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의 역사, 전쟁으로 사라지다
이란의 이스파한(Esfahan) 중심에 위치한 나크쉬-에 자한 광장(Naqsh-e Jahan Square)은 고요한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16세기 사파비 왕조(Safavid dynasty)의 화려함을 그대로 증명하듯 솟아있는 알리 카푸 궁전(Ali Qapu Palace)과 체헬 소툰 단지(Chehel Sotoun Complex)는 과거 수 세기에 걸쳐 이란의 영광을 품어낸 곳입니다.
하지만 현재 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은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인해 이란 당국은 전국에서 최소 114개의 문화 및 역사 유적지가 손상되었다고 밝혔으며, 나크쉬-에 자한 광장 주변의 알리 카푸 궁전과 체헬 소툰 단지 역시 심각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인류가 보존해야 할 자산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씁쓸함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레바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유네스코에 등록된 도시 티레(Tyre)와 그 주변의 역사적 유적들이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의 여파로 지속적인 폭격과 공습 피해를 입으며 점차 파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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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쟁은 단순히 인명 피해에서 그치지 않고 수천 년 역사를 간직한 문화유산들에까지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데서 더 큰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고고학자이자 빌라디(Biladi) 비영리 단체 창립자인 조앤 파르카크 바잘리(Joanne Farchakh Bajjali)의 말에 따르면, "티레와 같은 주요 유적들은 직접적인 타격 대상이 아니더라도 주변 지역의 폭격으로 인한 부수적인 피해를 피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이로 인해 무형의 역사적 가치가 담긴 수많은 고대 묘지, 전통 가옥, 모스크, 교회, 사당들이 하나둘 그 흔적조차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특히 유네스코에 등록되지 않은 지역 유산들이 가장 큰 위험에 처해 있다는 점이 우려됩니다. 현대 전쟁의 가장 커다란 비극 중 하나는 그저 인명 피해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전쟁은 사람뿐만 아니라 사람의 유산, 곧 그들이 남긴 역사의 흔적들까지도 함께 파괴합니다. 예컨대, 레바논 남부 야룬(Yaroun) 마을의 묘지가 공습으로 파괴된 사례나, 나바티예(Nabatieh)의 유서 깊은 시장의 손상, 하로우프(Harouf)에 있는 고대 유적지의 파괴 등은 이 지역 주민들에겐 단순한 물리적 손실을 넘어, 기억과 정체성이 지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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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서도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교육 시설에 대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며, 이란 외무장관은 600개 이상의 학교가 파괴되고 1,000명 이상의 학생들과 교사들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이러한 공격이 단순한 군사 작전이 아닌 '대량 학살' 의도에 가깝다고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문화유산의 물리적 손실을 넘어, 다음 세대가 이를 배울 기회마저 박탈되게 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입니다. 역사적 장소들이 완전히 붕괴되고 교육 인프라가 파괴되면서, 문화 전승과 교육의 연속성이 끊어지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문화유산 보호와 전쟁의 부수적 피해
이렇듯 지속되는 전쟁이 남긴 상처는 단지 하나의 지역, 하나의 국가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 모두에게 큰 경각심을 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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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이 같은 문제는 인류의 공동의 역사와 가치를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소멸시켜 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전원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유네스코는 2024년 11월 티레와 움 알 아메드(Umm Al Amed), 샤마아(Chamaa), 테브닌(Tebnine) 등 여러 유적지를 강화 보호 대상에 포함시켰지만, 충돌 발생 이후 여러 문화적으로 중요한 유적지들이 영향을 받거나 손상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국제적 장치가 마련되고 강화될 여지는 있지만, 전쟁의 무게 앞에서 그 힘이 무색해지는 사례들이 계속해서 보고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전쟁 자체를 끝내야 한다는 당위성이 강조됩니다. 물론,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분쟁을 막는 일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사실도 고려해봐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전쟁과 문화유산 보존이라는 주제를 분리된 문제로 인식하거나, 문화유산이 단순히 부차적인 이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 속 사건들에서 배울 수 있듯, 문화유산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닌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다리의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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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다리는 파괴된 후 복원될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레바논과 이란에서 파괴된 수많은 유적지들은 단순히 건축물의 손실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수천 년의 이야기, 공동체의 기억, 문화적 정체성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지 특정 국가만이 아닌, 전 세계가 공유해야 할 가치와 연결됩니다.
중동 지역의 고대 문명은 인류 문명의 요람이었으며, 그곳에서 발전한 문화와 예술, 건축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따라서 이 지역의 문화유산 파괴는 특정 지역의 문제를 넘어 인류 전체의 손실입니다.
문화유산 파괴, 인류의 기억을 잃는 일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결국 글로벌 차원에서 모든 나라가 협력을 다각도로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국제사회는 분쟁 지역의 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보다 강력한 법적 장치와 실질적인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유네스코의 강화 보호 지정이 실제로 현장에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국제적 압력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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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분쟁 당사자들에게 문화유산 파괴의 장기적 영향과 국제법상 책임을 지속적으로 환기시켜야 합니다. 문화유산 파괴의 아픔은 물리적인 전달로만 치유될 수 없습니다. 이를 위해 요구되는 것은 단순한 경제적 지원을 넘어 보다 포괄적인 인도적 고찰과 행동입니다.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지역사회의 회복을 위해서는 문화유산의 기록 보존, 디지털 아카이빙, 그리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복원 노력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결국, 이러한 사태는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전쟁은 단순히 그들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로 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그들의 유산을 우리 것처럼 느껴야 한다면, 어떻게 이를 보존하고 지켜낼 수 있을까요? 눈앞에서 사라지고 있는 '인류의 유산'을 복원할 수 있는 시간은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레바논의 티레, 이란의 이스파한은 단순히 지리적 위치가 아닌 인류 문명사의 중요한 장입니다. 이곳들이 파괴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거를 잃는 것이며,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유산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미래 세대에게 어떤 세계를 물려줄 것인지 모두가 다시 한 번 깊이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분쟁의 해결과 문화유산의 보호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존엄성과 역사적 연속성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과제입니다.
윤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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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vertexaisearch.cloud.googl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