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64문
Q. What is required in the fifth commandment? A. The fifth commandment requireth the preserving the honor, and performing the duties, belonging to every one in their several places and relations, as superiors, inferiors, or equals.
문. 제5계명이 명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제5계명이 명하는 것은 상급자, 하급자, 혹은 동등한 자를 막론하고 각 사람의 지위와 관계에 따라 그들에게 돌릴 존경을 보존하며 의무를 이행하는 것입니다.
ㆍ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에베소서 5:21)
ㆍ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베드로전서 2:17)
ㆍ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로마서 12:10)

포스트모던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권위'라는 단어는 그리 달가운 손님이 아니다. 수평적 문화와 탈권위주의가 시대의 정신으로 자리 잡으면서, 누군가에게 순종하거나 격식을 갖춰 존경을 표하는 행위는 구시대의 유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64문은 놀랍게도 인간 관계의 본질을 '지위(Places)'와 '관계(Relations)'라는 틀 안에서 재정의하며, 이것이 단순한 예절 교육이 아니라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신성한 질서임을 역설한다. 제5계명이 단순히 '부모'라는 특정 대상을 넘어 사회 전체의 상호 존중으로 확장되는 지점을 주목해야 한다.
앞서 제63문에서도 본 바와 같이 '카베드(כָּבֵד)'는 본래 '무겁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상대방의 존재 가치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무겁게 대접하는 것이 존경의 본질이다. 현대 심리학에서 말하는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은 구성원들이 서로의 존재를 가치 있게 여기고 존중할 때 형성된다. 소요리문답은 이를 위해 세 가지 관계적 층위를 제시한다. 상급자(Superiors), 하급자(Inferiors), 그리고 동등한 자(Equals)다. 이는 서열 중심의 계급 사회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처한 위치에서 마땅히 행해야 할 의무(Duties)'가 있음을 시사한다.
리더는 구성원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고 그들의 성장을 도울 의무가 있으며, 구성원은 리더의 결정과 비전을 존중하며 협력할 의무가 있다. 동료 간에는 서로의 성취를 시기하지 않고 격려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만약 이 질서가 무너져 상급자가 하급자를 수단화하거나, 하급자가 상급자를 냉소적으로 대한다면 그 조직은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만다.
우리가 맺는 모든 관계가 사실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질서 안에서의 만남이다. 따라서 타인을 존중하는 행위는 곧 그 사람을 그 자리에 세우신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신앙 고백이 된다.

인간은 관계를 통해 자아를 완성해 나간다.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가 말한 '나와 너(Ich und Du)'의 관계는 상대방을 도구로 보지 않고 인격적 실체로 마주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소요리문답이 말하는 '존경을 보존(Preserving the honor)'한다는 표현은 매우 능동적이다. 이는 상대방의 명예가 훼손되지 않도록 지켜주고,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타인의 권위를 세워주는 것이 곧 나의 품격을 결정짓는다는 역설적인 진리가 이 짧은 문답 안에 숨겨져 있다.
결국 제5계명의 성취는 그리스도의 성육신 모델에서 완성된다.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사건은 권위가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궁극적인 예시다. 진정한 권위는 억압에서 나오지 않고 희생과 섬김에서 발생한다.
우리가 가정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직장에서 상사를 존중하며, 동료를 아끼는 이유는 그들이 완벽하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며, 각자의 위치에서 수행해야 할 거룩한 소명이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지위'를 인정하고 '의무'를 다하는 삶이야말로 갈등으로 점철된 현대 사회를 치유할 가장 강력한 해법이 될 것이다.
허동보 목사 | 수현교회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