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최진실 기자] 한정찬의 이 한 편의 시 <봄날> 외
16. 봄날
연둣빛 풀잎이
봄기운 풀고
긴 겨울 견딘 땅
새 숨을 쉰다.
살포시 고개 든
어린 새싹들
온 들이 푸르다.
<해설>
「봄날」은 긴 겨울을 지나 다시 생명을 되찾는 자연의 모습을 담담하고 따뜻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시의 첫 구절인 “연두빛 풀잎”은 막 돋아나는 봄의 색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어지는 “겨울 견딘 땅 / 새 숨을 쉰다.”라는 표현은 혹독한 겨울을 이겨 낸 대지에 다시 생명의 기운이 스며드는 순간을 생동감 있게 드러낸다. 또한 “살포시 고개 든 어린 새싹들”이라는 구절에서는 막 돋아난 새싹의 조심스럽고도 소박한 움직임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살포시’라는 부드러운 부사는 봄의 온화한 분위기와 새 생명의 연약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마지막의 “온 들이 푸르다.”는 구절은 이러한 작은 생명의 시작이 결국 들판 전체로 퍼져 나가 풍성한 생명력으로 이어짐을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이 시는 간결한 언어와 맑은 이미지로 이른 봄의 정취와 자연의 회복, 그리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감상>
「봄날」을 읽으며 긴 겨울이 지나고 다시 찾아오는 봄의 따뜻한 기운을 떠올리게 되었다. 연두빛 풀잎과 어린 새싹이 고개를 드는 모습은 작지만 힘찬 생명의 시작을 느끼게 한다. 특히 겨울을 견딘 땅이 새 숨을 쉰다는 표현은 자연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을 아름답게 보여주어 인상 깊었다. 차갑고 길었던 겨울 뒤에 찾아오는 봄은 단순한 계절의 변화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과 희망을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또한 ‘살포시’라는 말에서 새싹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드는 모습이 그려져 자연의 섬세함과 부드러움이 잘 전달되었다. 이 시를 읽으며 우리 주변의 작은 변화에도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쉽게 지나치는 풀잎과 새싹도 사실은 긴 시간을 견디며 자라난 소중한 생명이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짧은 시이지만 봄의 풍경과 생명의 힘을 따뜻하게 전해 주어 마음이 밝아지고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17. 옛 산길
길이 지워지고 있다.
지도에도 없는 길이
발의 기억 속에서만 희미해진다.
한때는
소의 숨이 오르내리고
나무 냄새가 등을 타고 흐르던 곳
사람의 자취가 끊기자
산은 천천히 입을 다문다.
구름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흐르고
바람은 어깨를 스치며 지나간다.
너희는 알까
여기 길이 있었다는 것을
나는 사라진 자리 앞에 서서
보이지 않는 길을 더듬는다.
기억만이 마지막 길처럼 남는다.
<해설>
사라진 산길을 통해 시간의 흐름과 인간의 삶 흔적의 소멸을 그린다. 한때 사람과 노동의 온기가 깃들었던 길이 사라지고, 자연만이 무심히 남는다. 화자는 그 앞에 서서 보이지 않는 길을 더듬으며 기억 속에서 과거를 복원한다. 결국 길은 사라졌지만, 기억은 마지막까지 남아 존재를 이어준다.
<감상>
사라진 산길을 떠올리는 화자의 시선이 잔잔한 쓸쓸함을 전한다. 한때 삶의 온기가 흐르던 길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아무 일 없다는 듯 흐르는 구름과 바람은 오히려 상실감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 보이지 않는 길을 더듬는 모습에서 기억만이 붙잡을 수 있는 마지막 자리임을 느끼게 한다.
18. 작은 들꽃
냉이꽃보다 작은 것들이
이 봄을 더 많이 차지하고 있다.
눈에 잘 들지 않던 높이에서
서로를 밀지 않고
겹치지 않으면서
조용히 번져가는 색들
작다는 이유로
더 오래 머무는 시선이 있고
많다는 이유로
하나하나를 잊지 않게 된다.
봄날 오후
나는 조금씩 낮아져
이름 모를 꽃들 곁에 서서
잠시 같은 높이가 된다.
