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의 인생은 출발선보다 버텨 낸 시간이 더 많은 것을 말해 준다.
김성용 기능장의 삶이 그렇다. 지금은 이름 앞에 기능장이라는 묵직한 타이틀이 붙었지만, 그의 시작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2001년, 한식조리기사 자격을 준비하며 주방에 들어선 그는 칭찬보다 꾸중을 먼저 배웠고,
인정받기보다 버텨 내는 법부터 익혀야 했다.
특히 왼손잡이라는 이유는 그에게 단순한 습관의 차이가 아니라, 매일 부딪혀야 하는 불편과 편견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주방은 오랫동안 익숙한 방식과 질서가 강하게 작동하는 공간이었다.
오른손 중심의 동선과 습관 속에서 왼손으로 칼을 잡고 일한다는 것은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었고, 때로는 그 다름이 이유 없는 꾸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김성용 기능장은 손을 바꾸기보다 실력으로 증명하는 길을 택했다. 남들보다 더 많이 움직였고, 더 오래
배웠으며, 더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켰다. 이번 제79회 조리기능장 원패스는 단순한 합격이 아니다.
그것은 수십 년 현장을 버티며 스스로를 단련해 온 한 조리인의 긴 시간에 대한 응답이다.
왼손잡이의 설움, 막내의 자리에서 시작된 주방 인생
김성용 기능장의 주방 인생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됐다. 처음부터 불 앞에 서거나 칼을 능숙하게 다루는 위치가
아니었다. 막내로 들어간 그는 설거지부터 시작했다. 주방의 흐름을 익히고, 선배들의 손놀림을 눈에 담고,
바쁜 시간대에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몸으로 배워야 했다.
막내는 늘 가장 먼저 움직여야 했고, 가장 늦게 손을 놓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그는 주방의 세계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 그에게는 하나의 어려움이 더 있었다. 바로 왼손잡이라는 점이었다.
주방에서는 칼을 잡는 방향 하나, 도마를 두는 위치 하나까지 익숙한 방식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김성용 기능장은 처음부터 그 질서와 다른 손을 쓰는 사람이었다.
왼손으로 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지적을 받았고, 손을 바꾸라는 말을 숱하게 들어야 했다. 때로는 기술보다 습관이
먼저 문제 삼아졌고, 실수보다 다름이 더 크게 보이는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럴수록 더 많이 보고, 더 꼼꼼하게
익히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주방에 적응해 갔다.
그 시간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많은 핀잔을 들었고, 서툴다는 이유로, 막내라는 이유로,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주방을 떠나지 않았다. 회만 잘한다는 식의 단정,
특정 파트에만 어울린다는 편견도 끝내 그를 가두지 못했다.
설거지와 정리, 보조와 반복 속에서 그는 가장 기본적인 일의 가치를 먼저 깨달았다. 주방에서 허드렛일로 보이는
일들이야말로 전체를 움직이는 뿌리라는 것을 몸으로 알게 된 것이다. 결국 그 기초가 훗날 기능장에 이르는 실력의
바탕이 됐다.
설거지담당에서 실장까지, 현장이 키워 낸 진짜 조리인
김성용 기능장은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설거지로 시작한 주방 생활은 칼판과 찬모 보조, 과장급 업무,
간데기와 뒷주방 업무로 이어졌다. 주방은 단순히 한 가지 기술만 잘한다고 버틸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재료를 이해해야 하고, 속도를 맞춰야 하며, 손님이 몰리는 흐름과 팀의 호흡, 청결과 정리, 긴장 속에서도 실수를
줄이는 감각이 모두 필요하다. 그는 오랜 시간 이런 요소를 하나씩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단순히 일손이 빠른
조리인이 아니라, 주방 전체를 읽을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한 것이다.
성실함과 청결, 집중력은 그의 가장 큰 무기였다. 눈에 띄는 화려함보다 기본을 끝까지 놓지 않는 태도가 결국
사람들의 신뢰를 만들었다. 그렇게 그는 뒷주방에서 실력을 인정받았고, 책임 있는 위치를 맡으며 결국 실장
자리까지 올랐다.
실장은 단순히 요리만 잘한다고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조리의 완성도는 물론이고 팀을 이끌고 흐름을 관리하며
업장의 수준을 지켜 내야 한다. 김성용 기능장은 오랜 현장 경험을 통해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단단해졌다.
그의 이력은 현장에서 길러진 무게를 보여 준다. 한식집을 10년간 운영했고, 2023년에는 자연회와 장어구이집을
운영했다. 누군가는 자격증을 취득한 뒤 현장에 나서지만, 그는 이미 현장을 깊이 통과한 뒤 더 높은 자격에
도전한 경우에 가깝다.
그래서 그의 조리기능장 도전은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평생 쌓아 온 시간을 정리하고 증명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장을 모르는 기술은 도퇴되기 쉽고, 기술을 모르는 현장 경험은 한계에 부딪히기 쉽다.
김성용 기능장은 그 두 영역을 함께 품고 기능장에 도전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제79회 조리기능장 원패스, 혼자만의 성취가 아닌 함께 만든 결과
제79회 조리기능장 원패스는 분명 김성용 기능장의 집념이 만들어 낸 값진 성과다. 그러나 이 기록은 혼자만의
싸움으로만 설명되기 어렵다. 기능장 시험은 현장 경험이 많다고 해서 누구나 쉽게 통과할 수 있는 과정이 아니다.
오랜 실무 경력이 있어도 시험의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의외의 지점에서 흔들릴 수 있다.
