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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영의 낭만詩객] 선운사 동구

이순영

자발적 왕따에겐 어떤 정신의 세계가 있을까. 주체의 비밀에 숨겨진 암호를 푸는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의 욕망은 근원적 그리움에서부터 탄생한다. 인간의 대부분은 잃어버린 이데아를 찾아 헤매다가 찾지 못하고 결국 실제적인 욕망에 정주하고 만다. 왜 이렇게 어렵고 난해한 질문에 빠졌는지 생각해 보니 자발적이라는 단어가 주는 아름다움에 대한 선망이 내 안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욕망을 넘고 관념을 넘어 더 너른 정신적 세계로 떠났던 지구의 호모사피엔스 선배들은 어떻게 자발적 왕따의 삶을 완성했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는 물질의 감옥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를 감금하고 있는 것들을 나열해 보면 백만 가지도 넘을 것이다. 좋은 집에 감금되고 텔레비전에, 냉장고에, 세탁기에 셀 수도 없는 각종 전기제품에 감금되어 있다. 그뿐인가 옷은 또 얼마나 많은가. 장롱에 꽉 차 있는 옷을 보고도 입을 것이 없다고 한탄한다. 지갑에는 온갖 카드가 꽂혀 있고 핸드폰엔 이름도 낯선 앱들이 화면을 점령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물질감옥에서 감금된 줄 모르고 물질천국에 살고 있다는 행복감에 빠져 살고 있다. 물질 천국에서 우리는 행복할까. 

 

소유의 즐거움보다 자유의 즐거움이 더 행복하다는 근거는 없다. 소유는 욕망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인 동시에 마음의 평정을 깨트리는 주범이며 우리 마음을 지배하는 힘센 군주다. 대부분 사람은 소유하고 싶은 것을 소유하지 못할 때 불행하다고 자조한다. 근데 정말 불행할까. 우리는 불행이라는 개념에 너무 야박하다. 불행과 행복이라는 잣대를 자기 자신에게 들이미는 것으로 인생의 성공 여부를 가름한다. 육체라는 한정된 물질을 얼마나 더 만족시켜야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 번쯤 내 몸에 달라붙어 있는 물질을 제거하고 온전한 나로 살아보면 어떨까. ‘나는 자연인이다’가 아니라 ‘나는 자유인이다’를 외칠 수 있는 용기가 있을까.

 

나는 자유인이 되고 싶을 때마다 선운사에 간다. 선운사에서 아주 오래된 시간의 향기를 맡으며 덕지덕지 붙어 있는 문명의 옷을 한겹 한겹 벗어 버린다. 겨울 선운사의 고즈넉한 고요와 맞닥트리면 습관에 달라붙어 있던 나의 욕망은 해제되고 만다. 흩어진 평정을 되찾으며 나도 평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얽매이지 않는 자유의 힘을 느낄 수 있다는 건 내가 얼마나 많은 것에 얽매여 살았는가 하는 반증이다. 어느 해 겨울, 나는 동백나무 숲이 병풍처럼 둘러싼 아름다운 선운사에 눈을 뒤집어쓰고 빼꼼히 빨간 얼굴을 내민 동백을 보며 미당을 떠올렸다. 아마 미당도 나처럼 번뇌에 점령당할 때마다 선운사를 찾아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백이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여 남았습디다.

 

그랬을 것이다. 미당도 가 닿을 수 없는 욕망의 한계를 느끼며 스스로 자유인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미당은 고백했다. ‘애비는 종이었다’ 그랬다. 아버지는 종이었다. 동아일보를 세우고 고려대학교 전신인 보성전문학교 교장을 역임한 인촌 김성수 집에서 아버지는 종으로 살았다. 그래서 미당은 노비의 자식이 갖는 설움을 벗어 던지고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시인이 되었는지 모른다. 서정주에게는 문학적 욕망이 곧 존재였고 문학으로 자유인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마음의 짐을 지고 사는 사람들은 늘 허허롭다. 그 허허로움은 때론 철학이 되고 때론 문학이 된다. 

 

미당은 그 허허로움을 채우고 싶어 선운사에 동백꽃을 보러 갔지만 동백은 일러 아직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백이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다고 한다. 그것도 목이 쉬여 남았다고 한다.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백이 가락이나 종이었던 애비의 설음이나 그 애잔함이 같은 무게로 다가와 더 서럽고 서러웠을 것이다. 사는 게 다 그렇지 않은가. 사람마다 짐 하나씩은 마음속에 짊어지고 산다. 내려놓을 수 없는 짐을 지고 선운사에 와서 겨울 동백을 보면 잠시나마 그 짐을 내려놓고 위로받는다. 미당도 그랬고 나도 그랬다. 

 

친일했다고 고백했다가 교과서에서 자신의 시가 사라진 미당, 그런 스승이 죽자마자 친일파라고 욕하며 정신적 부관참시했던 제자 고은, 미당의 시가 사라진 자리를 떡하니 차지한 제자 고은을 보며 인생은 참 무상하고 허허롭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미당은 절개를 지키지 못해서 문학도 함께 무덤에 들어갔다. 완장을 차고 친일파 척결이라는 죽창질에 목숨 걸던 사람들은 다시 그 죽창에 미투로 자신들의 목을 찔리고 있다. 우리는 다 흠결을 지니고 살아간다. 그래서 사람이다. 흠결 없이 산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다. 꽃이거나 나무이거나 사랑스러운 사슴일 것이다. 꽃보다 사람이 좋다. 나무보다 사람이 더 좋다. 사슴보다 사람인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설령 흠결이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 사람도 욕망에 지배당해 산다. 흠결이 있기에 욕망에 지배당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 존재하기에 지배당한다. 욕망은 누구에게는 천국이 되지만 누구에게는 지옥이 된다. 그러나 욕망의 노예로 행복해 죽겠다는 듯 살다가 문득 다 귀찮아질 때가 온다. 다 버리고 싶을 때가 찾아오면 자발적 왕따가 된다. 나는 이 자발적이라는 단어의 힘을 안다. 결코 자발적이지 못한 현대인의 삶에 자발적으로 판단하고 자발적으로 산다는 건 거의 혁명에 가깝다. 남들은 자발적이라는 말을 패자의 변명쯤으로 간주하지만, 자발적이야말로 진정한 승자다. 

 

선운사 동백을 보러 간 미당이 아직 일러 동백은 못 봤지만, 그는 자발적 자유를 향해 끝없이 시로 저항했다. 승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욕망의 제거를 위해 언어라는 무기를 들고 인간의 일상적 삶의 무의미를 깨부순다. 이건 종교가 했던 일이다. 하지만 유통기한이 다 된 종교로부터 자발적 자유를 획득해야 탈출할 수 있기에 미당은 진작 시라는 무기로 작업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만난 친일이라는 복병은 그의 무기를 빼앗아 가버렸다. 그러나 이 세상의 자발적 왕따들은 외친다.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다.”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

이메일eee0411@yahoo.com

 

작성 2026.04.17 09:59 수정 2026.04.17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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