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잔금 부족하면 내가 빌려준다”강남서 번지는 ‘셀러 파이낸싱’의 실체
대출 규제에 막힌 강남 고가 주택 시장, 매도인이 직접 자금 지원 나서 무주택자 중심 거래 구조가 낳은 ‘비정상 풍경’
서울 서초구 반포 일대에서 집을 파는 매도인이 오히려 매수자에게 돈을 빌려주는 기이한 거래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 강력한 대출 규제로 자금줄이 막히자, 시장은 스스로 우회로를 찾는 모습이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고가 아파트 시장에서 이례적인 거래 방식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른바 ‘셀러 파이낸싱(Seller Financing)’이다. 집을 사는 사람이 잔금을 마련하지 못하자, 집주인이 직접 돈을 빌려주는 방식이다.
최근 반포의 한 아파트를 매수한 40대 회사원 A씨는 계약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제안을 받았다. 잔금이 부족해 계약을 망설이자, 매도인이 부족한 금액을 빌려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A씨는 시중 금리 수준의 이자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수억원을 빌려 잔금을 치렀고, 매도인은 해당 주택에 후순위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A씨는 “세무사조차 드문 사례라며 놀랐다”면서도 “강남권에서는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간헐적으로 존재해 온 거래 방식이라는 설명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 같은 거래는 낯선 듯 보이지만, 과거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전후, 15억원 초과 주택에 대한 담보대출이 전면 금지되면서 강남권에서 등장했다가 규제 완화 이후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최근 다시 재현되는 양상이다.
배경에는 강화된 대출 규제가 자리한다. 지난해 10·15 대책 이후 15억원 초과 아파트는 최대 4억원, 25억원 초과 아파트는 2억원까지만 주택담보대출이 가능하다. 여기에 사업자 대출을 활용한 우회 자금 조달까지 강력히 차단되면서, 고가 주택 매수자는 사실상 수십억원의 현금을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문제는 시장 구조다. 현재 강남권 거래는 사실상 무주택자 중심으로 재편돼 있다. 기존 주택을 처분하고 상급지로 이동하던 ‘갈아타기’ 수요는 대출 규제로 막혔다. 반면 무주택자는 현금 동원력이 부족해 고가 주택 진입이 쉽지 않다.
여기에 토지거래허가제까지 더해지며 시장은 더욱 왜곡됐다. 전세가 낀 매물은 실거주 요건 때문에 유주택자가 접근할 수 없고, 실입주 가능한 매물은 가격이 수십억원에 달해 무주택자에게 부담이 된다.
이 같은 구조적 모순은 실제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최근 입주한 서초구 ‘메이플자이’ 전용 84㎡는 45억~60억원대에 매물이 형성돼 있다. 40억원대 매물은 대부분 전세가 낀 물건이고, 실입주 가능한 매물은 50억원을 웃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비정상 시장의 자구책’으로 해석한다. 심형석 법무법인 조율 수석전문위원은 “강남은 무주택자가 다주택자의 매물을 받아줘야 거래가 성사되는 구조가 됐다”며 “현금이 부족한 매수자를 위해 매도인이 일부 자금을 빌려주는 방식까지 등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강력한 대출 규제와 토지거래허가제가 만들어낸 기형적 풍경”이라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도 우려와 현실론이 교차한다. 한 관계자는 “매도자는 세금 부담을 줄이고, 매수자는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면서도 “자금 출처를 명확히 소명하지 않으면 향후 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출을 틀어막은 규제가 시장을 잠재우는 대신, 또 다른 방식의 거래를 낳고 있다. 반포에서 시작된 이 ‘기묘한 거래’가 일시적 현상에 그칠지, 새로운 관행으로 자리 잡을지는 시장의 다음 선택에 달려 있다.


















