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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하는 나무 위에 새긴 35년 … 전통 갈이에 세계를 접목하다

한 덩어리의 생목이 오브제가 되기까지

ㅡ 옻칠목공예 도시를 꿈꾸는 남원, 그 중심에 선 '나무그리기공방' 이건무(한여루) 대표

 

 

빠르게 돌아가는 선반 위에서 한 덩어리의 나무가 그릇이 되고, 오브제가 된다. 목선반(우드터닝), 우리말로는 '갈이'라 불리는 이 분야에서 35년째 외길을 걸어온 이가 있다. 남원 '나무그리기공방'의 이건무(한여루) 대표다. 전통 갈이의 맥을 잇는 동시에 서양 우드터닝 기법을 접목해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그를 공방에서 만났다.

 

 

 

소지 제작에서 작품 활동으로, 35년의 궤적

1991년부터 갈이 작업을 시작한 이 대표의 초창기 작업은 주로 옻칠 작가들의 '소지' 제작이었다. 소지란 옻칠을 올리기 전 백골 상태의 기물을 말한다. 물푸레나무를 주재료로 머그잔, 나무접시, 나무 그릇 등 실용 작품을 만들어 옻칠 작가들에게 공급하는 것이 공방의 주요 업무였다.

 

 

"2010년 이후로는 본인 작품과 교육 위주로 공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대표가 공방 운영 방향을 전환한 시점이다. 이후 그는 세그먼트 작업과 오브제 작업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주목할 점은 세그먼트 우드터닝에서도 서양의 문양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전통 떡살 문양을 적층하는 방식으로 한국적 정체성을 담아냈다는 것이다.

 

2020년대 들어 이 대표가 천착하고 있는 주제는 'HOLE'이다. 생목을 선반에서 깎아낸 뒤 탄화 기법으로 마무리하는 이 작업은 그의 대표 시리즈로 자리 잡았다.

 

 

세그먼트터닝은 판재를 조각으로 나누어 기물의 지름에 맞게 링 형태로 집성 후, 면을 잡고 벽돌모양으로 적층하여 완성하는 기법으로 문양이 있는 경우 더욱 복잡한 과정이 필요한 작업이다(사진=이건무 대표)

 

 

"숙련된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에서 "다양한 연장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로

이 대표는 우드터닝의 기본 철학을 '물리학적 접근'이라고 단언한다. 회전하는 목재에 도구를 대는 작업은 단순하지 않다. 목재의 물성을 이해하고 적절한 지그와 도구를 활용해 실패하지 않는 고정법을 익히며 물리적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각도를 찾는 것이 핵심이다.

 

 

"예전에는 '숙련된 목수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는 '숙련된 목수는 다양한 연장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대표는 제한된 도구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던 과거와 달리 다양한 도구를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다루는 것이 현대 목수의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철학은 실제 도구 개발로도 이어졌다. 그는 여러 형태의 후크툴인 '갈이칼'을 직접 생산해 독일, 일본, 이탈리아의 우드터너들에게 판매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전통 갈이 방식과 서양의 작업 방식을 모두 섭렵한 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교육에서 창업으로 — 6명, 1:1 실습으로 길러내는 작가들

2014년부터 2024년까지 10년간 남원시 갈이교육 강사를 맡아온 이 대표는, 2025년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간 역할을 맡고 있다. 남원시가 '옻칠목공예 도시'라는 비전 아래 추진하는 우드터닝 분야 창업 교육의 지도강사를 맡게 된 것이다.

 

이 창업 교육의 가장 큰 특징은 소수 정예 1:1 실습 방식이라는 점이다. 정원은 단 6명. 회전하는 기계 앞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인 만큼 안전과 기술 전수 모두 밀착 지도가 필수라는 판단에서다. 교육은 기초반과 심화반으로 구성되어, 기초반에서 도구 사용·안전·기본 형태 만들기를 익히고 심화반에서 지그 활용과 다양한 기법으로 작업 범위를 넓혀간다.

 

이 교육에서 이 대표가 가장 먼저 강조하는 것은 다름 아닌 '안전'이다.

 

 

"안전한 목공을 해야 목공이 즐겁습니다. 목공이 즐거워지려면 안전한 방법으로 작업하는 법을 배우는 게 조건입니다."

 

기본기를 익힌 숙련 교육생에게는 다음 단계의 조언이 주어진다. 멘토가 될 만한 우드터너를 충분히 레퍼런스하되 이를 자신만의 색깔로 승화시킬 수 있는 디자인 감각을 기르라는 것이다. 단순한 기능인이 아니라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작가'이자 '창업자'를 길러내는 것이 이 창업 교육의 지향점이다.

