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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상 칼럼] 부메랑

이태상

희랍 신화에 손에 닿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하게 하는 힘을 부여받았던 프리지아의 왕 마이다스의 이야기가 있다. 손을 대는 것마다 다 황금으로 변해 그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황금이 좋다지만 사람이 황금을 먹고 살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서양에서는 유태인들을 꺼리듯 한국에서는 개성 사람들을 멀리해 온 것 같다. 그 이유는 이들이 영국의 극시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냉혹한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그리고 영국의 소설가 챨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에 나오는 수전노 스크루지가 이기적이고 인색하기로 소문났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물론 편견이 많이 작용했겠지만 말이다.

 

좀 과장되긴 했겠지만, 개성 사람들이 얼마나 경제적이고 절약하는지를 말해주는 얘기들이 있다. 개성 사람 집 밥상에는 밥 한 그릇뿐이고 소금에 절인 짠 조기 한 마리가 천정으로부터 밥상 위로 매달려 있어 밥 한술 입에 떠 넣고는 그 짠 조기를 한번 반찬으로 쳐다본단다. 또 어느 누가 개성 사람 집 뜰 안으로 짠 조기 한 마리를 던졌더니 그 집 주인 어른이 이 웬 ‘밥도둑’이냐고 펄쩍 뛰면서 집안 식구들이 이 짠 조기 때문에 밥을 많이 먹게 될까 봐 이 조기를 집어 울타리 밖으로 되 던져 버리더란다. 

 

내가 아는 사람의 아버님께서는 옛날 개성에 사실 때 볼 일 보러 집 떠나 먼 길 가실 때면 주머니에 떡을 몇 개씩 넣고 가셨는데 아무리 배가 고파도 떡이 쉴 때까지 참고 기다리셨다고 한다. 쉰 떡을 잡숴야 소화가 안 돼 배고픈 줄 모르고 오래 버티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였는지 그분은 오래 못 사시고 일찍 돌아가셨다고 한다.

 

영어에 ‘penny-wise and pound-foolish’란 말이 있듯이 이야말로 한 푼 아끼려다 천 냥 만 냥 잃기 아닌가.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는 소탐대실이다. 하긴 이기적이고 인색한 것이 개성 사람이나 유대인만은 아니다. 영국 작가로 ‘기상천외의 이야기들’ 등의 저자인 로알드 달(1916-1990)이 생전에 어느 한 인터뷰에서 한 다음과 같은 말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우리가 모두 귀담아 되새겨볼 만하다.

 

“유대인 기질 또는 근성에는 사람들의 반감을 사고 적의까지 불러일으키게 하는 특징이 있다. 아마 이것은 비 유대인에 대한 그들의 도량이 좁고 관대함이 부족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내 말은 언제 어디서나 그 무엇을 또는 그 누구를 반대하는 주의가 생기고 운동이 일어날 때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히틀러같이 고약한 독재자도 아무 이유나 까닭 없이 유대인을 괴롭힌 것은 아닐 테니까.”

 

벌써 오래전부터 미국 LA 지방에서는 한국 사람들을 동양의 유대인이라고 한다지 않나. 우린 모두가 누구나 근시안적일 수가 있다. 남을 속이고 해치면서 아무리 돈과 명예를 얻는다 해도 진실로는 비교도 안 되게 더 큰 대가를 지불하게 된다. 다시 말해 보배 중의 보배라고 할 수 있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값진 자기 자신의 양심과 인격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우리 가운데 많은 것은 인식 부족에서 오는 것 같다. 

 

우리가 숨 쉬는 공기, 마시는 물을 더럽힐 때 우리 자신이 피해를 입듯 우리가 남을 해칠 때 실은 우리 자신을 해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비록 신의 존재나 ‘최후의 심판’을 믿지 않는다 해도 남한테 못 할 짓 했을 때 마음속 깊이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 없고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가해자가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업자득이라 하나 보다. 따라서 남한테 하는 못된 짓은 자신에게도 못된 짓이 되고 남이 아닌 자신에게 모든 것이 돌아오는 것임이 틀림없다. 던진 자리로 되돌아오는 부메랑같이.

