국주의적 개입이 파고들 틈을 주지 않기 위해 튀르키예 스스로가 강력한 ‘내부의 요새(inner fortress)’가 되어야 한다는 전략이다. 이는 칼로 적을 베는 방식이 아니라, 포용과 법치라는 따뜻한 외투로 상처받은 이들을 감싸안아 분열의 씨앗을 말려버리는 고도의 심리전이자 인본주의적 선택이다.
사면은 없으나 길은 열어둔 ‘법의 엄격한 자비’
이번 보고서의 산증인인 쿠르툴무시 국회의장은 단호했다. 그는 이 보고서가 결코 범죄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사면(amnesty)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법을 어긴 자는 반드시 사법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한 것이다. 이는 테러로 인해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가슴속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주는 ‘공공의 양심’에 대한 배려다.
하지만 동시에, 보고서는 ‘사회 복귀’라는 담대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무기를 내려놓고 평화의 길을 선택한 이들에게는 독립적이고 한시적인 법적 장치를 통해 다시 시민으로 살아갈 기회를 제공한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이들이 다시 사회의 부품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돕는 이 모델은 처벌과 용서가 어떻게 한 그릇에 담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 세계적인 벤치마크, 이른바 ‘튀르키예 모델(Turkey Model)’로 부상하고 있다.
88시간의 격론이 빚어낸 민주주의의 진화
보고서가 통과되던 날, 앙카라 국회 의사당의 공기는 뜨거웠다. 집권당인 AKP부터 CHP, MHP, 그리고 DEM 당까지, 평소라면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던 정당들이 ‘평화’라는 기치 아래 머리를 맞댔다. 88시간 동안 이어진 끝장 토론, 21차례의 공식 회의, 그리고 4,199페이지에 달하는 회의록은 이 과정이 결코 ‘쇼’가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현장에서는 파격적인 제안들이 쏟아졌다. 특히, 시장이 해임될 때 정부가 임명하던 기존 방식을 폐지하고 지방 의회가 스스로 시장을 선출하게 하자는 제안은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회복하려는 튀르키예의 ‘결정적인 올리브 가지’였다. 고령이거나 병든 수감자들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해 형 집행 정지를 검토한다는 대목에서는 인권에 대한 튀르키예의 깊은 성찰이 엿보였다. 이념의 벽을 넘어 47표라는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된 이 결과는, 이제 튀르키예 국민이 더 이상 갈등의 불쏘시개가 되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종착역이 아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향해
이 방대한 보고서는 테러 종식의 마침표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함께 걸어가야 할 멀고 험한 여정의 첫 번째 ‘이정표’다. 4,199페이지의 기록은 숫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지난 수십 년간 우리가 서로에게 던졌던 돌을 거두고, 그 돌로 평화의 성벽을 쌓자는 약속이다.
튀르키예가 ‘내부의 요새’를 공고히 한다는 것은 단순히 국경을 닫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변 국가들이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민주적 기초를 세우는 일이다. 테러의 공포가 사라진 거리에서 아이들이 웃음을 되찾고,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이들이 형제애로 포옹할 때, 튀르키예는 중동과 세계를 향해 진정한 리더십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