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2차 세계대전 이후 첫 필리핀 전투 병력 배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81년 만에 일본이 필리핀 땅에 전투 병력을 배치했다는 사실은 역사적 맥락에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중요한 사안이다. 평화 헌법을 유지하며 전후 자위대의 해외 활동을 엄격히 제한해온 일본이 필리핀에서 미국 및 필리핀과 함께 대규모 군사 훈련에 참여한 것은 단순한 훈련 참가를 넘어, 변화하는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 구도와 중국 견제라는 명확한 전략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마리타임 이그제큐티브 보도에 따르면, 2026년 4월 11일부터 시작된 연례 '살락닙(Salaknib)' 훈련에 일본 육상자위대 약 420명이 참가했다.
이는 1945년 일본 패전 이후 일본 전투 병력이 필리핀에 배치된 첫 사례로 기록된다. 살락닙은 타갈로그어로 '어깨를 나란히'라는 의미로, 미군과 필리핀군의 전투 준비 태세 및 상호 운용성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번 훈련에는 미군과 필리핀군 7,000명 이상이 참여했으며, 호주와 뉴질랜드 군인들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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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육상자위대는 필리핀 루손섬 북부에서 미군 및 필리핀군과 협력하며 연합 작전 능력을 시험했다. 훈련 장소인 루손섬 북부는 대만 해협과 남중국해를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이른바 '제1열도선'의 핵심 구간에 해당한다. 제1열도선은 일본 열도에서 오키나와, 대만, 필리핀, 보르네오를 잇는 가상의 방어선으로, 미국은 이 선을 통해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제한하려는 장기 전략을 추진해왔다.
이번 살락닙 훈련에 이어 더 큰 규모의 '발리카탄(Balikatan)' 훈련도 진행될 예정이다. 발리카탄은 타갈로그어로 '어깨동무'를 의미하며, 미국과 필리핀이 1991년부터 매년 실시해온 대규모 연합 훈련이다. 일본은 2012년부터 발리카탄 훈련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석해왔으나, 2026년에는 1,000명 이상의 육군 및 해군 병력을 파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일본의 발리카탄 참여 역사상 최대 규모로, 단순한 관찰자에서 적극적 참여자로의 역할 전환을 의미한다. 군사 전문가들은 일본의 이번 움직임을 중대한 전략적 변화로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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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안보 분석가들은 "이는 일본이 중국과 대치할 수 있는 지역 안보 그룹에서 더 큰 역할을 수행하려는 도쿄의 의지를 보여주는 큰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일본은 2022년 12월 새로운 국가안보전략을 발표하며 방위비를 GDP 대비 2%까지 증액하고, 반격 능력 보유를 명시하는 등 전후 안보 정책의 근본적 전환을 추진해왔다. 일본의 필리핀 전투 병력 배치는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미국은 중국의 해양 팽창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 호주, 필리핀, 한국 등 역내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들과의 군사 협력을 강화해왔다. 특히 필리핀은 2023년 미국에 4개의 추가 군사기지 사용을 허용하며 미·필리핀 동맹을 크게 강화했고, 이 중 일부 기지는 대만 해협과 남중국해를 조망하는 루손섬 북부에 위치한다.
미·일·필리핀 삼각 협력, 중국 견제 의지 선명
필리핀 또한 중국과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으로 인해 미국 및 일본과의 안보 협력을 적극 추구하고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 대부분을 자국 영해로 주장하며 인공섬을 건설하고 군사 시설을 배치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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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상설중재재판소(PCA)는 중국의 '9단선' 주장에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으나, 중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필리핀은 자국 어선과 해안경비대가 중국 선박으로부터 물대포 공격과 충돌을 당하는 사례가 반복되자, 외부 안보 파트너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일본의 이번 조치는 지역 내 군사적 균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이미 필리핀과 2024년 7월 상호접근협정(RAA)을 체결해 양국 군대가 상대국 영토에서 훈련 및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 RAA는 일본이 호주에 이어 두 번째로 체결한 협정으로, 일본 자위대의 해외 활동 범위가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군사 협력 강화는 중국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과거 유사한 훈련에 대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행위"라고 비판하며, "냉전적 사고를 버리고 진영 대결을 조장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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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미국과 동맹국들의 군사 협력을 자국을 겨냥한 봉쇄 전략으로 간주하며, 이에 대응해 자체 군사력 증강과 러시아와의 협력 강화로 맞서고 있다. 동북아시아 국가들에게 일본의 이번 움직임은 복잡한 함의를 지닌다. 한국의 경우, 미국의 동맹국이자 일본과 역사적 갈등을 겪어온 국가로서 미묘한 입장에 놓여 있다.
한국은 2023년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를 통해 한·미·일 안보 협력을 제도화했으나, 국내에서는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존재한다. 일본의 재무장이 과거사 반성 없이 진행될 경우, 역내 국가들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일본 정부는 이러한 군사 활동 확대가 평화 헌법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일본 헌법 제9조는 전쟁 포기와 전력 불보유를 규정하지만, 일본 정부는 "전수방위" 원칙 하에 자위를 위한 최소한의 실력 보유는 허용된다고 해석해왔다. 2015년 안보법제 개정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제한적으로 허용한 이후, 일본은 동맹국 방어를 명분으로 군사 활동 범위를 점진적으로 확대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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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신냉전 구도와 한국의 전략적 선택지
지역 안보 전문가들은 이번 훈련이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장기적 추세의 일부라고 분석한다. 일본은 2027년까지 방위비를 현재의 약 2배로 증액하고, 반격 능력을 갖춘 장거리 미사일을 배치하며, 사이버 및 우주 영역에서의 능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이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에서 동맹국들의 역할 분담을 요구하는 것과 맞물려 있다. 필리핀 입장에서도 일본과의 군사 협력은 실질적 이익을 제공한다. 일본은 필리핀에 해안경비정을 제공하고, 레이더 시스템 등 방위 장비 이전을 추진하며, 재난 구조 및 인도적 지원 분야에서도 협력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일본은 필리핀의 최대 투자국 중 하나로, 인프라 개발 지원을 통해 양국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군사 협력 강화가 지역 긴장을 고조시킬 위험도 존재한다. 중국이 이를 위협으로 인식하고 군사적 대응을 강화할 경우, 남중국해와 대만 해협에서의 우발적 충돌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일부 분석가들은 외교적 대화 채널을 유지하면서 군사적 억지력을 강화하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번 일본의 필리핀 전투 병력 배치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 지형이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전후 81년간 유지해온 군사적 자제 정책에서 벗어나 적극적 안보 역할을 모색하는 일본의 변화는 역내 모든 국가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 주도의 동맹 네트워크가 강화되는 한편, 중국의 반발과 대응도 거세지면서 지역은 새로운 안보 딜레마에 직면하고 있다. 각국은 자국의 안보 이익을 지키면서도 불필요한 긴장 고조를 피하는 신중한 외교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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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scmp.com
themaritimeexecutiv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