 

또 한 가지 사족을 달자면 세상엔 산술적으로 계산해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있는 것 같다. 그 한 예로 내가 인생살이 90여 년 살아오면서 아주 어려서부터 늘 경험해온 바로는 마치 샘물이나 우물물은 퍼 쓰면 쓸수록 샘물이 고갈되는 대신 더 많이 샘솟듯이 돈이고 정이고 간에 쓰면 쓸수록 쏟으면 쏟을수록 돈도 생기고 정도 넘쳐나더란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대양(大洋)의 물도 더 줄지도 늘지도 않는다고 하나 보다. 모든 냇물과 강물이 바다로 계속 흘러들기만 한다면 물의 양이 엄청나게 늘어나겠지만 말이다. 또 물이 계속 증발해버린다면 물의 양이 줄겠지만, 그 증발된 물이 구름이 되었다가 비로 쏟아져 내려오는 이치일는지 모르겠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의 느낌과 생각은 비슷한 것 같다. 다시 말해 길은 달라도 도달점은 같으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성서에서도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한다 해도 해 아래는 새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전도서 1:9-10) 그렇기에 사람들 깨달음의 내용은 물론 그 표현 방식도 유사한 것 같다. 우리 동양의 옛 선현들은 ‘한 포기 풀잎에서 온 우주를 감지할 수 있다’ 했고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는 “모래 한 알에서 세상을 들꽃 한 송이에서 천국을 볼 수 있도록 네 손에 무한을 한순간에 영원을 잡으라’고 했다.

 

예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익은 벼가 고개 숙인다’ 했듯이 만유의 인력 법칙을 발견한 영국의 과학자 아이작 뉴턴(1642-1727)은 이렇게 고백한다. “세상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난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좀 더 예쁘고 매끄러운 조약돌과 조가비를 줍고 노는 어린애일 뿐 진리의 대양은 내게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다. 

 

남보다 내가 멀리 보았다면 거인들의 어깨에 내가 올라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선장은 그의 항해일지에 이렇게 기록해놓고 있다. “오, 신이여, 당신의 바다는 너무도 큰데 내 배는 너무나 작습니다.” 같기는 오늘날에 와서도 마찬가지이리라. 다음과 같은 시는 만고천추 우리 모두의 참모습과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물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류시화

 

 

이 나무속에 또 하나의 나무가 있고

이 돌 속에 또 하나의 돌이 있다.

그 빛깔 색조는 달라도

똑같은 껍질과 무게를 지닌 같은 하나로.

그리고 내 몸 안에 또 하나의 몸이 있다.

기다림으로 내 연륜은 노래한다.

또 다른 몸이 없고

또 다른 세계가 없다고.

 

-제인 히르쉬필드

 

자연과 세상이 다 우리 자신의 거울이듯 문학과 예술 또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우리도 연인들이 되고, 그의 ‘햄릿’은 우리를 회의와 사색에 잠겨 우유부단한 성격의 소유자로 만들며 스페인의 풍자소설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현실을 무시한 과대망상적인 공상을 실현하려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예전에 들은 얘기로 한국판 돈키호테라 할 수 있는 김삿갓인지 봉이 김선달인지가 하루는 지체 높은 양반집 마님들을 모아놓고 “밤에 영감님 귀인의 귀중한 물건을 너무 꼭 잡고 자면 손바닥에 사마귀 생긴다”고 말하자 모두들 하나같이 제각기 제 손을 펴보더라고 하더라. 모름지기 이때 이 ‘사마귀’란 사랑 ‘사’ 자(字), 마음 ‘마’ 자, 귀하신 몸 ‘귀’ 자였으리라.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다 보면 그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 눈에 잘 띄는 손바닥에 아주 작은 하나의 상징적인 귀한 몸으로 강생 현신한다는 뜻이었겠지. 아, 그렇다면 이와 같은 일심동체의 표본이 로미오와 줄리엣이고 ‘살기냐 죽기냐’로 고민하고 고뇌하는 인간상이 햄릿 아닌가.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

 

작성 2026.02.28 09:16 수정 2026.02.28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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