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다 넘어지고 재기했다 다시 쓰러진다고 괴로워하지 말라!
나는 문화대혁명 때 반모 주자파로 몰려 홍위병으로부터 공개비판을 당했고, 잠시 일어났지만 하방 당하여 강서성의 한 공장에서 4년간을 육체노동자로 버텨야했다.
주은래 총리의 도움으로 복권되어 국무원 부총리로 재기했다가 4인방의 농간에 또 다시 실각하고 가택연금까지 당해야했지만 모택동 사후 정국수습용으로 재기용된 후 화국봉과의 5년 권력투쟁끝에 최고실권을 장악했다.
나는 세번 쓰러지고 네번 일어난 역전의 용사로서 마지막 정치적 위기였던 천안문사태의 시련을 견뎌내고 아무리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뚜기 부도웅 개혁개방의 총설계사가 되었다.
모함과 주변 경쟁자들의 갖은 모함 또한 권력의 바라기 홍위병들로부터 수모를 당하는 시련을 견뎌내고 오늘날의 중국을 만들어낸 등소평은 오직 바라는 것은 인민이었다.
“인민에게 버림받은 당은 공산당이라 할 수 없습니다.” 고 그는 철저하게 국민들을 상대로한 정치를 펼침으로써 위대한 국가의 지도자로 기억되고 있다.
냉전속에서 모택동의 핑퐁외교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이루어지고 이후 집권하면서 집권전부터 주장했던 자본주의 체제 전환을 본격적으로 시행 체제는 공산주의, 경제는 개방,개혁 계획경제로 전환하였다.
경제정책의 근간에는 이른바 ‘흑묘백묘론’을 주창했다.
-흑묘백묘론
중국 쓰촨성 지방의 속담인 ‘흑묘황묘(黑猫黃猫)에서 유래한 용어로 덩샤오핑이 이를 응용 것이다.
“不管黑猫白猫 捉到老鼠 就是好猫(부관흑묘백묘 착도로서 취시호묘):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오로지 쥐만 잘 잡으면 그만이라는 뜻.
등소평의 이런 정책으로 중국은 세계 굴지의 경제 대국으로 급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권력에의 집착으로 국민을 아우르기보다 편협과 내로남불의 추악한 근성에 하찮은 목숨을 걸어 보수 진보,좌익 우익,나아가 세대간 갈등,성 갈등,지역 갈등,으로 수렁에 빠져 혼란의 시대를 살고있는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별나라 세상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