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의존도 95%, 블루오션 호두 시장에 던진 승부수
[더인사이트뉴스 박주환 기자] 조선 후기의 석학 서유구는 자신의 저서 <정조지>를 통해 호두의 가치를 예찬했다. “맛이 달고 피부에 윤기를 주며 수염과 머리카락을 검게 한다”는 그의 기록은 수백 년이 흐른 지금, 현대 의학에 의해 그 과학적 근거가 증명되었다. 호두에 풍부한 불포화지방산과 알파-리놀렌산은 두뇌 건강은 물론 혈류 개선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며 현대인의 필수 건강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처럼 건강에 이로운 호두의 국내 수급 상황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전 세계 공급량의 66%를 차지하는 미국 캘리포니아산 호두가 우리 식탁을 점령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의 호두 자급률은 소비량 대비 5%에도 미치지 못한다.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생산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기형적인 구조다.
이 거대한 시장의 빈틈을 포착하고 농촌의 새로운 고부가가치 산업 모델을 제시한 인물이 바로 장생농업법인(주)의 류희관 대표다. 류 대표는 지난 40여 년간 대한민국 농업 현장을 지켜온 자타공인 농업 마스터다. 1980년대 초반, 불모지였던 국내 버섯 시장에 느타리, 영지, 상황버섯 작목반을 전국 최초로 설립하며 ‘버섯 대통령’이라는 별칭을 얻었던 그는 이제 춘천시 북산면 오향리 일대 4만 여 평의 산자락을 ‘호두의 메카’로 변모시키고 있다.
류 대표는 “농업은 단순히 먹거리를 생산하는 1차 산업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수입산에 의존하는 품목을 국산화하고, 이를 체계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정착시키는 것이야말로 지방 소멸 위기를 극복할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한다.
◆10년의 기다림을 1년으로 단축한 신품종·혁신농법의 비밀
사실 호두 재배는 농민들 사이에서 ‘인내의 작물’로 통한다. 재래종 호두나무를 심으면 제대로 된 수확을 하기까지 최소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또한 나무가 십 수 미터 이상 거대하게 자라나 고령화된 농촌 인력이 열매를 따는 것 자체가 생명을 담보로 한 위험천만한 작업이 되기 일쑤였다. 이러한 ‘낮은 사업성’과 ‘재배의 위험성’은 국내 호두 농가가 늘어나지 못하는 결정적인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장생농업법인이 조성한 춘천 호두마을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이곳의 호두나무들은 기존의 상식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첫째, 압도적인 결실 속도다. 장생농업법인의 신품종 호두나무는 심은 지 단 1년 만에 작은 호두가 열리기 시작한다. 취재 당일에도 1년생 묘목에서 앙증맞게 열린 호두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4년 차부터 본격적인 상업 출하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농가의 자금 회수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켰다.
둘째, 기후 변화에 강한 생명력이다. 유 대표의 신품종은 영상 38도의 극한 가뭄과 영하 30도의 혹한을 견뎌내는 내한성과 내서성을 동시에 갖췄다. 병충해에도 강해 척박한 산지에서도 안정적인 재배가 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셋째, 인체공학적 재배 환경이다. 성목이 되어도 키가 약 5m 내외로 유지되도록 개량되어, 대형 장비나 위험한 사다리 작업 없이도 고령층이나 부녀자들이 손쉽게 수확할 수 있다.
이러한 기술적 혁신은 장생농업법인이 독자적으로 구축한 ‘혁신기술농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유 대표는 “신품종과 재래종의 차이는 단순히 수확량의 차이가 아니라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본질적인 차이”라고 설명했다.
◆‘위탁경영’과 ‘약초마을’이 결합된 생산형 복지 공동체의 미래
장생농업법인의 모델이 단순히 '호두를 잘 키우는 법'에 그쳤다면 이토록 주목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류희관 대표가 설계한 시스템의 진정한 가치는 ‘위탁경영’과 ‘약초 공동체’라는 소프트웨어에 있다.
농촌에 투자하고 싶어도 기술과 노동력이 없어 주저하는 도시 은퇴자들을 위해 류 대표는 '위탁경영방식'을 도입했다. 장생농업법인이 식재부터 전정, 시비, 수확, 유통까지 전 과정을 대행하고 수익을 투자자와 나누는 구조다. 현재 2만 평 규모의 호두마을은 400평 단위로 40명에게 이미 분양을 완료했다. 류 대표에 따르면, 투자자 1인당 연간 약 2,000만 원의 안정적인 실질 수익이 발생한다. 이는 웬만한 국민연금이나 개인연금을 상회하는 수치로, '나무가 주는 연금'이라 불릴 만하다.
여기에 더해 류 대표는 '약초마을'이라는 실버 공동체 모델을 결합했다. 은퇴자들이 모여 살며 산속의 보물인 쇠비름, 개다래, 개똥쑥, 칡 등을 공동 채취하고 가공해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다.
“도시에서는 잡초로 취급받는 것들이 산촌에서는 귀한 약초가 된다. 하루 2~3시간 산책하듯 약초를 캐면 월 150만 원 정도의 소득을 얻을 수 있어 건강도 챙기고 돈도 버는 일석이조의 삶이다”
현재 약초마을에는 이미 20여 가구가 입주해 자립형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이는 국가가 예산으로 지원하는 시혜성 복지가 아니라, 농촌의 자원을 활용해 노인 스스로 가치를 창출하는 '생산적 복지'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는다.
◆100만 평의 꿈, 농촌의 지도를 다시 그리다
류희관 대표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의 최종 목표는 춘천에 100만 평 규모의 호두 단지를 조성하고 20만 주의 나무를 심는 것이다. 이를 통해 수입산 호두가 점령한 국내 시장의 50%를 국산으로 대체하겠다는 포부다.
농민대상 최다 수상, 대한민국 혁신 한국인 대상 등 그간의 수많은 영예는 그가 걸어온 진정성을 대변한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그가 여전히 작업복을 입고 산등성을 누비는 이유는 단 하나, 후배 농업인들과 은퇴자들에게 '농촌에서도 행복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가 되기 위해서다.
대한민국 농업 발전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 온 류희관 대표. 그가 호두나무와 함께 심고 있는 것은 단순히 열매가 아니라, 소멸해가는 우리 농촌을 다시 살릴 강력한 생명력의 씨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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