 

 

 

수강생의 요청으로 열린 '작품반' — 배움이 창작으로

주목할 만한 변화는 창업 교육의 틀 바깥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기초·심화 과정을 마친 수강생들이 "여기서 멈추고 싶지 않다, 더 깊이 있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며 지속적으로 요청해온 것이다. 이에 이 대표는 별개의 과정으로 '작품반'을 별도 개강하게 되었다.

 

작품반은 기능 숙련을 위한 반복 훈련의 자리가 아니다. 수강생 각자가 자신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이를 각종 공모전과 대전에 출품해 그 평가를 통해 작가로서의 수준을 검증받는 단계다. 교육이 창업으로, 창업이 다시 창작과 출품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작품반은 그 연결고리가 수강생들의 자발적 요구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ㅣ"교육은 제가 만들지만 작품반은 수강생들이 만든 셈이죠."

 

 

 

물푸레나무로 탄화 작업한 ‘Hole 2026-5’(사진=이건무 대표)

 

 

생목·탄화·옻칠이 만나는 'HOLE' 시리즈

이 대표의 현대적 재해석은 작품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대표 프로젝트인 'HOLE' 시리즈는 좁은 입구를 통해 안쪽을 얇게 파내는 '할로잉(Hollowing)' 기법으로 제작된다. 이후 탄화 또는 에보나이징으로 착색하고 오일이나 옻칠(접칠)로 마감한다. 전통적인 실용 기물의 용도에 머물지 않고 실험적인 오브제 영역으로 확장한 결과물이다.

 

 


갈이공예 대중화, 남원에서 희망을 본다

마지막으로 이 대표는 한국 갈이공예의 현실에 대한 아쉬움과 기대를 함께 내비쳤다.

 

 

"갈이 작업은 예전부터 우리 일상생활에 깊이 들어와 있는 대중적이고 친근한 목공예 분야입니다. 그럼에도 한국 목선반 작가들의 소극적인 활동으로 대중화되지 못한 아쉬움이 큽니다."

 

 

다만 희망도 있다. 해마다 남원에서 열리는 '남원시 옻칠 갈이 교육'과 '대한민국 옻칠 목공예대전' 갈이 분야가 꾸준히 이어지고, 여기에 2025년부터 우드터닝 창업 교육과 수강생 주도로 열린 작품반까지 더해지면서 지역 안에 '배움 → 창업 → 창작 → 출품'으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가 서서히 자리 잡고 있다. 남원시가 지향하는 '옻칠목공예 도시'의 그림이 조금씩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남원은 이미 갈이와 옻칠이 만나는 드문 토양을 가진 도시입니다. 이 흐름이 개인의 활동을 넘어 지역의 문화산업으로 이어진다면 한국 갈이공예의 미래도 밝다고 봅니다."

 

 

나무그리기공방 이건무 대표

 

 

 

2026년, 첫 개인전을 목표로

2003년 한국목구조기술경진대회 은메달을 시작으로, 2011년 남원목공예대전 대상, 2014년 한국예총 한국예술문화명인 인증, 2024년 전라북도 전통공예인협회 전통공예 명인 인증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이력을 쌓아온 이 대표. 

 

2017년에는 메종오브제 파리와 뮌헨 크리에이티브 비즈니스 위크에 참여 작가로 이름을 올렸고, 2021년 서울공예박물관 개관전, 2025년 문화체육관광부 전시 '운유월행(雲遊月行)' 등 굵직한 전시에도 꾸준히 참여해왔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겸손하게 말했다.

 

 

"오랜 세월 작업을 해왔으면서도 부끄럽게도 개인전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생목을 활용한 오브제 작업을 좀 더 깊이 있게, 수준 높게 해서 개인전을 목표로 2026년을 보낼 계획입니다. 후진 양성에도 적극적으로 활동할 계획입니다."

 

35년간 선반 앞에 서온 장인이 첫 개인전을 준비한다. 전통 갈이의 뿌리 위에 세계 각국의 기법을 접목시켜온 이건무 대표가 2026년 어떤 작품으로 관객과 만날지 기대된다.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지점, 실용과 예술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한 덩어리의 나무는 매일 새로운 형태로 태어난다. ㅡ 옻칠목공예 도시를 꿈꾸는 남원, 나무그리기공방에서.

 

 

작성 2026.04.21 12:39 수정 2026.04.21 16:15

RSS피드 기사제공처 : 온쉼표저널 / 등록기자: 장은순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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