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타임라인
이란인 중 미국이 독재를 무너뜨렸다고 좋아하는 사람을 보며 생각나는 것이 하와이다. 독립국이었던 하와이는 어떻게 미국의 50번째 주가 되었는지 간단하게 이야기해 보려 한다.
미국의 49개 주가 연합된 형태를 갖춘 후, 하와이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7개의 섬으로 구성된 군도는 지정학적 위치가 좋았다. 그리고 이미 많은 미국인이 사탕수수 농장을 통하여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plantation’이라 불리는 농장주 13명은 ‘13 Business Men’이라는 모임을 통해 사업 이익을 철저히 추구했다. 그러나 엄연히 통일된 국가가 존재했고, 미국은 계책을 세웠다.
스티븐스 목사(John Leavitt Stevens)와 같은 선교사를 보내고 서구 문물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민들이 왕에게 반기를 드는 쿠데타를 감행하게 했다. 미국 사업을 보호하겠다고 군대를 파견했다. 1893년 여왕 릴리 우오칼라니(Lili ‘Uokalani)은 물러나고, 미국은 공화정을 세웠다.
첫 공화정 대통령은 스탠포드 돌(Standford Ballard Dole)이 맡았다. 그의 아버지는 선교 활동을 하기 위해 하와이에 온 다니엘 돌이었다. 하와이에서 스탠포드 돌은 태어났고, 그는 농장 사업으로 성공했다. 우리가 즐기는 바나나 파인애플 회사 이름에서 자주 보는 그 돌이 맞다. 그리고 조선인 하와이 역사도 사탕수수 농장으로 시작되었다. 미국 농민이 하와이 땅을 사서 시작한 사탕수수 농장은 잘 되었고, 거대한 세력이 되어 하와이 왕정을 전복하고 미국 군대를 불러오기까지 했다.
처음에는 원주민을 노동력으로 활용했으나 부족해지자, 일본인과 중국인 노동자만 있었다. 그러나 하와이 사정을 알게 된 노동자들이 더 나은 직종으로 떠나고, 파업과 이탈로 다루기 힘들어지자, 조선인도 1903년부터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에서 먹고 살기 힘든 조선인들이 현지 상황도 모르는 채 막연히 미국 꿈(American Dream)을 꾸며 떠났다. 조선 노동자들은 각 농장에 분산 배치되어 하루 16시간 이상의 노동을 하였으며, 백인 감독 아래에 노예와 같은 대우를 참아가며 일을 해야만 했다고 한다. 이런 힘든 상황에 조선인은 적응했고, 심지어 몇 푼 안 되는 임금을 모아 독립 자금 지원을 하기까지 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강제 합병 100년 후인 1993년 때 미국이 하와이에 한 행위에 대해서 사과하고 관련 법령을 만들었다. 합병은 하와이가 원해서 한 것이 아니라 당시 미국 정부가 강제로 한 것임을 인정했다고 한다.
영상에 보면 나오지만, 하와이가 정식으로 미국에 50번째 주가 된 것은 1959년이다. 하지만 미국의 영향력은 독립국을 무너뜨린 1893년부터 시작되었다. 먼저 교육부터 바꾸었다. 미국의 공용어인 영어를 학교에서 배우고 일상에서 써야만 했다. 그러면서 그들의 정체성을 잃어간다.
하와이 원주민이라는 말로 하와이가 그들의 국가임을 당연시했다. 마치 미국 본토에 살던 이를 원주민으로 부르며 본래 미국 역사를 200년 정도로 보는 것과 같은 취급이다.
’하와이인이 소중하게 여기는 공공 묘지를 밀고 미국인이 원하는 상가 건물을 세웠다‘라는 말처럼 원래 살던 이에게 의미 있는 장소가 외부인에게 별 게 아닐 수 있다.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으면, 그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다. 조상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를 가진 하와이인은 너희들의 국립묘지를 밀고 상가 건물을 세운다면 어떨지 물어본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방식에 따라 조상이 물려준 땅에 살던 사람이 있다. 어느 날 외부인이 남다른 물건들을 잔뜩 가지고 와서 너의 방식은 잘못되었고 우리 방식이 좋다고 말한다. 그리고 땅을 차지하고 신기한 물건을 팔면서 그 대가로 나에게 일을 시킨다. 그리고 내가 쓰던 말, 행동 등을 자기들 방식대로 고치고 조상들의 문화를 버리게 만든다. 내가 느끼는 제국주의 식민지가 정복한 땅에서 원래 살던 이에게 한 일이다.
하와이 이민사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3629
하와이 병합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