<설명>
봄날 들판의 작은 꽃들을 통해 삶과 시선의 섬세함을 노래한다. 냉이꽃보다 작은 이름 모를꽃들이 서로를 밀지 않고 겹치지 않으면서 조용히 퍼져가는 모습은, 작고 사소한 존재들도 자신의 자리에서 의미 있게 살아간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화자는 크기나 수에 관계없이 존재의 가치를 바라보며, “작다는 이유로 더 오래 머무는 시선”과 “많다는 이유로 하나하나를 잊지 않게 된다”라는 표현으로 관찰과 기억의 미묘한 차이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시는작은 존재를 향한 겸손과 공감,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감상>
작고 이름 없는 존재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느끼게 한다. 봄날 들판에서 냉이꽃보다 작은 꽃들이 서로를 밀지 않고 조용히 퍼져가는 모습은, 경쟁이나 눈에 띔 없이도 제 자리를 지키는 삶의 조화와 평온을 보여준다. “작다는 이유로 더 오래 머무는 시선”과 “많다는 이유로 하나하나를 잊지 않게 된다.”는 구절은 관찰자의 섬세한 마음과 삶을 바라보는 겸손한 태도를 드러낸다. 이 시는 소박한 자연 속에서 삶의 미세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작은 존재들과 공감하며 함께 서는 순간의 따스함을 조용히 전한다.
19. 옥수수밭에서
봄비에 젖은 흙 위
한 줄 옥수수가 흔들린다.
내 손의 작은 자루에서
첫 씨앗이 땅을 뚫고
조용히 숨을 튼다.
새싹은 햇살을 삼키며
두 뼘 높이로 오른다.
바람에 줄이 흔들릴 때
또 다른 씨앗은 기다린다.
옥수수는
서두르지 않는다.
우리 삶도 그렇다.
틈 속에서 자란다.
<해설>
봄비에 젖은 흙 위에서 옥수수가 자라는 과정을 따라가며, 씨앗에서 새싹으로 이어지는 생명의 흐름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서두르지 않는다.’, ‘기다린다.’는 표현을 통해 자연의 시간성을 드러내고, 마지막에 이를 인간의 삶에 대응시켜 여백과 간격 속에서 이루어지는 성장을 강조한다. 구체적인 농경의 이미지가 삶의 태도로 확장되는 구조가 특징이다.
<감상>
시를 읽으며 조급함에 익숙해진 일상을 돌아보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도 무언가는 자라고 있다는 믿음을 조용히 전해준다. 특히 ‘틈 속에서 자란다.’는 구절은 쉼과 기다림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하며,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가 잔잔하게 오래 남는다.
20. 연두색 초록색
연두가 막 솟아오르는 봄날
빗방울 하나에도 마음이 기울고
그것은 희망이 되고
조용한 격려가 된다.
초록이 윤기를 두르는 여름
한 줄기 햇살이 사물의 끝까지 닿아
마침내 완성되는 말씀이 된다.
연두와 초록이 서로 스쳐 지날 때
바람은 오래 머물지 못하고
자꾸만 흔들리다가 삶의 중심을 맴돌다가
가장자리로 풀려나가는 실타래처럼
왔다가 다시 간다.
오늘은 목화밭에 서서
아무 말 없이 목화에 북을 주겠다.
<설명>
연두에서 초록으로 이어지는 계절의 흐름을 따라 인간의 내면 변화를 그린다. 봄날에는 작은 빗방울 하나에도 희망과 격려를 느끼는 섬세한 감성이 드러나고, 여름날에는 햇살이 모든 것을 완성시키는 깨달음의 순간으로 확장된다. 그 사이의 전환기에서는 바람을 통해 삶의 흔들림과 순환을 비유하며 중심과 주변을 오가는 존재의 상태를 보여준다. 마지막에는 목화밭에서의 구체적인 노동을 제시함으로써, 사유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 속 실천으로 나아가는 태도를 담담하게 드러낸다.
<감상>
계절의 색이 마음의 상태와 닮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봄의 연두는 아직 여린데도 작은 빗방울 하나에 쉽게 흔들리며 희망을 품는 마음 같았고, 여름의 초록은 모든 것이 무르익어 햇살마저 의미가 되는 깊이를 보여주었다. 특히 바람을 실타래에 비유한 부분에서는 삶이 중심과 가장자리를 오가며 끊임없이 흔들린다는 사실이 조용히 와 닿았다. 마지막에 목화밭으로 돌아가는 장면은 많은 생각 끝에 결국 오늘의 일을 해내는 삶의 태도를 떠올리게 했다. 읽고 나니 담담하지만 단단한 힘이 오래 남는다.
한정찬
□ 시인(詩人), 동시인(童詩人), 시조시인(時調詩人)
□ (사)한국공무원문학협회원 고문, (사)한국문인협회원, (사)국제펜한국본부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원 외
□ 시집 ‘한 줄기 바람(1988)외 29권, 한정찬시전집 2권, 한정찬시선집 1권, 소방안전칼럼집 1권’ 외
□ 농촌문학상, 옥로문학상, 충남펜문학상, 충남문학대상, 소방문학대상, 소방문화상, 충청남도문화상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