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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디시즘 철학 동화 -  9. 왜 함께일 때 더 보일까 

하디시즘 철학 동화 -  9. 왜 함께일 때 더 보일까 

 

 

 

수업이 끝난 오후였다.

아이들이 하나둘씩 교실을 빠져나갔다.

 

지우는 가방을 천천히 챙겼다.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지우야, 같이 갈래?”

 

뒤에서 민서가 물었다.

 

지우는 잠깐 멈췄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 혼자 갈게.”

 

민서는

 

 “그래, 내일 보자!” 

 

하고 먼저 나갔다.

교실 문이 닫히자 조용해졌다.

 

지우는 그 조용함이 좋았다.

누구와 맞추지 않아도 되고,

괜히 말을 꺼내지 않아도 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 시간이 편했다.

 

운동장을 지나 집으로 가는 길.

늘 다니던 길이었다.

 

나무도, 벤치도,

길가에 떨어진 작은 돌들도

모두 익숙했다.

 

하지만 그날도 역시,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다.

 

다음 날, 비가 조금 내렸다.

아이들은 대부분 우산을 쓰고 빠르게 집으로 갔다.

 

지우도 혼자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뛰어왔다.

 

“지우야, 같이 가!”

 

민서였다.

우산을 반쯤 기울이며 지우 옆에 섰다.

 

“나 혼자 가도 되는데….”

 

지우가 작게 말했다.

 

“그래도 같이 가면 좋잖아.”

 

민서는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둘은 나란히 걸었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말을 해야 할 것 같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잠시 후, 민서가 걸음을 멈췄다.

 

“지우야, 저기 봐.”

 

지우도 멈춰 섰다.

 

나무 가지 사이로

햇빛이 조금씩 내려오고 있었다.

 

비가 그치고 난 뒤라

잎사귀 끝마다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 물방울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지우는 그 자리를 한참 바라봤다.

 

이 길은 매일 걸어 다니던 길이었다.

하지만 이런 빛은 처음이었다.

 

“이런 거, 있었나?”

 

지우가 중얼거렸다.

 

“늘 있었지.”

 

민서가 말했다.

 

“그냥, 우리가 못 본 거지.”

 

며칠 뒤였다.

 

점심시간, 교실 한쪽에서

민서가 조용히 앉아 있었다.

 

평소보다 말이 없었다.

 

지우는 잠깐 망설이다가

그 옆에 앉았다.

 

“왜 그래?”

 

민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더 숙였다.

 

잠시 후, 작은 목소리가 나왔다.

 

“엄마랑 싸웠어.”

 

지우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괜히 위로하려다가

더 어색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앉아 있었다.

 

시간이 조금 흘렀다.

 

민서가 말했다.

 

“고마워.”

 

지우는 놀라서 물었다.

 

“뭐가?”

 

“그냥, 옆에 있어줘서.”

 

지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말을 하지 않아도

무언가가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순간,

지우의 마음이 조금 따뜻해졌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우는 혼자 걸었다.

 

늘 걷던 길이었다.

 

나무도, 벤치도,

길가의 돌도 그대로였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라 보였다.

 

며칠 전, 민서와 함께 봤던

그 빛이 떠올랐다.

 

지우는 걸음을 멈추고

나무를 올려다봤다.

 

햇빛이 조용히 내려오고 있었다.

 

혼자였다.

그런데도 그 빛이 보였다.

 

지우는 가만히 생각했다.

 

‘혼자 있을 때는 왜 못 봤을까?’

 

잠시 후,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혼자 있을 때는

그저 지나가기만 했고,

 

함께 있을 때는

누군가가 멈춰 서게 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봐”라고 말해줬기 때문이다.

 

그제야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날 밤,

지우는 창가에 앉아 있었다.

 

조용한 방 안.

 

지우는 손을 모았다.

 

예전처럼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외롭지 않았다.

 

낮에 민서와 있었던 시간,

그 빛,

그 조용한 순간이 떠올랐다.

 

지우는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하나님….”

 

그리고 잠시 멈췄다.

 

예전에는

혼자 조용해야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누군가와 함께 있었던 순간 속에서도

하나님이 계셨던 것 같았다.

 

빛 속에도,

기다려 주는 시간 속에도,

말없이 곁에 있어 주는 순간 속에도.

 

지우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말했다.

 

“혼자 있을 때도,

함께 있을 때도,

여기 계셨네요.”

 

다음 날,

지우는 먼저 민서에게 말했다.

 

“오늘, 같이 갈래?”

 

민서는 환하게 웃었다.

 

“응!”

 

둘은 나란히 걸었다.

 

같은 길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길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지우는 알게 되었다.

 

혼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함께 있을 때 보이기도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보이지 않던 것들 속에

아주 조용히,

하지만 분명하게

하나님이 계셨다는 것을.

 

혼자일 때는 조용했지만,

함께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마음이 보였다.

 

하나님은 고요 속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서로를 바라보는 그 사이에도 계셨다.

 

삶을 바꾸는 동화 신문 기자 kjh0788@naver.com
작성 2026.04.23 09:24 수정 2026.04.23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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