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은 공권력의 상징인가, 아니면 '인권'이라는 단어 앞에 가장 무력하게 난도질당하는 합법적 샌드백인가?
파출소의 밤, 인권은 어떻게 진상들의 무기가 되는가?
자정이 넘은 파출소 문이 거칠게 열린다. 술에 취한 민원인이 바닥에 침을 뱉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붓는다. 정당한 제지를 하려는 젊은 순경의 얼굴 앞으로 스마트폰 카메라 렌즈가 불쑥 튀어나온다.
"어디 한번 건드려봐, 내 인권 침해로 바로 인터넷에 올릴 테니까." 렌즈 앞에서 순경의 주먹은 갈 곳을 잃고 파르르 떨린다.
35년이다. 순경에서 총경으로 제복을 벗기까지, 수만 번의 밤을 범죄와 갈등의 최전선에서 보냈다. 세상은 경찰을 잠재적 가해자로 통제하려 들지만, 취조실의 조명이 켜지는 현장의 현실은 도덕책의 활자처럼 단선적이지 않다.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권이라는 숭고한 개념이, 현장에서는 선을 넘는 자들의 가장 비열하고 강력한 방패로 돌변하는 것을 나는 수도 없이 목격했다.
"조직을 위해 네가 참아라", 가장 뼈아픈 폭력은 어디서 오는가?
그러나 진짜 서늘한 폭력은 취객의 욕설이 아니다. 현장을 가장 무력하게 만드는 칼날은 언제나 조직 내부에서 날아온다. 정당한 법 집행을 하고도 민원인의 악의적인 진정과 여론의 뭇매가 두려워, 조직은 현장의 경찰관에게 침묵을 강요한다.
"일 크게 만들지 말고 자네가 사과해. 조직을 위해서야." 이 익숙하고도 잔인한 문장 앞에서, 제복을 입은 개인의 존엄은 조직의 안위를 위해 너무도 쉽게 제물로 바쳐진다. 나는 지휘관으로서 이 거대한 시스템의 비겁함에 분노했고, 때로는 나 역시 그 시스템의 지휘관이 되어 부하 직원의 억울한 희생을 묵인해야만 했던 뼈아픈 딜레마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의 목에 걸린 사원증은 이 억압으로부터 안전한가?
이것은 비단 권총을 찬 경찰관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매일 아침 사원증을 목에 걸고 출근하는 당신의 현실은 과연 다른가? 무례한 고객 앞에서 "고객님 죄송합니다"라며 억지웃음을 지어야 하는 감정 노동자, 부당한 지시를 내리는 상사 앞에서 밥그릇 때문에 입을 다물어야 하는 직장인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이름이 적힌 제복을 입고 있다. "너만 조용히 넘어가면 모두가 편해"라는 무언의 압박 속에서 나를 잃어가고 있다면, 당신 역시 일상이라는 이름의 파출소에 고립된 채 철저히 인권을 침해받고 있는 것이다.
도덕책을 덮어라, 생존을 위한 '진짜 인권'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래서 나는 35년의 낡은 수첩을 다시 편다. 법전에 박제된 고상하고 따뜻한 인권을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억울함이 분노로, 분노가 다시 무기력으로 부패하는 모순의 현장에서 어떻게 나를 지켜낼 것인지, 그 서늘한 생존의 기준을 남기려 한다.
인권은 무조건 참아내는 갸륵한 인내심이 아니다. 무례함과 부당함을 향해 정확히 선을 긋고, 시스템의 비겁함에 맞서 나의 존엄을 베어 물지 못하게 막아서는 날카로운 칼이어야 한다. 이 칼럼은 그 생존을 위한 병법서다. 이제, 당신의 일상에서 선을 넘는 자들에게 수갑을 채우는 법을 이야기할 시간이다.
칼럼니스트 소개

전준석 칼럼니스트는 경찰학 박사이자 35년간의 경찰 생활을 총경으로 마무리한 치안 행정 전문가다. 현재 한국인권성장진흥원 대표로서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데 헌신하고 있다.
인사혁신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등 주요 기관에서 전문 강사로 활동하며 성인지감수성, 4대폭력 예방, 자살 예방 및 직장 내 장애인 인식 개선, 인권 예방, 리더십 코칭 등 폭넓은 주제로 사회적 가치를 전파하는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범죄심리학', '다시 태어나도 경찰', '그대 사랑처럼, 그대 향기처럼', '4월 어느 멋진 날에', '그대는 늘 선물입니다' 등이 있다. 경찰관으로 35년간 근무하면서 많은 사람이 인권 침해를 당하는 것을 보고 문제가 있음을 몸소 깨달았다.
우리 국민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차별이라는 것이 없어지고 인권이 성장할 것이다. 그런 생각에서 [삼시세끼 인권, 전준석 칼럼]을 연재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