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아침이었습니다. 스마트폰 화면 속 ‘뉴스공장’을 켜니 팽팽한 긴장감이 전해졌습니다. 진행자는 과거 기관원과 기자가 자신을 감시했던 일을 회상하며, 지금도 본인을 타깃 삼아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보고서를 만드는 매체가 있다고 폭로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작 그들은 자신들이 거꾸로 감찰과 조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모를 것"이라는 서늘한 경고를 덧붙였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며 내 머릿속에는 『장자(莊子)』 「산목(山木)」 편의 ‘조릉의 숲’ 일화가 겹쳐졌습니다.
장자가 조릉의 밤나무 숲에서 목격한 광경은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과 정치적 공방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장자는 기이한 까치를 보고 활을 겨누다 연쇄 포식의 현장을 봅니다. 매미는 그늘에 취해 제 몸을 잊었고, 사마귀는 매미를 노리느라 뒤의 까치를 보지 못합니다. 까치 또한 사마귀를 탐하느라 장자의 화살촉이 자신을 겨누는 줄 모릅니다. 이른바 ‘이류상소(二類相召)’—서로가 서로를 이익의 굴레로 끌어들이며 위태로운 파국으로 치닫는 형국입니다.
서로가 사냥감이 되는 현대판 조릉의 숲
작금의 언론 지형에서 특정 매체를 표적 삼아 현미경 감시를 들이대는 모습은 매미를 노리는 사마귀의 집요함을 떠올리게 합니다. 일부 매체는 기업의 이해관계나 정치적 성향에 함몰되어 비판 언론을 소송으로 괴롭히는 사냥꾼 역할을 자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장자의 우화가 일깨워주듯, 누군가를 사냥하려는 자는 필연적으로 자신 또한 누군가의 사냥감이 된다는 사실을 망각합니다. 상대를 쓰러뜨릴 단기적 이익에 몰두하느라 정작 제 등 뒤에 겨눠진 화살촉은 보지 못하는 셈입니다.
장자는 이 광경을 보고 소름 끼치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아아! 만물은 본래 서로 얽매여 있으며, 한 종류가 다른 종류를 불러들이는구나(物固相累, 二類相召也)!"
남을 해치려 활을 겨누는 순간 나 또한 표적이 된다는 진리입니다. 실제로 장자 역시 까치를 잡으려다 숲지기에게 ‘밤도둑’으로 오인 받아 쫓겨납니다. 남을 사냥하려다 자신이 사냥당하는 처지로 전락한 이 반전의 장면은 가히 압권입니다.
맺으며: 숲을 지키는 자의 외침
오늘날 ‘뉴스공장’을 둘러싼 감시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누가 사마귀이고 누가 까치인지 묻게 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조릉의 숲’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 겨눈 화살이 결국 자신의 등을 찌르는 비수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눈앞의 ‘견리(見利)’에 눈이 멀어 마땅히 지켜야 할 ‘의(義)’를 잊는다면, 우리 역시 숲지기의 호통에 쫓겨나는 처량한 신세가 될지도 모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상대를 향한 날 선 모니터링이 아니라, 내가 누구를 겨누고 있으며 내 뒤에는 누가 서 있는지 살피는 ‘깨어 있는 성찰’입니다. 조릉의 숲이 주는 교훈은 수천 년 전의 우화가 아니라, 어제 아침 스마트폰 화면 너머로 들려온 준엄한 경고장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