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때 알았던 남편의 친구 부부를 최근에 다시 만나고 있습니다. 싱글벙글 유쾌한 사람으로 기억했던 남편 친구가 좀처럼 웃지 않는 사람으로 변해있어 그 사연이 궁금했습니다. 박사 학위를 가진 대기업 임원 출신으로 착하고 밝은 아내와 좋은 직장을 다니는 자식을 둔 그가 우울할 일이 뭐가 있을까 싶었지요. 최근에 부부 동반으로 몇 번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궁금증이 조금씩 풀렸습니다. 아내는 연애 시절, 재미있고 밥 잘 사주는 오빠였던 남편이 회사에 입사하고 승진을 거듭하면서 과묵해졌다고 했습니다.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일절 말하지 않아 남편의 미국 발령이나 승진 소식도 다른 사람을 통해 먼저 듣게 되었고 특히 고민이나 힘든 일은 절대 아내에게 털어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남편은 직장의 고민거리를 집안에서 이야기하는 건 무책임하고 남자답지 못하다는 생각에 오롯이 혼자 견뎌내면서 말수가 없어졌습니다. 직위가 올라가고 조직에서 거느리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뱉는 말에 대한 검열은 점점 더 엄중해졌습니다. 그의 무거운 표정이 역할에서 오는 책임감과 신중함의 대가라는 생각이 드니 씁쓸했습니다.
퇴직 후 그는 ‘어떻게 해야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서 선배들을 유심히 관찰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들 이런 취미, 저런 활동에 열을 올리다가 결국 별거 없는 일상에 머무는 걸 보고 ‘그게 답일까?’ 회의가 든다고 했습니다. 반면 그의 아내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밝고 다정했는데 오랫동안 독서회와 수필 쓰기 모임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의 침묵에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고 살아올 수 있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나 짐작이 갔습니다.
일상의 소중함, 내 창 앞에 앉은 파랑새, 이런 이야기들을 루저의 변명처럼 바라보는 그에게 독서를 권했습니다. 성공한 사람에게는 경험이 함정이 될 수 있습니다. 성공 스토리의 산증인으로서 오히려 경험에 갇혀 버리는 거지요. 그가 답을 찾기 위해 읽은 수십 권의 리더십 자기 계발서는 잠시 잊고 고전 문학이나 역사, 심리, 철학, 사회 과학 같은 책을 읽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독서가 젊은 시절의 탐구심과 호기심을 회복하는 마중물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치 있는 삶이 어디 있을 것 같냐?”고 남편에게 물었더니 “바로 여기!”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아팠던 저를 간병하느라 환우들을 많이 만나면서 행복은 무지개 너머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나요? 이러니 인생에 정답이 어디 하나만 있겠습니까? 하지만 확실한 하나는 사고와 경험의 지평을 넓힐수록 행복해질 기회가 많아진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모든 걸 경험할 수는 없으니, 독서라는 날개를 달고 경험의 벽을 넘을 수밖에요.
K People Focus 차경숙 칼럼니스트 (ueber35@naver.com)
(함께성장인문학연구원 수석강사)
케이피플 포커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용 시 표기 의무
■ 제보
▷ 전화 : 02-732-3717
▷ 이메일 : ueber35@naver.com
▷ 뉴스홈페이지 : https://www.kpeoplefocu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