실전 감각과 평가 기준, 시간 운용과 완성도, 반복 훈련과 약점 보완이 촘촘히 맞물려야만 비로소 합격이라는 결과에
닿을 수 있다. 그 중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 바로 양산 마스터요리 제과제빵학원이다.
이곳은 단순히 자격증 취득을 위한 일반 교육기관이 아니라, 조리기능장에 도전하는 이들에게 실전 중심의 훈련과
체계적인 지도 과정을 제공하는 조리기능장 전문학원으로서의 색채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 기능장 과정은 기술을
아는 것과 시험에 합격하는 것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훈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양산 마스터요리 제과제빵학원은 바로 그 간극을 줄이는 데 강점을 지닌 곳으로 읽힌다.특히 박선화 원장의 존재는
이번 합격 서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박선화 원장은 단지 기술을 전달하는 교육자의 자리를 넘어, 수강생의 장점과
약점을 세밀하게 읽고 끝까지 완주할 수 있도록 이끄는 조력자의 역할을 해 온 인물로 비친다.
김성용 기능장에게 이번 도전은 오랜 경험을 시험의 언어로 다시 정리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박선화 원장의 지도는 방향을 잃지 않게 하는 나침반과도 같았을 것이다. 현장의 감각을 지닌 사람이 시험의
기준까지 정확히 갖추게 되었을 때, 원패스라는 결과는 비로소 현실이 된다.
김성용 기능장이 박선화 원장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고 밝힌 배경도 여기에 있다. 혼자만 잘해서 되는 시험이
아니라, 제대로 이끌어 주는 스승과 교육 환경이 함께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결과였기 때문이다.
이번 합격은 한 사람의 노력과 한 전문학원의 체계가 만나 만들어 낸 결실이다. 동시에 양산 마스터요리 제과제빵학원이 왜 조리기능장 전문학원으로 주목받는지를 보여 주는 상징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원패스의 신화를 넘어, 2026년 부산보건대로 이어지는 새로운 출발
많은 이들이 자격을 얻으면 잠시 숨을 고른다. 그러나 김성용 기능장의 시계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2026년
부산보건대 입학이라는 또 하나의 새로운 길 앞에 서 있다. 이미 현장 경험도 풍부하고 기능장이라는 성과도 거머쥔
사람이 다시 학교 문을 두드린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깊은 울림을 준다.
그것은 더 높은 자리를 향한 욕심이라기보다, 요리와 조리에 대한 배움을 끝내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현장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든다. 반면 학교는 경험을 체계로 정리하게 하고, 감각을 이론으로 확장하게 만든다.
김성용 기능장이 부산보건대에서 새롭게 배움을 이어 간다면, 그는 단지 경력이 많은 조리인을 넘어 경험과 이론,
현장성과 전문성을 함께 갖춘 인물로 더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요리는 손끝의 기술인 동시에 시대와 문화,
영양과 경영, 사람과 삶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영역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그의 입학 계획은 개인의 학업 선택을 넘어, 조리인의 성장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좋은 사례다.무엇보다 의미 있는 부분은, 그의 이야기가 오늘도 주방 어딘가에서 묵묵히 버티고 있는 후배들에게
하나의 희망이 된다는 점이다.
지금은 설거지 담당일 수 있고, 지금은 보조 역할에 머물러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쌓이면 사람은 결국 자기
자리에 닿게 된다. 김성용 기능장은 바로 그 사실을 증명해 낸 인물이다.
왼손잡이라는 이유로 더 많은 불편을 겪었고, 막내라는 이유로 더 오랜 시간을 견뎌야 했지만, 그는 끝내 기능장이
됐다. 그래서 그의 원패스는 단순한 합격 기록이 아니라, 삶을 밀어 올린 긴 인내의 증거이기도 하다.
김성용 기능장의 이야기는 단순한 성공담보다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그것은 주방 막내의 생존기이자, 편견을 넘어선
성장기이며, 끝내 스스로의 이름을 증명해 낸 한 조리인의 인간적인 기록이다.
설거지에서 시작해 칼판과 찬모, 뒷주방과 실장을 거쳐 업장을 운영하고, 마침내 제79회 조리기능장 원패스라는
결과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간은 결코 짧지도, 가볍지도 않았다. 손이 다르다는 이유로 더 많이 혼나야 했던 날들,
남들보다 더 오래 바닥을 지나야 했던 순간들이 오히려 오늘의 김성용 기능장을 만들었다.
이번 성취는 한 사람의 영광으로만 남기에는 아까운 기록이다. 그것은 김성용 기능장 자신의 땀과 집념이 만든
결과이면서도, 조리기능장 전문학원으로서 탄탄한 교육 시스템을 보여 준 양산 마스터요리 제과제빵학원의 힘,
그리고 수험생의 가능성을 끝까지 믿고 이끌어 준 박선화 원장의 헌신이 함께 빚어 낸 열매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기사는 단지 기능장 합격 소식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람을 성장시키는 교육이 무엇인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노력이 어떻게 삶을 바꾸는지를 함께 보여 준다.
그리고 이제 김성용 기능장의 시선은 다시 앞으로 향해 있다. 2026년 부산보건대 입학은 이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리는 다음 장의 제목이다.
왼손잡이의 설움을 딛고 원패스 신화를 써 낸 그의 삶은 오늘도 현장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묵묵히 버티는 이들에게
분명한 말을 건넨다. 시작이 초라해도 끝까지 놓지 않으면 인생은 바뀔 수 있다. 김성용 기능장의 이름이 더 오래
기억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